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투어웨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KLPGA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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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이동훈 기자
입력 2021-05-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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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LPGA 제공]

올해 첫 대형(메이저) 대회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대회장은 '사우스링스 영암'이다. 

링스 골프장은 해안 지대에 있어 바람이 심하고 변덕맞은 날씨가 특징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여지없이 그 위력을 발산 중이다. 셋째 날(무빙데이) 초속이 최대 7.3m까지 불었다.

이 바람을 골프 선수(골퍼)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골프채는 두 클럽 이상을 쥐어야 하고, 퍼트하려는 순간 모자가 날아갈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티샷 때도 마찬가지다. 드라이버가 바람의 영향으로 티 위에 올려진 공을 건드릴 때도 있다.

마지막 날인 오늘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고 있다. 전날에 비해서는 덜 불지만, 펄럭이는 소리에 옆 사람의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다.

마치 포화가 빗발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차를 타고 대회장으로 향했던 길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골프장 초입, 정확히 말하면 골프장과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이 나뉘는 갈림길에 임희정(21)의 팬클럽(예쁜 사막여우)이 서 있었다. 개막전(롯데렌터카 여자오픈)부터 이 대회까지 세 대회 연속이다. 제주, 김해, 영암이라 전국구라고 부를 법하다.

오늘은 또 다른 응원 도구를 들고 왔다. 세 명이 글귀가 적힌 네모난 판을 들었다. 이들은 강풍에 눈을 뜨지 못하면서도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임희정 화이팅'을 신나게 흔들었다.
 

천연 잔디에서 연습 중인 선수들[사진=사우스링스 영암 제공]

골프장으로 들어서면 짐앵 클럽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스코틀랜드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흐린 날씨, 구름 사이로 햇빛이 모습을 비춘다. A코스 옆에는 드라이빙 레인지(연습장)가 조성돼 있다. 천연 잔디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골프장이 배려해 줬다. 대회 관계자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를 대표하는 대회인 만큼 골프장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양덕준 '사우스링스 영암' 회장이 있다. 양 회장은 대회 전 직원들을 불러 모아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연습장 등 최상의 조건을 주문한 바 있다. 

연습하는 선수들을 지나면 대회장인 카일필립스가 나온다. 지평선에 수많은 갈대가 흔들린다. 갈대 사이로 푸른 잔디와 대회를 상징하는 붉은색 핀 플래그(깃발)가 펄럭인다. 하늘에는 갈매기와 제비가 강풍을 타고 왈츠를 춘다.

보고만 있어도 아름다운 광경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역 시스템을 지나면 연습 그린이 있다. 선수들의 얼굴은 마지막 날이라는 긴장감과 온몸을 때리는 강풍에 경직됐다.
 

[사진=사우스링스 영암 제공]


전날 밤 사흘 연속 선두를 달리던 김지영2(25)의 덜미를 '쫄보' 김효문(23)이 잡았다. 10언더파 공동 선두로 8언더파를 때린 박현경(21)과 오전 10시 51분 마지막 조로 출발한다. 박현경은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로 방어전에 나선다.

사흘 연속 선두인 김지영2의 캐디는 쉐인 코머(아일랜드)다. 그는 기자와의 짤막한 대화에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내 고향이 아일랜드다. 링스 컨트리"라고 외쳤다. '밥 먹듯 링스 골프장을 돌았고, 자신 있게 길잡이를 해보겠다'는 말이다.

마지막 날이 시작됐다. 코로나19를 딛고 후원사(크리스F&C), 주관사(KLPGA), 골프장, 운영사 등 모두의 힘으로 시작된 대회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대회 우승자는 '메이저 퀸'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붉은색 우승자 재킷을 입는다. 그리고 은색 우승컵을 품에 안는다.

하지만, 오늘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골프 대회에 훈장이 있다면, 우승자 재킷에 하나쯤 달아줬으면 싶다. 링스에서 강풍을 견뎠다. 전쟁터의 영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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