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의 수장 궈수칭(郭樹清) 주석을 형용하는 말이다. ‘개혁파’로 분류되는 성향과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기조로 많은 금융권 기업을 웃고 울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최근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몰락을 주도해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궈수칭, 習 의중 반영해 마윈 끌어내리기 앞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궈 주석을 마윈의 꿈을 좌절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지목했다. 그가 알리바바의 핀테크 업체인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를 좌초시키고, 마윈을 견제할 새로운 조치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FT는 중국 정부 관료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앤트그룹에 대한 IPO가 중단된 후 중국 금융기술 그룹에 대한 단속을 주도해온 궈 주석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졌다”며 “높아진 그의 위상은 일부 시장 감시단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FT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금융산업을 규제하길 원했다”면서 “궈 주석은 그러한 시 주석의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고 귀띔했다.
실제 중국 당국은 지난해 10월 이후 인터넷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독점 행위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발표하는 시점이 모두 마윈을 겨냥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마윈은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중국 국유은행이 ‘전당포’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당국의 낡은 규제 시스템을 비난한 바 있다. 그 이후 금융당국의 제재로 앤트그룹의 홍콩·상하이 이중 상장이 중단됐으며, 당국은 곧바로 알리바바의 반독점 행위 단속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실종설’에 휩싸일 만큼 두문불출하던 마 전 회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약 3시간 만에 인민은행이 전자결제 기업에 대한 규제 초안을 발표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해당 초안은 전자결제 서비스 형태에 대한 정의와 사업 범위 제한, 독점 규정을 명시했는데, 앤트그룹과 같은 핀테크 기업에도 시중은행과 동일한 규제 잣대를 들이댄 게 골자다.
이외에도 금융 당국은 지난 7일 모두 6장 24조로 이뤄진 반독점 규제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대다수 항목이 알리바바를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당국은 알리바바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입점 상인들이 징둥 등 다른 경쟁 업체에 입점하지 못하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알리바바가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 2인자 입지 다져··· ‘포스트 류허’될까
이런 상황 속에서 궈 주석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서 가장 신뢰를 받는 ‘경제책사’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인물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류 부총리는 하버드대에서 국제금융 등을 공부한 중국 대표 경제 전문가다. 시 주석은 2012년 당 총서기가 되자마자 그를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으로 발탁했다. 시 주석에게 직접 보고하며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이었다. 이후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8년 시 주석은 그를 금융·경제를 총괄하는 부총리 자리에 앉혔다. 그만큼 류 부총리에 대한 시 주석의 신임이 두텁다는 의미다.
그런데 궈 주석이 류 부총리의 자리를 이을 만한 야심가라는 의견이 중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한 인민은행 고문은 “궈 주석은 류 부총리에 이은 중국 금융 당국의 2인자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됐다”며 “시 주석과 류 부총리, 궈 주석 모두 강력한 규제로 시장경제의 약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궈 주석의 입지를 높게 평가했다.
물론 아직 그가 류 부총리의 뒤를 잇기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 컨설팅업체 플레넘의 천룽 파트너는 “류허 부총리는 매우 강력한 인물”이라며 “어떤 사람도 그의 포트폴리오를 이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은보감회 초대 수장··· 중국의 ‘개혁파 금감원장’
궈 주석은 1956년 8월생 네이멍구 출신으로, 톈진 난카이(南開)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인민대 경제학 석사를 거쳐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비교사회주의체제(사회주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국가계획위원회(지금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 배치받아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인민은행장, 러우지웨이(樓繼偉) 전 재정부장 등과 함께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주도하는 국유은행 개혁 작업 등에 참여하며 ‘주룽지 사단’에 합류했다. 그가 대표적인 친시장개혁파로 분류되는 이유다.
이력도 다양하다. 인민은행 부행장, 국가외환관리국 국장, 건설은행 회장,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주석 등을 역임했다. 특히 2013년에는 산둥성 성장을 지내면서 지방정부의 금융 행정을 잘 접목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궈 주석이 이끄는 은보감회는 보험감독관리위원회(보감회)와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 간 통합으로 2018년 새롭게 출범한 감독기관이다. 기존 은감회 직원 2만5000여명과 보감회 인력 3000명을 흡수한 거대 규모인데, 궈 주석이 기관의 초대 수장이다.
그가 은보감회 주석으로 임명됐을 당시, 중국 금융업계에서는 그가 탄탄한 이론은 물론 실무 능력을 갖췄으며, 과감한 추진력과 효율적인 업무 처리능력으로 금융 개혁을 주도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그는 증감회 주석 재임 당시 주식시장에 만연한 내부거래, 주가조작 등 불법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해 처벌했던 경험이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궈 주석이 증감회 주석 재임기간 발표한 규칙·통지만 7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주식발행등록제와 증시 개혁 조치도 그의 작품이다.
은감회에서도 그는 그림자 금융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강력한 관리 감독을 전개했다. 은행권에 만연했던 불법어음 조작, 부실대출 은폐, 관리감독 위반, 부당한 수수료 수수, 거시조절정책 위반 등 행위를 단속했다.
2017년 말 기준 은감회는 모두 3452장의 벌금딱지를 발급하고, 1877개 기관의 1547명을 처벌했다. 벌금액만 30억 위안에 달했다. 이는 2016년의 10배 수준이었다. 이외에 그는 은행주주관리, 금융상품 혁신, 부실자산, 유동성 관리, 신용리스크 관리 등 방면에서 26개 중점 계획도 쏟아냈다. 중국 금융업계에서 ‘궈씨 돌풍’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中 P2P 대출 단속 주도한 ‘저승사자’
‘궈씨 돌풍’은 은보감회에서도 이어졌다. 2018년부터 중국에서 거세게 불었던 P2P 대출 단속도 그가 주도했다. P2P 대출은 개인투자자와 대출신청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중개업체가 투자자로부터 모은 돈을 소비자에게 빌려주는 게 특징이다.
중국 정부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금융 혁신 차원에서 P2P 대출업을 장려했다. 이에 따라 제도권 금융에 가로막힌 서민들이나 중소기업들이 대거 시장에 몰렸고, 업계도 빠르게 성장했다. 2018년 기준 중국 P2P 금융시장은 약 245조원 규모로 커졌다. 전 세계 다른 국가 P2P 금융시장을 다 합쳐도 중국에 못 미칠 정도였다.
그러나 불법자금 조달과 대출사기 등 문제가 빈번해지면서 궈 주석이 2018년 칼을 뽑아 들었다. 불법을 저지른 수십개 업체 대표들을 체포하고 그들의 재산을 압류한 것은 물론이고, 2019년에는 2년 안에 모두 사업을 접으라고 통보했다.
이처럼 강력한 제재 아래 6000개에 달하던 P2P업체들은 현재 단 한 곳도 살아남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중국 은보감회는 “현재 중국에서 운영 중인 P2P 대출업체는 한곳도 없다”고 발표했다. 궈 주석이 P2P업체 단속에 나선 지 단 3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FT는 “궈 주석이 은보감회 주석이 된 후 한때 호황을 누리던 P2P 대출업계 단속을 주도했고, 결과적으로 중국 P2P 업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며 “그는 본래 인터넷 금융업에 회의적인 인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앞으로도 중국 핀테크 업계에 강력한 규제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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