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인터뷰 도중 나태주 시인의 ‘행복’을 읊었다. 출퇴근할 때 매일 지나는 지하철 9호선 신목동역 한쪽에 적혀 있는 ‘행복’을 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며 환하게 웃은 그는 내친김에 유안진 시인의 ‘들꽃 언덕에서’도 낭송했다. 잔잔한 음성으로 천천히 읊조리는 시를 들으니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신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최근 서울 양천구 한국문인협회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시 한 편을 통해 내 마음이 순화되고 정화된다”며 “문인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인생을 살면 누구나 몇 번씩 큰일을 겪게 되는데, 그때 읽는 시 한 편, 소설 한 편이 큰 위로를 안긴다.
이처럼 삶에 있어서 문학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코로나19 이전부터 ‘인문학의 위기’는 계속돼왔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더 큰 어려움에 빠지지 않았냐는 우문에 이 이사장은 “문학은 코로나를 이길 수 있어도 코로나는 문학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문학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현답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강한 확신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돈키호테’를 연상시켰다.
코로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흑사병이 창궐했던 시대를 겪은 후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를 한 예로 들었다.
이 이사장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소재인 코로나를 다룬 소설과 수필 등이 많이 나올 것이다”며 “최근 마산 지역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늘어난 집에 있는 시간을 작품 활동에 온전히 써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 ‘비대면’을 꼽았다. 이 이사장은 “대면을 해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예컨대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나지 않아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문학은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그는 “코로나를 이겨내려면 정신이 형형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문학은 정신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인생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책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 학교에 있는 도서실에서 시와 소설 등을 정말 많이 읽었다. 나에게 필수과목은 국어·영어·수학이 아닌 문학이었다”며 “공부에 모든 것을 거는 것보다는 문학 명작을 한 편 더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고3이었던 1969년 서라벌예술대학 전국 고등학생 문예 작품 현상모집 희곡 부문에서 입선을 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을 하지는 못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막노동으로 육체는 점점 지쳐 갔지만 그래도 청계천 헌책방에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이 이사장은 “그 당시 묵은 잡지를 20~30원이면 살 수 있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책을 맘 놓고 봤다”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이어 “문학을 하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는데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열정과 꿈은 결실을 맺었다.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문예창작 현상모집과 신동아 논픽션 현상모집에 당선된 이 이사장은 197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편집부 기자로 입사하게 된다. 1977년에는 현대문학 1월호를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지문이 없어져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화려한 밀실>·<풍랑의 도시>·<목신의 마을>·<폭설> 등 다수의 작품을 썼다.
그의 인생을 이야기할 때 한국문인협회를 빼놓을 수 없다. 46년간 함께 한 운명이다. 그는 한국문인협회 이사, 월간문학 편집국장, 소설분과 회장, 부이사장 겸 상임이사를 거쳐 2019년 2월 13일에 제2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해 1월 26일 열린 임원선거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57%· 4256표)을 기록했다. “저 자신을 ‘문협맨’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서 애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단임제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임기는 4년이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이 이사장은 “지난 2년간 후회 없이 일했다. 열심히 했다. 선거 때 말씀드렸던 공약은 거의 다 지켰다”며 “남은 2년간도 후회 없이 일하겠다”고 말했다.
1961년에 출범한 한국문인협회는 올해 창립 제60주년을 맞이했다. 회원수 약 1만5000명을 보유한 한국문인협회는 현재 10개 분과·18개 지회·182개 지부·49개 위원회·사무처·평생교육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뜻깊은 2021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이사장은 <문단실록>(전2권)을 지난 2월에 간행했다.
이 이사장은 “세간에는 여러 종류의 문학사가 나와 있다. 그 반면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문단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단편적인 수기·회고록·논문 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단 전체를 아우르는 문단사, 즉 문단 통사는 간행된 적이 없다”며 “장차 누군가가 착수할 총체적인 문단사 기술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서둘러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문단의 원로 중진 등 180명이 집필한 ‘나의 인생 나의 문학’·‘나의 등단시절’·‘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이 골고루 담겨 있다. 이 이사장은 “180명의 작품이 모두 감동적이다”며 “<문단실록>은 진작 나왔어야 할 책이다. 임기 중에 책이 나오게 돼 매우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문단실록>은 1·2권에 그치지 않고 향후 계속 발간할 계획이다.
문학에 대한 애정을 담아 현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최근 각종 문학 공모전에서 5개나 상을 받은 작품이 기존 작품을 무단 도용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윤동주·김소월 시인은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의 시는 영원히 살아있다”며 “문인들은 좋은 작품을 써 문학사에 남기는 것이 목표다. 각자 살아온 인생에 대한 명예와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표절은 절대 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아니라고 설명한 이 이사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단 도용은 영혼을 훔쳐 먹는 것이다”며 “표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면 사전 예방 효과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문학작품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작품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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