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성장률] "경제의 측정 방식 바꿔야 기후변화 극복한다"

다스굽타 캠브리지대 교수 "생산자본 2배 증가할 동안 자연자본 40% 감소"

UN, GDP 정의 재정립·자연 생태계 서비스 포함 연구 진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경제적 활동은 자연계가 제공하는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이용한다. 산을 깎아 광물을 캐내고 나무를 베어낸다. 제조업 공장과 물류를 운반하기 위한 운송수단은 공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같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는 경고는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 변화가 경제적 가치 창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지난해 초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 바 있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은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이전인 1월달에 열렸다.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2020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는 향후 10년 동안 글로벌 5대 리스크가 환경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전세계 GDP의 절반 이상인 44조달러 어치의 경제적 가치 창출 활동은 자연과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며 "건설, 농업, 식음료산업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자연에서 제공받는 자연자산(natural asset)을 생산자본(productive capital)의 일부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 경제학은 경제를 정의하고 측정하는 데 있어 인간의 경제적 활동으로 인해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랜 기간 국가 경제 규모를 산출하거나 경제적 성공을 측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돼 온 국내총생산(GDP)도 마찬가지다. 최종 생산물의 합을 더해 산출하는 GDP에는 제품이 나오기까지 자연이 입은 피해는 반영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농부가 농작물을 판매해 얻은 소득은 GDP에 포함된다. 하지만 농작물의 수분을 매개하는 꿀벌의 서비스나 토양의 질은 GDP 산입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GDP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제 통계를 낼 때도 맑은 공기나 환경오염의 부정적 효과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적자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환경오염은 충분히 높은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환경오염으로 인해 호흡기 질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인 가운데 코로나19 사망률과 호흡기 질환 간에는 높은 관련성이 나타나기도 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파르타 다스굽타(Partha Dasgupta) 교수는 영국 재무부의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 '생물다양성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Biodiversity)'에서 "생물다양성의 급격한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공을 측정하는 방법을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스굽타(Partha Dasgupta) 교수는 "1992년부터 2014년 사이 1인당 생산자본은 2배 증가하고 인적자본은 13% 증가한 가운데 자연자본 재고는 40% 감소했다"며 "생산·인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자연자본의 성장을 경제 관련 의사 결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발전은 자연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공급 능력의 재조정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스굽타 교수는 "생물 다양성의 손실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 기반 솔루션에 대한 투자가 구현되고 국가 회계 시스템에 자연자산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자연자산의 새로운 경제적 분석의 필요성' 금융브리프에서 "기관투자자나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기후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경제적 활동이 자연계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정책 대응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다스굽타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일국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수확물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용하고 관리할 책무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예를 들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적 활동이 생물 다양성과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홍수 방지를 위해 콘크리트 벽을 쌓는 대신 강 상류에는 나무를 심고 하류에는 습지를 보존하는 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 활동이 자연계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기후변화가 수익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생물다양성, 맑은 공기 등 자연자산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자연자산의 서비스가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구체적으로 계량화할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국제연합(UN) 산하 워킹그룹 ISWGNA(Intersecretariat Working Group on National Accounts)는 GDP의 정의 재정립과 생산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자연 생태계 서비스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은 이와 함께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화폐가 가치를 반영하는 올바른 가치 척도의 수단이 되기 부족함을 보여주는 교훈적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병원의 환자이동 담당자, 배송기사 등은 필수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임금군에 속해 있다. 이동 금지 조치로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등 '무보수 노동'의 가치는 상승했으나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공원시설에 대한 평가는 상승하고 있지만 화폐로 지급되지 않는 자연자산 서비스는 고려하지 않는다"라며 "향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속가능 경제성장 모델 구축과 관련해 자연을 중시하는 경제적 분석과 경제정책을 지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