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연합(EU)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시작은 EU가 중국을 제재한 데서 비롯되었다. EU는 지난 22일 신장·위구르 지역의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의 관련자 4명과 단체 1곳에 대해서 자산 동결과 여행금지 등을 포함한 제재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중국은 자국의 주권과 이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EU측 인사 10명과 단체 4곳에 대하여 맞대응 조치를 취했다. 문제는 이에 더해 중국이 주 중국 EU 대사를 초치한 점이다.
중국의 EU 대사 초치는 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 지금까지 중국이 취해 온 정책과 차이가 있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EU-중국 간 갈등이 아닌 미국-중국 간 패권 경쟁과 관련하여 중국이 지금까지 취해 온 대응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아직은 전면적 대결을 하지 않는다. 중국 스스로가 미국과의 본격적인 대응을 하기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인 군사력만 보더라도 중국의 군사력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군사력과 비교할 때 아직 맞설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해 왔지만 아직은 미국의 70% 수준이다. 물론 조만간 중국이 미국의 경제규모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아직은 미국 시장과 기술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특히 달러화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이 갖는 위상을 중국이 넘어서기는 역부족이다. 중국도 위안화의 국제화를 서두르면서 디지털 화폐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위안화가 세계의 화폐로 정착되기에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한편 식량안보 측면에서도 중국은 약점이 많다. 중국이 세계적인 농산물 생산국이지만 동시에 상당량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적인 곡물 수입국이기도 하다. 중국의 돼지고기 수요변화가 세계돼지고기 가격변동의 주요 원인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식량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중국에 비해 유리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예를 들면 국경문제나 일국양제 등)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중국은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대신 시간을 벌어 꾸준히 힘을 축적한다는 게 중국의 대미 기본전략이다.
중국이 힘을 기르는 동안의 주요 전략은 미국의 연합세력을 최대한 분열시켜 미국을 고립화시키는 동시에 중국을 지지하는 우호세력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 전통 우방을 고려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부과는 중국에 큰 행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과 EU 관계가 최악이었고, 기존 서방선진 7개국 정상회의(G7)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행동은 항상 큰 화젯거리였다. 중국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동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시진핑 주석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보호주의의 배격과 자유무역을 외치는 사람은 시 주석이었다.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자유무역의 신봉자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일대일로를 통해 조건이 없는 많은 돈이 중앙아시아와 유럽에 투입되었다. 이에 유럽 국민들의 중국을 보는 시각이 서서히 달라졌다. 급기야 2020년 3월 PRC(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 독일 국민은 호감도 면에서 중국과 미국을 거의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였다. 이것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압박정책 추진 시 EU가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게 만들었으며, 작년 12월 포괄적투자협정 합의까지 이어졌다. 중국 관점에서 보면 미국 우호세력 분열의 대표적인 성공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은 동맹복원을 외치며 그동안 소원했던 전통 우방인 EU와의 관계 회복에 나섰다. 그 와중에 신장·위구르 인권문제가 터져 EU와 중국 관계가 최악으로 급변한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의 우호세력을 분열시켜야 하는 중국으로서 EU의 제재 조치에 맞대응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를 넘어 EU 대사를 초치한 것은 큰 전략적 시각에서 볼 때 중국의 실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신장·위구르 문제가 그만큼 큰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점을 서방 세계에 확실히 알린 측면도 있으나 동시에 이로 인해 지난 4년 동안 공들여 온 EU와의 관계가 일시에 위기에 처한 손실도 분명하다.
중국과 EU간의 이러한 관계 변화는 우리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또 다른 우방으로서 우리나라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중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에서 미국 우호세력의 분열과 동시에 중국에 우호적인 세력 만들기는 중국에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가 EU만큼 크지 않고,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분명한 우리의 약점이다. 안보에 있어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까지 있어 복잡하다는 것도 우리의 입장 정립이 어려운 이유다. 어찌되었건 중국이나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우리의 입장 표명은 그 여파를 감안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동시에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정립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서로 상대편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오면 최악이다. 이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기진영을 확대하려는 본격적인 진영 대결이 전개될 것이다.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미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얀구원 선임연구위원 △관세청 자체평가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