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불가리스 코로나 억제 효과 논란’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불가리스 사태가 일어난 지 21일 만이다. 홍 회장은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며 사과했다. 전날에는 이광범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다. 홍 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기획마케팅본부장도 회삿돈 유용 의혹에 보직 해임됐다.
홍 회장은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대강당에서 불가리스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홍 회장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당사의 불가리스와 관련된 논란으로 실망하고 분노했을 모든 국민과 현장에서 더욱 상처 받고 어려운 날들을 보내는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국내 가장 오래된 민간 유가공 기업으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제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입장문을 읽어내려가던 홍 회장은 울먹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홍 회장은 “2013년 회사의 밀어내기 사건과 외조카 황하나 사건, 지난해 발생한 온라인 댓글 등 논란들이 생겼을 때 회장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 사과드리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남양 만들어갈 직원들을 성원해달라”고 당부했다.
◆ 경영진 공백 상태 빠진 남양유업
홍 회장의 사퇴로 남양유업 경영진은 공백 상태에 빠졌다. 지난 3일 이광범 대표는 임직원에게 사내 이메일을 통해 불가리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표는 “불가리스 보도와 관련해 참담한 일이 생긴 것에 대해 임직원께 깊이 사과한다”며 “이번 사태 초기부터 사의를 전달했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오너 3세인 홍진석 상무는 지난달 회삿돈 유용 의혹이 불거지자 보직 해임됐다. 홍 상무는 회사 비용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 등교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아왔다. 회삿돈 유용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보직 해임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상무는 지난달 보직 해임된 상황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불가리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 발표가 발단
남양유업은 지난달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을 통해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박종수 남양유업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장은 “발효유 완제품이 인플루엔자,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음을 국내 최초로 규명했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불가리스 발효유 제품에 대한 실험 결과 인플루엔자바이러스(H1N1)가 99.999%까지 사멸하는 것을 확인했고 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에서도 77.8% 저감 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남양유업의 주가는 급등했으며 일부 판매처에서 불가리스가 품절 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특정 식품의 코로나19 예방 또는 치료 효과를 확인하려면 사람 대상의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며 “잘 통제된 사람 대상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그 이후에 공유할 만한 효능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해당 연구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결과는 바이러스 자체에 제품을 처리해서 얻은 결과”라며 “인체에 바이러스가 있을 때 이를 제거하는 기전을 검증한 것이 아니라서 실제 효과가 있을지를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같은 달 15일 “남양유업의 불가리스 제품 코로나19 억제 효과 발표와 관련,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행정처분·고발조치했다”고 밝혔다.
식품표시광고법은 식품에 대해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나 광고행위가 있는 경우 최대 10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도 받는다.
◆ 사과문 냈지만 논란 커지며 불매운동 시작
이에 남양유업은 사과문을 냈다.
남양유업은 16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심포지엄 과정에서 이 실험이 인체 임상 실험이 아닌 세포 단계 실험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코로나 관련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불가리스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부정확한 정보를 통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자사 제품 홍보에만 열중했다는 이유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남양유업의 본사 사무실과 세종연구소 등 6곳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한편, 한편 홍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이날 주가가 반등해 눈길을 끌었다. 홍 회장 대국민 사과 직후 남양유업 주가는 한때 18% 가까이 오르기도 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