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의 '다시 뛰는 날이 온다면'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1-04-28 18:1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마라톤 영웅 이봉주.

그는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 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국민마라토너다. 힘들 법한 마라톤 여정에도 항상 밝은 얼굴로 달리던 그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로 인해 항상 달리던 그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을 하는 팬들이 많다. 그는 다시 뛰는 날이 온다면 두발로 어디를 달리고 싶을까? 국민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와 그의 달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마라토너 이봉주 제공 ]


Q.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A. 몸이 안 좋아서 치료하는데 시간 할애를 많이 하고 있어요.

Q.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던 계기는 뭔가요?
A. 특별활동 시간에 육상부에 들어가서 처음 시작그하게 됐어요. 동물농장에 나오는 이웅종 소장이랑 운동 같이 시작을 했는데 육상의 재미를 맛본 거죠. 어리버리하게 시작해서 육상에 재밌을 붙이다 보니까, 본격적으로 1년하면서 기량도 좋아져서 이걸로 성공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Q.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을 향해 달려오셨나요?
A. 마라톤을 하다 보니까, 목표가 하나씩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국가대표 태극마크만 달아보자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서니까, 기록, 금메달 같은 또 다른 목표가 계속 생겨나는 거예요. 마라톤은 기록경기 이기 때문에 목표 기록을 달성하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는 거죠.

Q. 지금 목표는 뭔가요?
A. 뛰어서 기록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게 아니라 한국 마라톤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마라톤 박물관과 마라톤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그걸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Q. 지금 아픈 게 마라톤을 하면서 많이 뛰었던 게 영향이 있는 건가요?
A. 그건 아닌 것 같고, 촬영을 하다가 무리해서 그게 원인이 된 것 같아요.

Q. 20년 동안 이봉주 선수의 기록을 깬 선수가 아직 못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선배 선수로서 그게 안 타까울 것 같아요.
A. 그렇죠. 발전을 하려면 제 기록을 넘어서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게 그만큼 한국 마라톤을 발전을 못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안타깝긴 하죠.

Q. 어떻게 하면 한국 마라톤이 발전할 수 있을까요?
A. 후배들도 노력을 많이 해야 되고 옆에서도 서포터도 많이 하면서 다각적인 방면에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진= 마라토너 이봉주 제공 ]


Q. ‘정말 잘 달렸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그걸 증명하는 건 뭔가요?
A. 2007년이었던 것 같아요. 적은 나이도 아니고 마흔 가까이 된 나이에 역전우승 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 정말 참 잘 달렸구나” 그리고 한국 신기록 깼을 때도요.

Q. 다시 뛰는 날이 온다면 두 발로 어디를 가고 싶으신가요?
A. 우리나라를 내 발로 뛰어서 국토대장정을 해보고 싶어요. 그걸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어요.

Q. 마라톤은 신기록을 세웠는데 100m 달리기는 기록이 얼마나 나오나요?
A. 제가 100m 달리기를 잘 못해요. 그래서 운동하기 전까지 단거리에서 상장을 받은 게 한번도 없었어요. 마라톤 선수 중에서 단거리 달리기는 제일 못할 거예요. 단거리에서 저를 못이기는 사람은 없을 걸요(웃음).

Q. 이봉주에게 달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제 인생이죠. 달리기와 저는 땔래야 뗄 수 없는 사이에요. 지금까지도 늘 뛰었었고, 앞으로도 계속 뛰어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광의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A. 2001년 보스턴 마라톤이죠.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기였고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후에 맞이한 경기에서 우승을 했고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했을 때 사람들에게 힘을 주게 한 경기였던 것 같아요.

