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은 정치가 메인 직업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치인들이 청년에게 ‘주중 오후 2시에 30명만 데려와’라는 식으로 지시를 한다. 그 시간에 올 수 있는 청년이 누가 있겠나. 청년이 중심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의 스케쥴이 중심이 되니까 그러는 거다. 청년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이젠 바뀌어야 한다.” -이재영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호환성을 늘이려는 시도를 억지로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활동에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너무 많다. 청년 정치의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드리머 이경민씨
‘꼰대정당’으로 여겨지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정치적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다.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이재영)가 만든 정책네트워크 ‘드림’이라는 과정에서다. 오는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숨은 고수를 찾습니다’라는 컨셉으로 시작된 이 과정엔 20대 스타트업 창업가, 작가, AI교육전문가, 경영컨설턴트, 공연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합류했다. 대부분 국민의힘 당원이 아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다. 만 49세 미만 국민을 대상으로 모집했는데, 대부분이 2030세대다.
‘드림’은 지난 20주간 윤석만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원재 LAB2050 대표 등 경제‧사회‧복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과 심층 토론을 진행했다. 이후 재보선에 반영됐으면 하는 정책제안서를 만들어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했다. 비당원들의 정책 아이디어가 정책제안서로 엮여 전달된 건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 “좋은 사람 끌어들이지 못하는 경직성 타파해야”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모임을 찾았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 오세훈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강연이 예정돼 있는 날이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2011년 정치에 입문, 젊은 나이에 자신의 영역을 뚜렷하게 개척한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도 이제 마흔이 다 돼간다. 제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2012년 대선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은 연설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제가 어떤 역할을 했나 궁금해한다. 가장 목이 좋다고 하는 후보 연설 직전 바람잡이 연설이, 제가 맡은 맥시멈이었다. 경제적 기반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영역이 지금만큼 넓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2017년 대선에서도 제가 한 제안들은 한마디로 ‘킬’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 저는 하고 싶은 걸 밀어붙일 수 있는 정도까지 온 거 같다. 언론을 통해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중략) 오세훈 캠프가 가져온 상당한 성과로 ‘세대교체’를 들고 싶다. 처음으로 조직 선거라는 공식에서 탈피하게 된 것이다. 우리 캠프에서는 ‘조직’이 담당하는 영역이 적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정치적 공간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 공교롭게도 우리 당의 원로라고 하는 분들이 전부 오 후보를 힘들게 하고 있다. 조직이나 원로, 힘이 없이 치르는 선거다. 선거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면 그 과실도 젊은 세대가 많이 갖게 될 것이다. 과실이란 게 어떤 자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이뤄내 본 경험이다.”
강연이 끝나자 ‘드리머’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정치 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쏟아졌는데, 정치활동 진입의 어려움에 대한 지적들이 많았다. 일상에서 생활 정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전문직‧관료 출신 등 사회적 명사를 ‘영입’하는 방식으로만 인재 수급이 이뤄지니, 정치와 일상 생활의 괴리가 더 커진다는 문제의식이다.
19대 국회 비례대표를 지낸 이재영 위원장은 “같이 정치 활동을 한 사람들이 느끼는 갈증 중 하나가 굳어져 있는 관성을 깨지 못하고, 새로운 걸 제시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거나 배출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타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일씨는 “경쟁과 사후교육을 통해서 올바른 정치인을 배출하는 제3의 방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정치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컨테스트로 뽑고 사후 교육이 선행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현일씨는 인문학‧사회과학 전공자들을 선발한 뒤 프로그래밍을 교육해 융‧복합 인재를 배출하는 삼성전자의 SCSA 프로그램을 예로 설명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을 하고 있는 윤선영씨는 “보좌진이 굉장히 훌륭한 트레이닝 코스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일을 잘 하는 보좌진들이 국회로 진출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 당은 어렵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기자 출신의 이경민씨는 “사회생활을 통해 우수성이 검증된 사람들은 정치를 시작할 때 드는 기회비용이 적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정치에 드는 기회비용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경로가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50여개 정책 아이디어 구체화…재보선 캠프에 전달
드림은 20주간의 과정을 마친 뒤 4‧7 재보선 정책제안서를 펴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공공주거 제공 △개인용 이동수단(PM) 보험 의무화 △러너(Runner) 스테이션 조성 △아동‧청소년 아침밥+운동 프로젝트 등 50여개의 정책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이재영 위원장은 “‘정당이 아닌 시민이 원하는 정치와 정책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졌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시민으로부터 직접 들으면 된다’는 것”이라며 “지난 20주간 서로를 격려하며 좋은 정치, 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자 머리를 맞댔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이 원한다면, 우리를 지지해 주시던 분들의 소망이라면 거침없이 혁신하자는 젊은 에너지를 모았다”며 “보수정당에서는 보지 못했던 국민과의 소통플랫폼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국민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정치를 간절히 꿈꾼다”고 강조했다.
이지현 대외협력위 부위원장은 “국민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가 반영되며 정당의 철학과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함께 고민하다 ‘드림’을 런칭하게 됐다”며 “당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함께 정책을 만들어 보선에 기여도 하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훌륭한 정치인이 배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진심으로 만들어진 이 결과물이 정치의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실제 우리 이웃의 삶에 한방울 한방울 와 닿길 소원해본다”고 했다.
지난 25일 공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오마이뉴스 의뢰‧24일 조사‧그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18~29세 지지율은 60.1%로 나왔다. 반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20대는 33.7%에 불과했다. 이들의 노력이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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