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바이든 행정부는 월말에 '북한정책검토(North Korea Policy Review)'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잠정적인 제목일지언정 북핵 문제에만 집중하는 보고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인권의 가치를 강조해온 행정부이기에 북한 인권이 부각될 것이다. 북핵 문제를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은 두 현안을 어떻게 연계하여 하이브리드적인 대북전략을 만드는 데 있다. 이를 간파라도 하듯 북한은 연신 바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1월 5일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새로운 대내외환경에 대한 대비책을 내놨다. 대내적으로는 북한 인민의 단결을 촉구하면서 자급자족과 자력갱생으로 중단 없는 병진노선을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행보에 맞춰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새로운 미 행정부의 태도에 따라 ‘강대강(强對强), 선대선(善對善) 전략’을 구사할 것을 천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와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 보유국에 만족치 않고 핵무기 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북한은 핵무장으로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절반의 승리’를 가졌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이를 한반도 통일 관련 당 규약을 개정하는 계기로 삼았다. 새로운 당 규약은 “강력한 국방력으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길 것”이라며 사실상 무력 적화통일의 야욕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2019년 8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국군이 더 이상 북한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전한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을 제압해 조선반도(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고 규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 수사(修辭)가 재생되는 것 같았다.
핵에 대한 자신감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기라도 하듯 북한은 열병식을 혹한에도 강행했다. 당 대회 폐막과 함께 1월 14일 밤에 진행했다. 다수의 신형 핵무기 운반체가 선을 보였다. 이후 작년 4월부터 참아왔던 도발을 지난달에만 두 차례 감행했다. 21일에 서해상으로 순항 미사일 2발이 발사됐다. 25일에는 사거리 450㎞짜리 신형 탄도 미사일 2발을 동해를 향해 쐈다. 이로써 김정은은 공을 미국에 넘겼다는 식의 여유를 가지면서 미국의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대목에서 북한의 결의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중국과 국경을 폐쇄하고 제재로 북한 경제는 타격 받을 대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이 경제적 자력갱생을 추구하겠다니 말이다. 게다가 더 강한 핵무기의 부단한 생산도 선포했다. 통일방식도 무력사용을 정당화했다. 북한이 무엇을 믿고 저런 식의 발언을 내뱉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믿는 구석 없이 북한이 이런 호언장담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궁금증의 해답은 역시 중국에 있다. 북한과 중국 간의 특수한 관계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관계의 특수성은 동맹을 뛰어 넘는다. 비록 혹자는 이들 관계가 중국 외교 당국에 의해 ‘정상적인 국가 관계’라고 정의된 사실로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외교 당국의 시각이다. 이런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사회주의국가 관계라는 특수성을 무시하는 순진한 반응이다. 즉, 이들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국가 관계는 당 차원의 관계가 국가와 정부의 것에 군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들 사회주의국가의 관계를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당’이 아닌 ‘국가’를 주체로 보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는 국가를 영도하는 상위 행위자인 ‘당’ 차원에서 보면 정상적인 ‘국가 관계’는 ‘당 대(對) 당 관계’의 하위 개념이다. 사회주의 국가 간의 당관계는 그야말로 특수한 관계라는 뜻이다.
중국 외교 당국에서 북·중관계를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묘사한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의 상황적 배경 때문이다. 즉, 북·중 양국이 경제 협력 사업을 당 관할에서 정부 소관의 것으로 2005년에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로 중국 정부 부처는 대북관계를 일종의 국가관계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중국공산당 차원에서 보면, 북·중관계는 여전히 특수하다. 중국공산당은 양국의 관계를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치부한 사실이 없다. 북한노동당도 마찬가지다. 과거 냉전시기에 양당은 양국관계를 ‘혈맹’으로 묘사했다. 2000년도에 와서야 이런 냉전시대의 표현방식이 사라졌다. ‘전통적 우호관계’로 이를 대체했다.
북·중 양당의 지도자들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양당, 양국과 양국 인민의 ‘귀중한 공동 자산(財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런 자산을 세세대대가 계승해야한다는 원칙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북·중 양국의 특수한 관계가 유지된다.