 

[사진= 마라토너 이봉주 제공 ]


Q. 봉달이, 국민 마라토너, 봉주르, 마라톤 영웅 등의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A. 아무래도 저는 국민 마라토너라는 칭호를 붙여줘서 그게 제일 과분하기도 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봉주라는 이름을 인정해주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Q. 국민마라토너 이봉주에게 가장 뼈아픈 실패의 기억은 언제인가요?
A.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예요. 많은 사람들이 기대도 많이 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승을 놓친 뼈아픈 실패를 했었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어머니께서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시겠다고 시드니까지 오셨는데 넘어지는 바람에 내 뜻대로 안됐죠. 그래서 그때 뼈아픈 고통을 많이 느꼈죠, 그때 시합 끝나고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그 해 12월에 일본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준우승하면서 재기를 했어요.

Q. 마라톤을 몇 년 동안 했나요?
A. 90년도에 시작해서 2009년 까지 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지난해 2월 한 포럼 행사에서  강연 중인 이봉주 선수 ]


Q. 달리는 것 외에 가장 하고 싶은 건 뭔가요?
A. 여행하는 걸 제일 좋아해요. 신혼여행도 기억에 남는데 그때는 너무 타이트하게 갔다와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어요.

Q. 이봉주에게 승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의지의 산물이에요. 시합을 하기 위해서 몇 달 동안 준비하는데 의지가 없으면 안 되거든요. 수많은 고통을 버텨내면서 끈기 있게 도전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승은 물론이고 좋은 기록도 낼 수 없거든요.

Q. 열심히 달린 사람은 발에서 티가 나는 것 같아요. 이봉주 선수의 발을 스스로 보면서 그런 생각 안 드나요?
A. 내 발이 고생 많이했죠. 제대로 된 발톱이 하나도 없어요. 예전에는 발톱이 검은 색이었는데 지금은 운동을 덜 하니까, 하얘졌어요.

Q.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한다면 지금은 어느 지점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유는 뭔가요?
A. 하프를 살짝 지난 것 같아요. 30km쯤 오지 않았나 싶어요. 마라톤에서는 30km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모든 선수들이 30km까지는 같이 가는데 거기서부터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낙오하는 선수들이 나타나요. 그때 추려지는 거죠.

Q. 마라톤 선수로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선수의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30km에서 잠시 한 눈 팔면 낙오가 되거든요. 여기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요. 그래서 정신력과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Q. 마라톤은 이봉주 인생에 무엇이었나요?
A. 어머니 같은 존재죠. 마라톤을 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마라톤을 통해서 인생을 바꿔 놓고 제가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품처럼 안고 가는 거죠.

Q. 이봉주 선수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A. 저한테 모든 걸 주신 분이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 덕분인 게 사실이고요.

Q. 기회는 누구에게나 간절합니다. 저도 제게 기회를 준 분들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이봉주에게 가장 큰 기회를 준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기회였고 그 기회가 삶과 커리어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A. 가족이죠. 가족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이고 제가 마라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가족들 덕분이고요.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Q. 지금 돌아봤을 때 이봉주가 경험한 마라토너는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세요?
A. 도전 해볼 만한 직업인 것 같아요. 그리고 마라톤을 하면 몸이 건강해져요. 몸이 괜찮아지면 1시간이라도 뛰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Q. 자녀가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A. 처음에는 잘 생각을 해보라고 해야죠. 다른 것도 있는데 굳이 마라톤을 하냐고 처음에는 얘기할 것 같은데 그래도 마라톤을 하겠다고 하면 크게 말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걸로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말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Q. 마라톤을 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나요?
A. 운동을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하는 것과 목표의식을 갖고 하는 건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마라톤을 하더라도 목표를 정해서 하게 되면 성공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목표가 있으면 그걸 향해 도전하고, 실력도 늘게 되거든요.

Q.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추어 마라토너 시절과 프로 마라토너의 시절을 비교했을 때 이봉주는 무엇이 달랐고, 무엇을 유지하려고 했나요?
A. 금전적인 면도 있을 거고 생각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프로는 대우를 받고 그만큼의 실력을 보여주고 값어치를 해야 되지만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즐기면 돼요.

