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돈 3분의 1만 써도 전세계 2% 성장
2019년 소비 규모와 비교해 볼 때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증가한 저축액인 이른바 '초과 저축(excess saving)’이 이렇게 대규모로 쌓인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경기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면서 가계는 지출을 줄였고, 각종 사업장은 문을 닫으며 소비가 침체된 탓이다.
이같이 묶인 대규모 자금은 곧 소비 여력으로 직결된다. 게다가 경기 회복이 가시화하면서 소비자들도 향후 경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백신 접종이 확산하면서 경제 봉쇄도 서서히 풀리고 있다.
올해 1 분기 콘퍼런스 보드의 글로벌 소비자 신뢰 지수는 2005년 기록이 시작된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모두 비슷한 상황이며, 억눌린 수요와 넘쳐나는 초과 저축의 조합은 소비자 지출을 급증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FT는 지적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캐나다의 저축률 역시 3%에서 15%, 스페인의 저축률도 4%에서 14%로 급증했다. 중동 역시 정부가 적극적인 코로나19 부양책을 펴면서 저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의 경우 정부 지원이 유럽이나 미국보다 적었고, 초기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지 않은 탓에 저축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았다. 남미와 동유럽 국가도 정부의 부족한 지원과 경기 부진으로 저축률이 낮았다.
인플레슈팅 온다 vs 안온다 '논쟁'
이처럼 소비를 위해 기다리는 자금이 급증하면서,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3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보다 0.6% 상승했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인 0.5% 상승을 웃돌았다. 2월 0.4% 상승보다도 상승폭이 커졌다. 3월 CPI는 전년 대비로는 2.6% 상승하면서, 전달에는 전년 대비 1.7% 올랐다.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3% 상승하면서 역시 시장예상치 0.2% 상승을 넘어섰다. 3월 근원 CPI는 전년 대비 1.6% 올라 전달의 1.3%보다 상승폭이 높아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물가상승률은 작업장 재개가 이어질 경우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저축이 갑자기 풀릴 경우 만연한 인플레이션이 고착되면서 경기회복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최근 지적했다.
그러나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교수와 경제학자들은 지난 5일 블로그를 통해 이같이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 닥칠 우려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우선 일자리를 유지한 미국인들은 여전히 유행하기 이전의 경제에서 소비한 만큼의 씀씀이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또한 경기에 대한 확신이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아 향후에도 여전히 조심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산에 따르면 경기부양 수혜자들은 정부 지원의 약 3분의 1을 지출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이 돈을 저축했다. 이들은 또 이미 소득이 높은 이들이라 현재보다 갑자기 지출을 늘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얀 해치우스 이코노미스트 역시 소비 여력이 부유층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향후 경기 회복이 기대치에 못 미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부유층의 초과저축액은 지출되기보다는 저축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치우스는 미국 초과 저축액의 3분의 2 이상이 상위 40% 가계에 집중됐다고 보았다.
FT는 "초과 저축액은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부유층에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면서 "데이터분석업체 모닝컨설턴트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도 저소득층 가계의 소득 여건은 1년 전보다 더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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