북·중 양국의 의지는 지난 3월 23일 김정은과 시진핑의 구두친서로 재확인됐다. 두 사람은 북·중공조를 강화할 태세를 보였다. 김정은은 중국과의 관계를 세계가 부러워하는 관계로 발전시킬 것으로 자신했다. 중국 측도 2005년부터 견지한 북·중전통우호관계가 양국 공동의 ‘귀중한 자산(共同的財富)’임을 상기시켰다.
특히 중국은 대북관계의 특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진행하고 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볼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 측의 지지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대북관계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8년에 천명한 이른바 ‘3개의 불변(三個不變) 사항’(이하 ‘대북 3불’)이다. 북한에게 통일은 국정 최대 목표이다. 시진핑의 북한 3불은 북한 생존을 보장하는 중국 측의 약속이다.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 중국의 기본 입장이다. 한반도 통일이 외세의 간여 없이 우리 민족끼리 독립·자주적이고 평화롭게 이를 이루면 전혀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함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남북한의 합의가 아닌 북한의 입장을 중국이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순진하게도 이를 액면가로 받아들여왔다. 중국이 북한에게 속삭이는 것과 우리의 면전에서 하는 발언의 차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이 1980년 고려연방제를 통일의 방식으로 공식 채택한 후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 중국의 지지가 위험한 이유는 이의 전제조건이 오늘날 북·중 양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주장하는 미국과의 ‘평화협정’ 내용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1982년에 유엔총회에서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지지를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북한문제”의 해결 전제조건으로 1975년 채택된 UN총회 결의안 3390B호의 즉각적인 이행을 덧붙였다. 이는 유엔사령부의 해체, 주한미군의 철수와 유관 당사국의 담판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에도 이 같은 조건 하에서 북한의 연방제 지지를 재천명했다.(<중외관계사 사전(中外关系史辞典)>, 1992년 출판, 119쪽). 이는 2017년에 중국이 비핵화 방식 중 하나인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 추진)'에 평화협정을 포함시킬 수 있었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일방적인 북한 지지 입장이 유효한 사실은 오늘날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중국은 한·중수교 이후 우리에게는 남북간 자주평화통일을 언급해왔지만 남측이 북한의 통일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복선을 숨기고 있다. 이를 우리의 역대 정부와 지도자들이 읽어내지 못했다. 그저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 소리로만 순진하게 들었다.
중국은 우리의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2017년의 이른바 ‘3불(不)’원칙을 견지한다. 북한에도 중국은 2018년 6월 정상회담에서 ‘대북 3불’ 사항의 원칙을 제시했다. 대북관계에서 중국의 불변 입장 세 가지를 뜻한다. 즉, 중·북관계의 공고와 발전에 대한 확고한 입장, 중국의 대북 우호와 우정, 그리고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가 불변할 것임을 약속했다.
이로써 김정은은 당시 미국을 상대하는 데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그가 미국에 배짱있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201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로 미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었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즉, 북·미관계 개선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면 생존 대안으로 중국에 회귀(의존)할 수 있다며 경고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모든 것이 북한이 중국을 믿고 ‘벼랑 끝 전술’로 회귀할 것을 암시한다. 핵무기 강국으로의 도약도 중국과 함께할 수 있다는 셈법이 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마음 놓고 도발할 수 있는 여건을 가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결국 도발로 ‘벼랑 끝 전술’의 기대 효과를 또 한 번 노릴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비핵화 요구에 구속될 필요가 없어졌다. 중국과 이의 대가로 평화협정을 고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재도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중국을 믿고 자력갱생할 수 있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필수물자를 중국에서 조달하면 된다. 그리고 내수 진작을 자력갱생의 방도로 지난 6일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회의에서 김정은이 역설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북한의 생존 해법은 중국에 있다. 이런 전략적 옵션이 분명해지는 가운데 미국의 대북 셈법도 복잡하게 됐다. 인권과 북핵의 교집합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북한문제해결을 위한 한·미공조, 한·미·일 협력과 대중 압박 공조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중국이 우리 귀에 속삭이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의 대북 도전과제의 평화로운 해결 토대 마련이 가능하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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