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님 원금 손실 없어요.” A은행 직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투자원금은 보전돼야 한다”는 80대 B씨에게 펀드상품을 소개했다. 투자등급이 5등급인 B씨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이 상품에 가입할 수 없었지만, 은행 측은 ‘위험등급 초과 가입 확인서’에 서명하도록 유도했다. B씨는 고령으로 시력이 나빠 서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A은행은 B씨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위험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25일 전격 시행되면서 B씨 같은 피해사례는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권리가 한층 강화되는 등 금융시장에서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펀드사태 등 금융권을 둘러싼 불완전 판매 논란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관련기사 3면>
이번 금소법은 소비자 권익을 높이고,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에는 더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 금지 원칙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과장 광고 금지 등 6가지 의무 부과를 골자로 한다.
여기서 적합성 원칙은 금융회사가 위험감수형, 안정지향형 등 소비자의 투자성향과 비슷하게 설계된 금융상품만 권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 적정성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는 소비자가 투자를 결정한 금융상품이 재산, 투자성향과 걸맞지 않으면 미리 알려줘야 한다.
이 같은 금소법은 금융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불완전 판매’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2008년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 때 국내 수출 중소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처음으로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어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터지면서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18대 국회에서 박선숙 당시 민주당 의원이 첫 발의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당시 기조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소법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금융위원회는 금소법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했다. 이후 2년간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해 이전과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견됐으나, 2019년 사모펀드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제정 필요성이 주목받았다. 그해 DLF, 라임 사태 피해가 알려지며 11월 금소법은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해 3월 국회 법사위와 본회위를 통과하면 11년 만에 시행되게 됐다.
금소법이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많은 기대를 모으는 것은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5년간 은행·증권사 등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피해가 고령자에게 집중됐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5년간 불완전판매 피해자 연령별 현황’(2016년~지난해 6월)에 따르면 은행·증권사 상품의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모두 1820건의 분쟁조정 신청이 접수됐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이 782건(43.0%)을 차지했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분쟁조정 신청은 라임 등 부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지기 시작한 2019년부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 고령층의 은행 상품 분쟁조정 신청은 2018년 46건에서 지난해 234건에 크게 늘었다. 지난해 6월까지도 175건이 접수됐다. 증권사 상품은 고령층 분쟁조정 신청이 2018년 32건, 2019년 23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반년 만에 106건을 기록했다.
이날 시행되는 금소법은 이 같은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소비자 보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행을 환영한다”면서 “초기 혼선이 있을지라도 금소법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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