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복마전 ③] 을이었던 건설사들 "앞으로 통장은 제가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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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신동근 기자
입력 2021-04-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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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비 운영내역 요구하자 "시공사가 주지 않아서 불가능"

  • 계약 체결한 전임 조합장 구속…시공사도 "내막은 몰라요"

비전문가인 조합과 허술한 회계규정 사이에는 '을'이어야 할 건설사가 파고들었다. 시공사로 뽑아달라며 읍소했던 건설사와의 계약서에는 "통장을 시공사가 관리하기로 한다"는 등의 황당한 조항이 달렸다.

25일 본지가 확보한 송파구 A 재건축 조합 공사도급계약서 내용을 종합하면 조합으로 들어온 수입의 75%가 시공사 컨소시엄 통장으로 자동이체된다.

내부 감사가 사업비 운영내역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시공사가 입출금 명세서를 주지 않아서 불가능하다"였다.
 

지난해 11월 용산구에서 열린 한 정비사업조합 시공사 선정 총회에 모 아파트 단지 조합원들이 시위하는 모습. [사진 = 김재환 기자]

실제로 2015년 체결된 공사도급계약서 제19조에는 "아파트 및 상가 분양대금 등 일체의 수입금 통장 명의는 조합과 시공 3사 공동명의로 하고 시공 3사가 관리하기로 한다. 입금액은 시공사 계좌로 다음 영업일에 자동이체한다"고 기재됐다.

2조원대 사업 주체이자 발주자인 조합이 공사비를 받아서 일해야 할 건설사 허락을 구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계약을 체결한 이유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계약을 체결한 전임 조합장은 뇌물죄로 감옥에 있고, 관련 건설사들 역시 수년 전 담당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상태여서다.

A조합 감사는 "사업비 지출에 대한 투명성 또는 위법성을 감추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체 어디에, 뭘, 왜, 적정한 가격에 썼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전체 수입의 75%가 시공사 통장으로 들어가는 만큼 시공 결과물과 비용의 타당성을 따져서 조합이 돈을 낼 수가 없는 상태다.

A조합장은 "일단 전체 수입금 안에서만 쓰면 되니까 막말로 1000원짜리 마감재를 1만원이라고 속여서 들여와도 조합에서 뭐라 할 수가 없는 구조로 돼 있다"고 했다.

발주자인 갑과 시공사인 을이 바뀐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다. 공사비 과다 책정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과천주공6단지의 경우 도급계약 관련 협의를 건설사와 조합장만 공유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후 총 1200억원을 증액하는 공사비 변경 계약이 체결됐고, 조합원 반발이 시작됐다. 이 계약을 체결한 조합장은 퇴임한 상태다.

또 서대문구 북아현 1-3구역과 왕십리뉴타운 3구역은 공사비 증액에 따른 조합원 분담금 증가 문제로 갈등을 겪다 서울시 중재를 받거나 소송을 치렀다.

시공권 계약 당시 약속했던 공약도 철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대조1구역과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에서 각각 약속받았던 이사비 1000만원과 7000만원은 각각 없던 일로 돌아갔다.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돌아간다. 조합 내부에서 발생한 갈등과 사업 지연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 개입하겠다"며 의지를 밝혔다가 이내 조합과 건설사와의 계약에 개입할 수 없다고 물러서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해 발표한 '2020 주거종합계획'에 따라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금지할 사항과 처벌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공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진흙탕 수주전 끝에 대규모 기소 사태로 번졌던 '한남3구역' 방지법이 무산된 셈이다. 무산된 원인은 현행대로 행정지도가 적절하다는 이유였다.

A조합의 사례에도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규정돼 있지 않은 내용이라 정부나 법률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조합원이 고소 등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합원들은 부동산 부패의 온상은 정비사업에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중이다. 정부의 방치와 대기업 건설사, 건설사와 이해관계로 엮인 조합 사이에서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재건축 복마전 ④] 피해자들 "모르면 당하고 알면 억울해··· 부동산 부패 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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