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동맹에서 한국의 소외, 과(過)한 해석 할 필요 없다?
독불장군, 슈퍼맨 전략을 쓴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을 내걸고 홀로 좌충우돌했지만 유럽에서 건, 중국에서 건 별 재미 못 보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치꾼 바이든은 장사꾼 트럼프와 다르다. 트럼프가 '슈퍼맨 전략'이었다면, 바이든은 '스파이더맨 전략'이다. 동맹국을 통한 중국 포위작전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공산주의 중국을 봉쇄하고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명분도 전략도 좋지만 문제는 실행력이다. 트럼프 4년 동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미국의 주먹이 무서워서 미국의 동맹국들은 마지못해 응하는 척은 하지만 바이든의 동맹전략에 시큰둥하다. 트럼프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한 동맹들이 별 이득 없이 오히려 거대시장이 된 중국과의 관계만 나빠졌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미국이 드디어 외교행보를 시작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온라인 쿼드 정상회담에 이은 미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의 아시아 동맹국 순방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한국만 쏙 빼고 반중동맹 포위망을 구축한다든지, 한국은 미국의 2류 동맹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식의 주장이 있지만, 미· 중의 변화된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보면 이는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은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썼다. 일본·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를 잇는 제1도련선 혹은 최악의 경우라도 괌과 사이판을 연결하는 제2도련선 안에 중국을 묶어 두는 전략을 썼고, 중국도 제1, 제2 도련선의 방어와 돌파를 목표로 했다. 그래서 한반도는 미·중의 전략전쟁 선상에서 보면 동북쪽의 축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해양실크로드로 대만해와 남중국해가 아니라 태평양과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를 지나 유럽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펴면서, 미국의 대중국방어망도 자연스럽게 제1, 제2 도련선에서 태평양·인도양으로 확장되었고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잇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스파이더맨, 바이든의 경제동맹에서 힘쓰면 된다
미국의 동맹전략은 지역방어나 외교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기술, 자원, 네트워크 전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연간 군사비 지출은 세계 전체 군사비의 41%로 최대이고, 2위인 중국의 3배에 달한다. 그래서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제후국들의 회맹(會盟)처럼 미국은 중국을 둘러싼 주변국들에 대한 동맹을 주도하고 있지만, 문제는 동맹국들 각자의 속셈이 다르다는 데 있다.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미국 대신 피 흘리겠다는 대리인을 자처하고 나서지만, 일본의 군사적 확장의 제약을 풀어달라는 음흉한 속셈이 있다. 2차대전을 일으켜 미국을 공격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속내를 미국은 허용하기 어렵다.
인도 역시 중국과 영토분쟁 중이지만, 중국과 파키스탄의 동맹으로 인도를 공격할 것에 대한 카드로 미국동맹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미국, 일본, 한국, 중국으로 이전하는 산업의 국제적 이전과정에서 중국의 전통산업을 이어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어 중국과 치명적 관계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호주는 원자재, 농산물의 최대 수입국 중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은 경제적 쇠퇴를 의미한다. 중국과 직접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는 호주가 중국제재 동맹에 앞장서는 것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수출의 과도한 중국의존 상황에서 동맹카드를 이용한 대중국 발언권 강화가 진짜 속셈이다.
아시아국가 입장에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미국의 주먹이 무섭기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100년 만의 최악인 경제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에 참여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중국으로부터 받는 불이익보다 크다는 당근이 없다면, 동맹의 성공 가능성은 낮다.
아시아지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무역에서 1위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고, 중국이 최대 큰손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고민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동맹뿐만 아니라 당장 시급한 미·중 무역전쟁의 2단계 전략으로 희토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동맹을 구축하자고 나섰다.
문제는 세계시장에서 희토류 58%, 배터리 38%, 반도체는 15%를 중국이 공급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희토류 7%, 배터리 0%, 반도체는 12% 공급에 그친다. 한국은 반도체 21%, 배터리는 35%를 공급한다. 미국의 경제분야 동맹 가운데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한국을 빼면 큰 구멍이 생긴다.
한국, 파이 나누기가 아니라 키우기에 집중해야
한국이 미국의 아시아 외교동맹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며 너무 자괴감에 빠지거나 비관할 일은 아니다. 이는 미·중 전략경쟁의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봐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수출의 30%, 무역흑자의 86%를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아시아 외교동맹에서 상대적인 소외는 반대급부로 중국의 사드보복 같은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미·중전쟁은 이젠 기술 전쟁이고, 그 안을 살펴보면 반도체와 전기차 전쟁이다. 노트북, 휴대폰, 디지털TV, 자동차에 반도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이젠 자동차가 아니라 전기차, 자율주행차가 세상을 바꾼다. 자율주행전기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바퀴 달린 휴대폰'이다. 휴대폰의 2800배나 되는 빅데이터가 쌓이는 스마트 자동차가 4차 산업혁명의 총아다.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휴대폰 생산국이자 소비국이고, 세계 최대의 전기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려면 휴대폰과 전기차에서 중국을 고사시키지 못하면 답이 없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고 배터리는 '전기차의 쌀'이다.
한국은 경제동맹에서 실리를 챙기면 된다. 그런데 세계 최고 배터리 기술력을 가진 한국기업들이 서로 싸움질하는 통에 제품 공급의 차질을 우려한 세계 1위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로 중국과 제휴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한국 배터리 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번 것을 나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벌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기업들끼리 싸워서 세계 시장에서 제살 깎아 먹기를 하고 있으면 정부가 나서서 조정하고 빨리 타협하게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이 우리끼리 싸우면서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밟아 깨는 일을 벌이면 안 된다. 파이 키우기를 잘해야지 파이 나누기에 급급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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