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영토가 내다보이는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대만에 바짝 다가선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북한 문제를 지렛대 삼아 미국의 우방인 한국을 반중 전선에서 이탈시키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3일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양자 회담을 진행했다.
장소가 공교롭다. 정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적 도시인 샤먼에서 회담해 뜻깊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샤먼은 개혁·개방보다 대만과 지척이라는 상징성이 더 큰 곳이다.
대만 본토와는 불과 200㎞ 거리이고, 대만 영토인 진먼(金門)섬과는 최단 거리로 1.8㎞ 떨어져 있어 샤먼 해안가에서 섬이 관측될 정도다.
이 때문에 중국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 적신호가 켜질 때마다 고위급이 샤먼을 방문해 관련 메시지를 발신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실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2~25일 푸젠성을 시찰하며 "양안의 융합 발전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는 데 더욱 과감히 나서라"고 지시했다.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하자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견제 차원에서 대만과 밀착하고 있다.
중국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는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과 대만 관계에 많은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며 "대만을 바둑돌 삼아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냐"고 따졌다.
이어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라며 "넘어서는 안 되는 레드라인"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우방인 한국 외교장관을 샤먼으로 부른 왕 부장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지칭하며 "함께 유엔을 핵심으로 한 국제 형세를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다자주의를 수호하며 공동의 이익을 심화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분히 미국의 대중 압박을 겨냥한 발언으로 들린다.
앞서 왕 부장은 지난달 31일부터 전날까지 푸젠성 남부의 난핑에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외교장관과 잇따라 회동했다.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구애 작전을 펼쳐 미국의 반중 전선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한국에 더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시작된 소인수 회담은 당초 계획보다 45분가량 초과된 오후 1시 15분까지 이어졌다.
대화가 길어졌다는 얘기다. 양측이 10명씩 동수로 참가한 확대 회담은 오후 1시 23분부터 오후 2시 25분까지 1시간 넘게 지속됐다.
대북 이슈를 지렛대 삼아 한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전략도 확인됐다.
왕 부장은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한국과 함께 대화의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할 것"이라며 한국 측이 듣고 싶어 한 내용을 언급했다.
이에 정 장관도 "양국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갖고 있다"며 "우리의 노력을 중국 정부가 일관되게 지지해준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중국이 계속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미국의 대중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자 중국도 우호 세력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미국과 완전히 밀착한 일본과 달리 북한 문제에 민감한 한국은 미·중 간 중간 지점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으로 공을 들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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