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나라 국토가 만주까지라는 것을 강조해야 함에도 ‘무궁화 삼천리’로 영토를 한정시켜 일제의 반도 사관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
∙ 조선은 국토의 넓이가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다(朝鮮幅圓,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 1593년(선조 26년) 6월 29일
∙ 조선의 국토의 넓이는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 자국의 수도로부터 북경까지 사천리, 남경까지 삼천오백리다.(1)*
- 『사고전서』 「명일통지」 89권 외이·조선국
“서울에서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뜬 채 광활한 천리 북방영토가 베어졌다.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무한 반복 학습으로….
사천리 고유한 대한영토를 삼천리로 셀프 축소하는 것도 모자라 남북한 모두 <애국가>에 삼천리를 노래하면서 시나브로 반도 사관 프레임에 빠져들어 있다. 그리하여 근 80년에 이르도록 한반도 내 분열 대립 민족상잔 중이다. 이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
∙ 한국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북한 <애국가> 1절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 반만년 오랜 력사에
대표적 문헌을 10개만 골라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고전서·명일통지 89 외이 ·조선국朝鮮國』(1461년)
그러나 필자 역시 알게 모르게 우리 영토를 한반도만 생각하는 반도 사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각주
(1)*구글지도 거리측정을 해보니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1080㎞, 난징까지 920㎞로 각각 명청시대 거리기준 4천리, 3천5백리에 근접했다.
(2)* 중국 역대 1리 거리 변화
∙ 조선은 국토의 넓이가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다(朝鮮幅圓,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 1593년(선조 26년) 6월 29일
∙ 조선의 국토의 넓이는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 자국의 수도로부터 북경까지 사천리, 남경까지 삼천오백리다.(1)*
- 『사고전서』 「명일통지」 89권 외이·조선국
“서울에서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뜬 채 광활한 천리 북방영토가 베어졌다.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무한 반복 학습으로….
사천리 고유한 대한영토를 삼천리로 셀프 축소하는 것도 모자라 남북한 모두 <애국가>에 삼천리를 노래하면서 시나브로 반도 사관 프레임에 빠져들어 있다. 그리하여 근 80년에 이르도록 한반도 내 분열 대립 민족상잔 중이다. 이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
∙ 한국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북한 <애국가> 1절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 반만년 오랜 력사에
중국의 명·청(明·淸, 1368~1910년) 시대 거의 모든 문헌은 조선 영토를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 리(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로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 문헌을 10개만 골라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고전서·명일통지 89 외이 ·조선국朝鮮國』(1461년)
② 『수역주자록殊域周咨录』(1574년)
③ 『함빈록咸宾录』(1598년)
④ 『황명경세문皇明經世文』(1643년)
⑤ 『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1658년)
⑥ 『사고전서·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1743년)
⑦ 『사고전서·조선부朝鲜赋』(1781년)
⑧ 『사고전서·외사이관고총서外四夷馆考總書』(1781년)
⑨ 『사고전서·조선도설朝鮮圖說』(1781년)
⑩ 『광여도전서廣輿圖全書』(1785년)
필자는 지난 2년간 『조선왕조실록』, 『사고전서』를 비롯한 한·중 주요문헌에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로 우리나라 강역을 표기하고 있음을 알아 냈다.
아울러 ‘삼천리’ 는 원래 사형에 버금가는 유배 형벌 용어였다는 사실과 함께 1876년 이전 한·중 역사상 한국의 영토개념으로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리하여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무한 반복 주입으로 한국인의 고유영토관 사천리가 ‘삼천리’로 축소당하고 이는 북방영토 상실과 동북공정의 단초가 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리하여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무한 반복 주입으로 한국인의 고유영토관 사천리가 ‘삼천리’로 축소당하고 이는 북방영토 상실과 동북공정의 단초가 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뒤의 ‘남북 사천리’ 에 집중하느라 앞의 ‘동서 이천리’는 무심코 지나쳤다. 우리나라 영토의 가로 폭이 ‘동서 이천리’라니. 과장이 아닐까? 잘록한 한반도 허리가 아무리 넓어야 700~800리뿐인데 (10리를 4km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도), 과장이 아닐까? 약간의 의구심까지 품었다.
그러나 필자 역시 알게 모르게 우리 영토를 한반도만 생각하는 반도 사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1750년대 출간 조선왕실편찬지도도에서 조선과 청 나라의 국경선과 구글 지도의 거리를 측정해 본 결과, 앞의 ‘동서 이천리’ 역시 '남북 사천리'와 마찬가지로 만주가 조선 후기에도 우리 땅임을 동서남북으로 크로스체크 해주는 강철증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5세기~18세기 우리나라와 중국의 10리(里)는 4㎞가 아니라 5.76㎞였다.(2)* 따라서 조선 영토 동서 이천리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랴오닝성 서쪽 랴오허(요하)까지, 남북 사천리는 제주도 남단에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영토다. 즉 만주 지역은 고조선 시대나 고구려 발해 시대는 물론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까지 우리 땅이었다.
◆◇◆◇◆◇◆◇각주
(1)*구글지도 거리측정을 해보니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1080㎞, 난징까지 920㎞로 각각 명청시대 거리기준 4천리, 3천5백리에 근접했다.
(2)* 중국 역대 1리 거리 변화
* 주周대 1里 = 300보= 300 × 8척 = 300 × 8 × 19.496cm = 497.9m
* 당唐대 1里 = 360보= 360 × 5척 = 360 × 5 × 29.591cm = 532.6m
* 명明대 1里 = 360보= 360 × 5척 = 360 × 5 × 32cm = 576m
* 청淸대 1里 = 360보= 360 × 5척 = 360 × 5 × 32cm = 576m
* 1929년 이후 현재 중국 1리 = 500m (『续文献通考』 「乐·度量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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