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 철도업체 국가철로그룹 부채만 980조
30일 중국 제몐에 따르면 이날 중국 국무원 판공청은 ‘철도 계획·건설 작업 발전을 위한 의견(이하 의견)’을 공개해 현재 중국의 철도 발전 상황을 소개하고, 향후 계획에 대한 세밀한 기준과 요구를 제시했다.
의견은 “일부 지방에서 높은 기준을 요구하며, 오로지 ‘고속’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철도 기업들의 경영 압박과 부채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전문가들은 몇 년 전부터 중국 고속철 건설 부채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앞서 지난 2019년 자오젠(趙堅) 베이징 교통대 교수는 ‘고속철 회색코뿔소(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를 주의하라’ 라는 글을 통해 "고속철 건설에 따른 막대한 부채가 금융 리스크를 유발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현재까지 고속철 건설로 떠안은 빚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중국 국유 철도업체인 국가철로그룹(國鐵集團)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총 부채는 5조7000억 위안(약 982조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자산의 약 66%에 달하는 수준이다. 국가철로그룹이 해마다 갚아야 하는 이자도 800억 위안이다. 더 큰 문제는 부채의 가파른 증가세다. 2013년 1분기 2조8000만 위안이었던 부채가 7년 만에 2배 이상 폭증했다.
지방정부의 숨겨진 고속철 관련 부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서 홍콩 사우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방정부의 고속철 건설로 인한 부채가 2조 달러(약 2300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바 있다.
◆수요 예측 어긋난 게 문제… 24조 투입했는데 하루 고작 8편 운영
고속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 건 어긋난 수요 예측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고속철 속도는 보통 250km/h, 300km/h, 350km/h 수준이다.
문제는 고속철 설계 계획 과정에서 최고설계 속도 선택 기준이 없다. 속도에 따라 들어가는 건설비용 격차가 큰데도 불구하고, 수요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빠른 속도 만을 추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폐해를 잘 보여준 사례가 바로 란신(蘭新)고속철(란저우~우루무치)이다. 란신고속철은 250km/h의 고속철로 설계 당시 하루 320편의 운영을 예상하고 1400억 위안을 투입해 건설됐다. 그러나 실제 운영횟수는 8편에 불과하다. 란저우일보에 따르면 고속철 개통 후 4년간 누적 이동 승객은 고작 2000만명이다.
대도시에 속하는 시안과 청두를 잇는 250km/h의 시청(西成)고속철의 연 평균 이동승객도 1300만명 수준이다. 이는 연 평균 1500만명의 승객이 이용해야 250km/h 고속철의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건설 계획 목표 1600km… 5년간 연평균 건설 규모 절반도 못 미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당국은 고속철 굴기 속도조절에 나섰다. 중국은 2009년부터 고속철 굴기에 열을 올렸다. 현재까지 중국이 건설한 고속철도망은 약 3만8000㎞에 이른다. 이중 최근 5년간인 13차5개년 계획(2016~2020년) 시기 건설된 고속철도망은 1만8100km다. 연 평균 3620km의 고속철도망이 건설된 셈이다.
그런데 중국경영보에 따르면 철도당국이 올해 계획한 고속철도망 건설 계획 목표는 1600km다. 3620km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가 ‘고속철 건설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이자, 고속철 굴기 제동 시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국무원이 이번에 발표한 의견에는 엄격한 건설 계획 기준이 포함돼 있다. 앞서 언급한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인한 폐해를 또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치다. 의견은 “350km/h의 고속철을 건설하려면, ▲성도 및 대도시를 관통하는 노선 ▲연 승객인원 2500만명 이상 ▲중·장거리 이용 비중 70% 이상이라는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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