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사기극은 비단 우한훙신(武漢弘芯, 이하 HSMC)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반도체 대약진'이라고 불릴 정도였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맹목적 투자가 빚어낸 비극은 중국 곳곳서 발생하고 있다.
◆ 맹목적 투자가 빚은 비극···무산된 대형 프로젝트만 10건 이상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국산화가 절실해진 중국은 세제 감면, 대규모 투자 등으로 반도체 자급자족에 주력해왔다. 현재까지 중국이 설립한 반도체 국영펀드 투자 규모만 3000억 위안(약 52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중국 정부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너도나도 반도체 투자에 나섰다.
중국 기업정보 사이트 치차차(企查查)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에만 신규 등록된 반도체 기업만 2만2800곳으로, 전년 대비 3배로 늘었다. 새해에만 새로 설립된 반도체 기업이 4350곳이다. 전년 동기 대비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2월 말 기준 중국 내 반도체 관련 종사기업만 6만6500곳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HSMC 사례처럼 좌초된 사례가 적지 않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년간 지방정부 지원을 받은 반도체 프로젝트가 중단된 사례가 10건이 넘는다고 집계했다.
중국 시나재경망도 지난 1년간 장쑤, 쓰촨, 후베이, 구이저우, 산시 등 5개 성에서만 수조원 투자 규모의 반도체 프로젝트 5개가 줄줄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5개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액수만 2974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대표적인 게 난징 더커마(德科碼, 타코마)의 파산이다. 타코마는 난징시 정부에서 추진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생산 프로젝트다. 총 투자액만 25억 달러로 예상된 타코마 반도체는 월 생산량 12만장 웨이퍼 생산을 목표로 추진됐다. 난징시 정부도 4억 위안 가까이 투자했다. 하지만 설립 4년 만인 지난해 결국 파산했다.
핵심 기술력도 갖추지 못한 채 당국의 맹목적 투자 지원만 믿고 진행했다가 결국 투자금이 바닥난 것이다. 현재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기 위해 난징시 정부가 여기저기 투자자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외에도 청두거신(成都格芯), 산시쿤퉁(陜西坤同), 구이저우화신퉁(貴州華芯通) 등 수조원대 반도체 프로젝트들이 중도에 멈춰섰다.
◆ "경험·기술·인재 없는 삼무(三無)기업 퇴출" 반도체 사업 관리감독 '고삐'
지난해 10월 멍웨이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은 "중국 내 반도체 산업 투자 열기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며 "경험도, 기술도, 인재도 없는 '삼무(三無) 기업이 반도체 업계에 뛰어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부 지방정부가 반도체 발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리스크가 커졌다"며 일부 프로젝트는 중도에 사업이 중단돼 자원 낭비가 심각하다고 했다.
멍 주임은 그러면서 "앞으로 반도체 중대 사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로써 업계는 최근 HSMC를 끝으로 반도체 프로젝트가 중도에 무산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때 중국 '반도체 굴기' 선봉장으로 불렸던 칭화유니그룹 전 부총재 가오치취안(高启全)도 지난달 27일 대만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반도체 프로젝트에 대한 관리감독 고삐를 조여 충분한 자금력, 기술력, 인재를 가진 프로젝트만 진행하도록 승인하고 있다"며 "HSMC 사례와 같은 중국 반도체 업계 난맥상도 끝이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을 향한 꿈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향후 5개년 장기발전 계획인 14차5개년 계획(2021~2025년)에도 중국 반도체 기술 육성은 포함됐다.
다만 아직까지 중국이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현재 반도체 자급수준은 약 20%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약 35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4.6%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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