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신아방강역고-27]중국이 우리 땅을 ‘동서 2천리’로 표기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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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21-04-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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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우절이 삼일절과 동격이고 현충일보다 상위인가

  • 허구한 날 거짓말 달고 사는데…굳이 만우절이 필요있나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애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나라 국토가 만주까지라는 것을 강조해야 함에도 ‘무궁화 삼천리’로 영토를 한정시켜 일제의 반도 사관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

∙ 조선은 국토의 넓이가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다(朝鮮幅圓, 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
-『조선왕조실록』「선조실록」 1593년(선조 26년) 6월 29일

∙ 조선의 국토의 넓이는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 자국의 수도로부터 북경까지 사천리, 남경까지 삼천오백리다.(1)*
- 『사고전서』 「명일통지」 89권 외이·조선국



“서울에서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뜬 채 광활한 천리 북방영토가 베어졌다.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무한 반복 학습으로….

사천리 고유한 대한영토를 삼천리로 셀프 축소하는 것도 모자라 남북한 모두 <애국가>에 삼천리를 노래하면서 시나브로 반도 사관 프레임에 빠져들어 있다. 그리하여 근 80년에 이르도록 한반도 내 분열 대립 민족상잔 중이다. 이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였다.

∙ 한국 <애국가>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북한 <애국가> 1절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 반만년 오랜 력사에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중국의 명·청(明·淸, 1368~1910년) 시대 거의 모든 문헌은 조선 영토를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 리(東西二千里 南北四千里)’로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 문헌을 10개만 골라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고전서·명일통지 89 외이 ·조선국朝鮮國』(1461년)
② 『수역주자록殊域周咨录』(1574년)
③ 『함빈록咸宾录』(1598년)
④ 『황명경세문皇明經世文』(1643년)
⑤ 『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1658년)
⑥ 『사고전서·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1743년)
⑦ 『사고전서·조선부朝鲜赋』(1781년)
⑧ 『사고전서·외사이관고총서外四夷馆考總書』(1781년)
⑨ 『사고전서·조선도설朝鮮圖說』(1781년)
⑩ 『광여도전서廣輿圖全書』(1785년)
 
필자는 지난 2년간 『조선왕조실록』, 『사고전서』를 비롯한 한·중 주요문헌에 ‘동서 이천리 남북 사천리’로 우리나라 강역을 표기하고 있음을 알아 냈다.
 
아울러 ‘삼천리’ 는 원래 사형에 버금가는 유배 형벌 용어였다는 사실과 함께 1876년 이전 한·중 역사상 한국의 영토개념으로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리하여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후렴의 무한 반복 주입으로 한국인의 고유영토관 사천리가 ‘삼천리’로 축소당하고 이는 북방영토 상실과 동북공정의 단초가 되고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뒤의 ‘남북 사천리’ 에 집중하느라 앞의 ‘동서 이천리’는 무심코 지나쳤다. 우리나라 영토의 가로 폭이 ‘동서 이천리’라니. 과장이 아닐까? 잘록한 한반도 허리가 아무리 넓어야 700~800리뿐인데 (10리를 4km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도), 과장이 아닐까? 약간의 의구심까지 품었다.

그러나 필자 역시 알게 모르게 우리 영토를 한반도만 생각하는 반도 사관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1750년대 출간 조선왕실편찬지도도에서 조선과 청 나라의 국경선과 구글 지도의 거리를 측정해 본 결과, 앞의 ‘동서 이천리’ 역시 '남북 사천리'와 마찬가지로 만주가 조선 후기에도 우리 땅임을 동서남북으로 크로스체크 해주는 강철증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5세기~18세기 우리나라와 중국의 10리(里)는 4㎞가 아니라 5.76㎞였다.(2)* 따라서 조선 영토 동서 이천리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랴오닝성 서쪽 랴오허(요하)까지, 남북 사천리는 제주도 남단에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영토다. 즉 만주 지역은 고조선 시대나 고구려 발해 시대는 물론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까지 우리 땅이었다.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각주

(1)*구글지도 거리측정을 해보니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1080㎞, 난징까지 920㎞로 각각 명청시대 거리기준 4천리, 3천5백리에 근접했다.

(2)* 중국 역대 1리 거리 변화
* 주周대 1里 = 300보= 300 × 8척 = 300 × 8 × 19.496cm = 497.9m
* 당唐대 1里 = 360보= 360 × 5척 = 360 × 5 × 29.591cm = 532.6m
* 명明대 1里 = 360보= 360 × 5척 = 360 × 5 × 32cm = 576m
* 청淸대 1里 = 360보= 360 × 5척 = 360 × 5 × 32cm = 576m
* 1929년 이후 현재 중국 1리 = 500m (『续文献通考』 「乐·度量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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