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지난주 일본과 한국을 각각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 이른바 ‘외교국방(2+2)’회담이었다. 이번 회담은 5년 만에 처음 열렸다. 그리고 두 장관이 우리나라를 동시에 방문한 것은 11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두 정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은 탓인지, 양국 간 회담에서 불협화음이 생생하게 언론을 타고 드러났다. ‘쿼드(Quad, 4개국 안보협의체)’에 대한 미국의 우리나라 참여 요청 여부에서부터 북한의 비핵화가 2+2의 공동성명문에서 누락된 문제까지 한미 양국 간의 의견 불일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판세를 오독한 데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우리는 미국 신행정부의 외교정책을 궁금해했다. 이에 대한 추측 분석이 난무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력화에서부터 쿼드의 확대(이른바 ‘쿼드 플러스’) 가능성과 우리의 포함 여부까지,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전반적인 우리의 분석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자세로 일관됐다.
이번 2+2 회의로 드러난 사실은 우리 정부 스스로가 사전 준비에 소흘했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에서 북핵문제와 중국이 누락된 사실에서 드러났다. 사전 조율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럼 우리는 왜 대비하지 못했는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도 그러한 것이 미국 신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이 대통령 취임 이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외교당국은 이를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북한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즉, 미 행정부가 조성하려는 외교 판세에는 관심조차 없었다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행정부의 외교 입장은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의 임명절차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장관 지명자는 1월 19일에 미 상원 인준 청문회를 가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1월 26일에 취임했고 2월 18일에 쿼드 외교장관회의를 가졌다. 직후 3월 3일 백악관은 유례없는 <잠정 국가안보지침(Interim NSS Guidance)> 보고서를 출판했다. 3월 10일에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청문회에도 참석했다. 12일에는 첫 쿼드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15-16일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을 먼저 방문했고 미·일 2+2의 결과보고가 발표되었다.
이런 미국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의 발언과 보고서에서 북한의 언급 유무에만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 관련 발언이 적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결론은 경솔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가 상당히 하락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의 해결과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를 위한 자유민주진영의 연대와 함께 인태전략과 쿼드의 근간인 중국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 공유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는 인권, 자유와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현재 접근전략은 한 가지 결론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이슈를 공략하기 전에 동맹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 입장(like-minded) 국가의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다. 즉,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에 참여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외교장관 회의와 정상회담을 통해 이들 국가의 결의와 다짐을 받아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쿼드 4개국, 필리핀, 태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물론 유럽의 동맹국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특히 영국, 프랑스와 독일이 인도태평양전략은 물론 쿼드에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 국가의 연대 의지를 확인한 미국은 이들의 국익을 위해 기여할 결의를 밝혔다. 쿼드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은 역내 국가들이 ‘강압에 의해 (행동이) 구속 받지 않는(unconstrained by coercion)’ 지역을 구현하는 것을 하나의 지향점으로 선언했다. 즉, 이에 동참함으로써 미국의 동맹국과 유사입장 국가가 받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목이다. 이런 미국의 결의는 연대를 통해 방어가 가능하다는 발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가령 중국의 제재 때문에 참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도태평양전략과 쿼드 참여 문제가 제기된 작년 9월부터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중국의 반발과 제재 가능성을 염두에 둔 처사다. 이에 대한 즉답을 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가령, 우리의 ‘신남방 정책’과 연계하여 그 범주 내에서 협력의 접점을 찾겠다는 입장만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식의 협력에는 문제가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항행의 자유’ 보장 문제가 무역의존국인 우리의 국익에 부합할 수 있다. 이런 인식에는 심각한 판단의 오류가 있다. 이는 지경학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지정학적 전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인지하지 못한 데 있다.
지경학적 이익의 수호는 이에 상응하는 지정학적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은 다자협력이다. 쿼드와 인도태평양에 유보적인 정부의 입장은 그래서 납득하기 어렵다.
한·미 2+2 회의 결과를 담은 한·미 외교·안보 공동성명에는 북한 비핵화는 물론 중국 견제에 대한 발언 또한 실종됐다. 한·미 간의 첨예한 이견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외교에서 언어는 인식의 일치 수준을 증명한다. 인식의 일치 여부는 언어로 나타난다. 그리고 인식의 일치야말로 행동을 같이할 수 있다는 의지의 근간이자 척도다. 의지에 대한 결의는 외교로만 확인될 수 있다. 외교가 국제문제 해결에 있어 최선의 평화적 수단이 되는 근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비핵화 실종 사건에 대한 정의용 외교장관의 설명은 궁색했다. 외교적 자충수였다. 공동기자회견에서 그는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이유로 들었다. 우리가 핵무기를 이미 다 퇴출시켰고 이제 북한만 “우리와 같이 비핵화”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반도의 비핵화가 국제사회에서 더 올바른 표현으로 통용됨을 덧붙였다.
문제는 북한과 중국을 제외하고 그 어느 누구도 한반도의 비핵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특히 남한에서 미국의 전략핵무기가 완전히 철수된 1992년 이후에는 말이다. 북·미 첫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싱가포르 공동성명서 제3항도 예외는 아니다. 현혹될 수 있는 부분이다. 왜냐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의 주체를 간과하면 오독의 소지가 있다. 주체는 북한이다. 따라서 논리는 북한의 비핵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와 같이” 비핵화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북한만 비핵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충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런 잘못된 주장 때문에 공동성명에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라고 명기됐다. 이제 북한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더 이상 북핵문제를 두리뭉실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 과거에 비해 비핵화의 수순과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대상 목표로 명확히 설정됐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서 드러난 우리의 이견은 우리의 대북정책이 북한과 중국 일변도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북한 비핵화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다시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국 패싱이 또다시 재연될 것임을 암시한 셈이다. 미국 측이 지난 세 차례의 북·미회담에서 정부의 ‘중재’ 역할 주장을 간접적으로 일축한 것이다.
다자외교에서 최선의 포석은 초기 때부터 참여하면서 많은 지분을 챙기는 것이다. 제도와 규범 설정에 참여함으로써 ‘룰 메이커(rule-maker)’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다자외교에서 우리의 발언권은 물론 우리의 영향력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반이다.
이번 쿼드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은 백신 파트너십 외교, 핵심적인 신흥 기술 협력 실무그룹과 기후변화와 관련된 실무그룹을 설립했다. 쿼드 참여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우리의 비군사적 협력에 방점을 둔 신남방 정책과 쿼드를 접목시킬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두번 다시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있다면 우리 국익 차원에서 심각히 재고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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