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많은 국민이 아파트로 돈을 벌었다. 부동산으로 돈맛을 봤다. 땀보다 땅으로 재미를 보는 재미가 들렸다.
“자본주의적인 영리활동이 이루어진 모든 곳에는 당연히 모든 윤리적 제약들을 비웃는 ‘모험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했다.” 모험적이고 투기적인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이 글은 요즘 쓰여진 게 아니다. 1904년 막스 베버가 쓴 글이다. 요즘 같은 상황이 120년 전 유럽에도 있었다는 얘기다. 막스 베버나 벤저민 프랭클린이 강조했던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자본주의의 핵심은 ‘노동’에 대한 존중,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었다.
“적폐를 중단시켜라. 소수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다수를 빈곤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요즘의 상황 같은데, 아니다. 청교도혁명을 주도한 올리버 크롬웰이 1650년 의회에 보낸 글이다. 370여년 전에도 부의 쏠림현상이 이슈였다.
‘천민 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라는 용어가 요즘 자주 소환된다. 베버는 비합리적이고, 탐욕적이고, 투기적인 자본주의를 인도의 불가촉 천민, 파리아(pariah)에 비유했다. 반면, 자기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 하에서 근면하게 생활하면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장려했다. 합리적 경영과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에 의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비판하지 않았다.
한국경제는 불한당 자본주의다. 유식한 말로, 지대추구 경제(rent seeking economy)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불가촉 천민은 없다. 따라서 한국경제를 ‘천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건 부적절하다. ‘불한당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불한당이란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고, 남의 돈을 빼앗는 무리를 일컫는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땀보다 땅으로 돈을 더 벌면 나라가 망한다. 왜냐고? 땅을 보러 다니고,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누가 열심히 땀 흘리면서 일하고 싶을까?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건전하고 건강한 한국경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들 것이다. 부동산이 들썩거리면, 임대료가 올라가고 임금과 물가도 따라서 올라갈 것이다. 나라 경제는 머잖아 경쟁력이 후퇴하게 되고, 망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일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기업가정신과 창업’을 강의한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서 창업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이 애국자라고 가르친다. 창업해야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준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직접 창출한 일자리만 10만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100만개,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수십만개에 달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강의에 누가 귀를 기울이기나 할까? 누가 어려운 창업을 하려고 할까? 돈으로 돈을 벌고, 부동산으로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누가 고생길로 접어들 것인가?
문제는 우리의 법과 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불로소득과 지대(rent, 과도한 이익)를 추구하게 만드는 구멍이 많다. 주가를 조작하다가 걸리면 구속도 되고 경제적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주택가격 조작으로 구속되거나 경제적 대가를 치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기업 간에 담합을 하거나 불공정 거래를 하면, 법의 심판을 받고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주택 거래에서 담합을 하다가 경제적 대가를 치렀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주식과 관련된 감독기관이나 금융기관은 직원들의 주식투자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신고도 하고, 감사도 하고 있다. 관련 법령도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부동산과 관련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부동산 중개인들의 부동산 거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LH 사태로 드러났다. 이해상충 관련 법령에 허점이 있었는데,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다. 그래서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가정신 연구로 유명한 존 네샤임(John Nesheim) 교수에 따르면, 창업해서 투자를 유치하고 주식을 상장해서 성공한 CEO가 될 확률은 100만분의6이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하다.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쉽게 돈 버는 곳이 있는데, 어려운 창업에 뛰어들라고? 물론, 셀트리온의 성공 사례도 있다. 서정진 회장과 창업 멤버들이 투자한 2002년의 5000만원은 2021년에 80조원으로 불어났다. 20년간 고생한 끝에 회사 가치가 100만배 이상으로 커졌다. 이런 성공 사례가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일어나야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지 않고 창업으로, 산업 현장으로, 주식시장으로 분산될 수 있다.
2021년 현재 우리의 GDP 순위는 세계 10위권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OECD 선진국 가운데 7위다. 이제는 연구개발과 혁신성, 생산성이 관건이다.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이 왕성하고, 창업과 재도전이 활발하고, 제조업 경쟁력이 회복되어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진다. 고부가가치 경제로 전환하려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개념설계 역량’과 ‘축적의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나 여전히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누가 소를 키우겠나? 누가 어려운 창업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나?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부동산은 과잉이고 기업가정신은 과소하다. 우리 경제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 없이 계속 부동산 투기가 이루어진다면, 한국경제에 미래는 없다.
김동열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KDI 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수석연구위원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글로벌강소기업지원센터 대표 ▷남서울대학교 객원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