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대학은 넘쳐나고, 유례없는 감염병에 캠퍼스 낭만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특수목적고등학교 손질과 고교학점제 같은 새로운 개념에 학부모와 학생은 혼란이 가중됐다. 또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으나 입시 비리는 어김없이 터졌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동안 정파성을 뛰어넘지 못한 교육개혁이 '이번에는 다를까' 새 정부 때마다 기대하지만 충족되지 않는다. 이에 본지는 총 다섯 차례 기획을 통해 교육개혁 의미를 되새기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요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수시전형에 합격하면 뭐 하는지 알아? 대학 전공과목 과외받아."
학원가에 있는 지인이 너무 의연하게 말했다. 단순히 놀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외향을 가꾸는 데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은 '라떼'적 발상이었다. 수시와 정시 비중을 둘러싼 논란에는 항상 사교육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그동안 공교육 정상화와 선택 다양성을 이유로 수시를 강화하면, 공정성을 들어 정시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나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모두가 만족할 정답은 없는 상황에서 정권 따라 수시·정시 비중은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수시 확대 당위성 있지만··· "비리 여전"
"요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수시전형에 합격하면 뭐 하는지 알아? 대학 전공과목 과외받아."
학원가에 있는 지인이 너무 의연하게 말했다. 단순히 놀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외향을 가꾸는 데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은 '라떼'적 발상이었다. 수시와 정시 비중을 둘러싼 논란에는 항상 사교육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그동안 공교육 정상화와 선택 다양성을 이유로 수시를 강화하면, 공정성을 들어 정시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나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모두가 만족할 정답은 없는 상황에서 정권 따라 수시·정시 비중은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수시 확대 당위성 있지만··· "비리 여전"
찬반 논란 속에 수시는 영향력을 넓혔다. 내신 이외에도 다양한 경험과 잠재력을 평가해 입학을 결정한다는 '입학사정관제'가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이어진다. 대입 정책을 크게 손보지 않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수시 비중은 증가했다. 이에 수능은 수시 합격을 위해 최저등급을 맞추는 정도로 여겨지게 됐다.
대학들도 수시 입학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시 입학생보다 학과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이탈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또 정시는 수능 점수에 맞춰 학과를 지원하기 때문에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고 본다.
하지만 2019년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국 성인 501명 중 63.3%가 정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시는 재기회가 없고, 학생부에 교사 주관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등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수시는 학생부와 대학별 논술, 특기자 등 전형이 다양하다. 이 중 특기자 전형을 제외하면 일단 내신 성적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과 같은 사건이 발생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쌍둥이 자매는 2017년 당시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이듬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5차례에 걸쳐 교무부장이던 아버지 현모씨가 빼돌린 답안을 보고 시험을 치른 혐의를 받는다. 중·상위권이던 자매는 답안 유출이 의심된 시점부터 1년여 만에 성적이 올라 나란히 전교 1등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은 들끓었고, 결국 정시 비중을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체육 특기자(승마)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것도 논란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비리에 휘말리면서 고려대에 수시로 합격한 것까지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기조를 바꿔 정시 확대로 방향을 튼 계기이기도 하다. 당장 대학들은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해야 교육부가 재정 지원을 하는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16개 대학은 40% 이상으로 높여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정시 확대 기조에 교육 현장 혼란
구체적으로 건국대·경희대·고려대·광운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성균관대·숙명여대·숭실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 등이 올해 정시 비중을 40% 안팎으로 늘려 신입생을 선발한다. 앞서 학종과 논술 선발 비중이 45% 이상이어서 '전형 비율이 불균형하다'고 판단된 대학들이다. 이에 따라 학종 비중 평균은 지난해 45.5%에서 올해 36.1%로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시 확대가 고교학점제와 정책적으로 모순된다고 비판한다. 고교학점제는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스스로 진로와 적성에 따라 자유롭게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지정된 학점(3년간 192학점)을 채워야 졸업할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이기도 한 고교학점제는 2025년 전국 시행을 목표로 한다.
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은 "대입 제도는 오히려 정시 확대로 퇴행했다"며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고교학점제를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해 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올해 고3 학생들이 정시 확대 부담 속에 선택과목 복불복 우려를 안게 됐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국어·수학 영역도 '공통과목+선택과목' 구조로 바뀐다. 전년도까지는 탐구·제2외국어 영역에서만 과목을 선택하면 됐는데, 올해는 범위가 확대됐다.
문제는 선택과목이 복불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실제 탐구 영역은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원점수가 같아도 표준점수가 10점가량 차이가 나는 문제가 발생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수학 영역이다. 그동안 문·이과 계열에 따라 나뉘던 수학 가형·나형 구분이 없어지고, 대신 '수학Ⅰ·수학Ⅱ'를 공통과목으로 한다. 그리고 '확률과 통계'나 '미적분', '기하' 중 하나를 선택해 응시해야 한다.
수학에 자신 있는 이과 학생들은 미적분·기하를 선택하고, 문과 학생들은 확률과 통계에 선택이 몰릴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다만 대학들이 문·이과 계열에 따른 수능 선택과목 제한을 두지 않아 문과 학생들이 불리해졌다. 지난 3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전국연합학력평가 결과 수학 영역에서 확률과 통계를 택한 수험생 원점수 평균은 100점 만점에 30.54점으로 집계됐다. 반면 미적분과 기하는 각각 50.58점, 44.14점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고민이 깊다. 외국어고등학교, 자율형사립고등학교가 2025년 존폐 기로에 놓인 데다 그해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도 앞두고 있다. 새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을 치르는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입제도 개편안은 2024년 2월까지 발표하겠다는 것 외에 소식이 없다. 교육과정과 대입 간 엇박자가 또다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외고·자사고는 법정 다툼에서 교육청이 일제히 패소한 상태여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은 "개정 교육과정이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인 고교학점제 정책을 합리화하거나 2028 대입 틀을 변화시키려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인상"이라며 "올해 교육과정 총론을 확정 짓고, 대학입시 개편 방향 발표 시기를 성급히 못 박고 추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어 "교육에는 좌우가 없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번 정부에서) 교육정책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며 "교육과정은 사회적 컨센서스에 기반을 둔 중핵적 가치를 교육 이념과 방향·인간상으로 개념화하는 것으로, 반드시 국민적 공감과 합의된 가치를 선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