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감염병 사태는 그동안 진행되던 세계화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우선 일차적인 영향을 보자. 감염병 사태로 인해 무엇보다도 국가 간, 지역 간뿐만 아니라 국내, 지역 내 사람의 이동도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광, 여행, 교통 등 사람의 이동에 의존하는 활동들은 크게 위축되었다. 당연히 사람의 이동에 의존하는 형태의 세계화는 후퇴하고 있다. 국가 간 이민도, 일시방문을 통한 교류도 거의 멈춘 상황이다.
감염병 사태의 세계화에 대한 이차적인 영향까지 살펴보면 예측이 간단하지 않다. 사람의 이동이 제한됨에 따라 업무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출장이 대폭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출퇴근이 줄고 재택근무가 늘어났다. 한 곳에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며 일을 진행하기보다 여러 곳을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화상으로 회의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환경변화에 대한 인류의 적응력은 무시할 수 없다. 거기에다, 운이 따라주었다고 해야 할까. 지난 30여년간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동제한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사람의 이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 비대면 세계화는 오히려 촉진되고 있다.
일차적인 영향과 이차적인 영향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물론 감염병 사태가 끝나면 세계는 감염병 이전의 생활방식과 업무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연 그럴까. 원상으로 돌아가는 부분도 있지만, 항구적으로 변화되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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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사태는 경제위기이기도 하다. 아니, 지난 반세기 동안 발생한 경제위기 중 가장 큰 위기다. 지난번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에 세계경제는 0.1% 마이너스 성장하였다. 선진국들은 3.3% 마이너스 성장하였지만, 신흥국들이 2.8% 성장하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제로 성장에 가까웠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 감염병 사태에 따른 경제 위축은 훨씬 컸다. 세계경제는 2020년에 4.4% 마이너스 성장하였다. 선진국들이 5.8% 마이너스 성장하고, 신흥국들도 3.3% 마이너스 성장하였다. 흔히들 지난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했는데, 실은 이번 감염병 사태가 역사상 최초의 지구상 모든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화의 추세를 계량화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무역량이다. 2000년에서 2008년까지 세계무역량은 연 5% 정도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자 2008년에서 20009년 사이에 10% 정도 축소되었다. 위기 뒤에는 무역이 회복되어 다시 성장했지만 성장세는 크게 꺾여서 2010년에서 2019년 사이에 연 1.5%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은 세계화의 부작용 또는 급속한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인 측면이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경제위기가 세계화의 기세를 꺾고 속도조절을 유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처럼 이번 경제위기 이후에도 진행되던 세계화의 기세가 꺾일 것인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그랬던 것처럼 감염병 사태가 진행된 2020년에도 세계무역은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계무역이 2.7% 성장하였고, 2021년에는 그 2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물자의 이동은 늘어난 것이다. 고전적 국제무역이론의 일부인 스톨퍼-새뮤얼슨 정리는 ‘사람의 이동을 물자의 이동이 대체한다’고 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이동이 축소되면 물자의 이동이 오히려 증가될 수 있다. 무역량을 세계화의 지표로 본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는 달리 세계화는 일단 멈추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이기도 한 이번 감염병 사태 이후, 세계화의 기세가 중장기적으로 꺾일 것인가. 경제위기가 세계화의 내재적인 부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비대면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채수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수학과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카이스트 대외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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