 

[사진= 마라토너 이봉주 제공 ]


Q. 직업 만족도는 5점 만점에 몇 점이고 그 이유는 뭔가요?
A. 한 3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인기종목이다 보니까, 최근에는 젊은 친구들이 인기종목을 선호하게 되고 비인기종목은 등한시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요즘에는 육상을 하려고 하는 선수들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마라톤도 한계가 온 거예요. 옛날에는 육상부가 없는 학교가 없었는데 이제는 육상부가 있는 학교를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런 상황에서 좋은 기록을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Q. 그래서 이봉주 선수의 기록을 깬 선수가 안 나오는 것 일 수도 있겠네요.
A. 그럼요. 앞으로는 더 깨기 힘들죠. 선수들이 없는데.

Q.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목표를 갖고 달리는 게 중요해요. 달리는 건 그냥 달리는 거예요. 근데 목표를 정해 놓고 가다 보면 뭘 해도 돼요. 항상 머릿속에 뭐가 되고 싶다고 되뇌다 보면 언젠간은 될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이봉주 선수 싸인]



Q. 마라토너를 안 했으면 뭘 했을까요?
A. 큰 목장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제가 동물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한때는 큰 목장을 하는 게 꿈이었어요.

Q. 보통 사람들은 성실과 노력을 병행하기 힘들어합니다.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 발전도 기회도 없이 제자리인 것 같은 답보 상태가 지속될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 그게 슬럼프인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평상시랑 똑같이 해도 발전이 없는 거예요. 계속 쳐지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는 무조건 똑같은 것만 고집하지 말고 변화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Q.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떤 변화를 줬나요?
A. 그래서 저는 뛰는 걸 잠시 내려놓고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의 변화를 주고 가볍게 뛰면서 운동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갔어요.

Q. 언제 노력의 열매를 맛봤다는 생각이 드나요?
A.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했을 때 노력의 열매를 맛봤다고 생각해요.

Q. 이봉주의 삶에서 데드포인트는 언제였나요?
A. 99년도에 팀에서 나와서 한동안 무소속으로 있었을 때가 데드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록도 세우고 새로운 팀에 창단 맴버로 갈 수 있었고요.

Q.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그 순간 다시 일어나서 달리게 했던 원동력은 뭔가요?
A. 힘든 고비가 왔을 때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많지만 내가 가야될 목표가 있고, 주위에 나를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다는 걸 생각하다 보면 쉽게 포기가 안돼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Q. 마라토너로서의 이봉주,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이봉주, 사람으로서의 이봉주는 어떤 사람인가요?
A. 마라토너로서는 주어진 삶에서 내가 가야될 길을 열심히 가고 다른 생각하지 않고 달려온 것 같고, 아버지, 남편으로서는 0점이에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잘 하면서 살려고 하니까 몸이 안 좋아지네요. 사람으로서는 마냥 그냥 순한 사람이죠. 싫은 소리도 하기 싫고요.

Q. 당장의 목표는 뭔가요?
A. 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게 목표예요. 건강하게 돌려놓은 거요.

Q. 꿈을 찾고 있는 사람, 꿈을 향해 달려가던 중에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방법을 찾아서 가다보면 길이 보일 거예요. 순간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거든요. 길이 안보여도 끝까지 참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다 보면 뭔가 나올 거예요.

Q.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시간이 오래지나도 “마라톤에는 이런 사람이 있었다” 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 선배님이신 손기정 선생님 같이 되고 싶어요. 그분들 따라갈 수는 없지만 시간이 한참 지났을 때 “마라톤 하면 그런 사람도 있었어”라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몇사람이라도 있으면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Q. 이봉주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A. 건강한 몸으로 움직여서 아버지만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고통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다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마라톤을 하다 보면 데드포인트가 한번씩은 오거든요. 그때 포기하면 낙오가 되는 거고, 그걸 잘 이겨내면 좋게 완주도 할 수 있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오니까, 절대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위기를 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이봉주 선수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