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작은 본체 하나지만, 이 전자정보에는 내 생애 전부가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증거로 추출한 목록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정경심 교수 사건 문제가 아니라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모든 사람이 겪을 근원적 판단의 문제입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1-2부(엄상필·심담·이승련 부장판사) 심리로 15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 측 변호인은 이런 우려를 표했다.
변호인은 "임의제출 예외 사유가 전자정보라는 특수성, 극대화한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만나 발생한 사례가 이 사건(조국 사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실형을 선고한 1심 판단을 두고 "검찰이 전자정보를 열어볼 때 본인에게 통보하고, 증거로 쓸 때 별도 영장 발부하는 건 원심 판단에 따르면 다 안 해도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심 논리대로라면 개인이나 단체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수리하거나 중고로 팔았을 때, 검찰이 중고업자나 수리업체에서 임의제출만 받으면 다 증거로 쓸 수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앞서 검찰은 2019년 9월 10일 교양학부 사무실과 강사휴게실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강사휴게실에 방치된 컴퓨터 2대를 발견한 검찰은 해당 PC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국 폴더'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해 3월 2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 동양대 조교는 "수사관들이 '조국 파일'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정확히 들었고, 뒤이어 '헌법 파일'·'형법 파일' 등 파일명을 읽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검찰은 동양대 행정지원처장과 조교 김씨에게서 임의제출 동의서 등에 서명을 받아 PC 본체 2대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가져갔다.
정 교수 측은 1심에서도 해당 PC에 대한 위법수집증거(위수증)를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조교 김씨가 그 보관자로 이를 제출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 등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5년 대법원은 "혐의 사실 관련성에 대한 구분 없이 임의로 저장된 전자정보를 문서로 출력하거나 파일로 복제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영장주의 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압수"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아울러 "혐의와 무관한 전자정보의 임의적인 복제 등을 막기 위한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받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측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위법 수집한 증거로 판단하기도 했다. 채널A 자체 조사 때 이 전 기자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회사에 제출했는데, 이를 회사 관계자가 검찰에 넘겨준 건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 측은 현재도 이미지화한 자료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임의제출된 본체 2대는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2019년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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