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물고기, 달’은 90분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몰입을 선물했고, 오감을 깨웠다.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음악과 인생이 담긴 배우들의 소리, 전통 탈춤의 리듬을 기반으로 한 몸짓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창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순간이었다.
창작 창극 ‘나무, 물고기, 달’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에서 초연됐다. 배요섭이 연출을 맡고, 이자람이 작창·작곡·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
‘나무, 물고기, 달’은 한국의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에 대한 동양의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 창극으로 ‘소원나무’로 향하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길을 떠나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을 그리는 제주도 구전신화 ‘원천강본풀이’에서 영감을 얻었고, ‘소원나무’는 인도인의 삶 속에 깊이 스며 있는 여러 신화 중 ‘칼파 타루(Kalpa Taru)’를 원형으로 삼았다. 동양적인 이야기는 친근했다.
극본은 김춘봉이 썼다. ‘아름다움의 체험이 인간을 그답게 살아가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세속 뒤편에 은둔한 채 작업한다’고 소개 돼 있는 김춘봉은 사실 배 연출이 극작가로 활동하며 쓰는 일종의 ‘부캐’(부캐릭터)다. 김춘봉은 소설 <정육점 K’ ‘하늘나루 아기별>과 희곡 ‘자릿섬 139번지’, ‘평화로 가는 긴 여행’ 등을 썼다.
작품은 결국 좋고 나쁜 것은 모두 마음에서 생겨난 분별심이니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친근하기도 하고 동시에 철학적이기도 한 이야기는 창극을 통해 극대화된다.
“음과 음을 자연스럽게 잇는 시김새가 특징인 판소리는 시각적인 음악으로, 듣는 즐거움뿐 아니라 소리의 움직임을 즐기는 재미가 있다”는 배 연출의 말처럼 작품을 보고 있으면 몸이 조금씩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소리를 시각화한 점도 흥미롭다.
안무를 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이수자인 허창열은 전통 탈춤의 리듬을 기반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을 구성했다. 음악과 하나가 된 몸짓은 관객들의 흥을 불러일으킨다. 단원들도 춤을 추지만 소리도 춤을 춘다. 달빛을 은은하게 비추는 시냇물처럼 시적인 가사는 국악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나무, 물고기, 달’ 무대에 선 9명의 배우들은 관객과 소통하며 창극의 매력을 신명나게 전달한다. 서정금, 이소연, 유태평양 세 사람은 ‘달지기’역을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조유아(소녀 역), 민은경(소년 역), 김수인(물고기·코끼리 역), 최호성(순례자 역), 왕윤정(사슴나무 역), 김우정(사슴나무 역)이 중앙 원형 무대를 가득 채운다. 극 마지막 부분에 ‘소원 나무’에서 다같이 부르는 노래는 큰 위로를 선사한다. 공연은 오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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