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향해 열린 건물, 청담헌
두 차례, 그 사람의 손이 지나간 자취를 뉴스를 통해 만났다. 한번은 전남 함평의 호접몽가(蝴蝶夢家)가 제35회 세계건축상을 받았을 때였고(2020. 10.6) 두 번째는 지난달 12일 삼각산 도선사에 세워진 '소울림(消鬱林, 소울포레스트)'이 독일 iF디자인어워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다. 이 종교 건축물은 작년 10월 세계건축상을 이미 받은 바 있어서 한 건축 작품이 세계적 어워드에 연속수상하는 영예를 누린 것이다. BTS에 대한 세계의 열광과 영화 '기생충' 그리고 '미나리' 같은 작품에 대한 일련의 주목으로, 우리는 한국 문화가 세상을 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중이지만, 한국의 건축은 그런 꿈을 꿀 잠재력조차 글로벌한 시야에 제대로 포착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제적인 상을 거듭해서 받고 있는 한국의 건축가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에게서 세계를 선도할 건축술의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주인공인 윤경식 한국건축회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가평 청평호반에 있는 그의 건축디자인 스튜디오 청담헌(淸談軒)을 찾았다. 스튜디오는 탁 트인 구조로 된 관란통경(觀瀾通景, 물이랑을 구경하기 좋은 투명창)의 단층 건축물이었다. 달팽이관처럼 비탈을 돌아 올라가는 입구도 인상적이다. 윤 회장의 인상은 서글서글하여 편안했고 청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우선 청평호와 문필봉(文筆峰)을 떠오르게 하는 저쪽 호안(湖岸)의 보납산이 인상적이었다. 4월 하순의 산빛은 실로 아름다웠다. 이 건축가는, 저 500호 짜리의 예술품을 눈 밖에다 두려고 하지 않았다. 기둥의 눈걸림이 없는 투명창을 통으로 배치하고 창 밖에 생긴 베란다에도 투명난간을 두어 실내에서도 온전히 산과 강을 누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투명창 반대쪽에는 열주(列柱)가 서 있었다. 수상을 한 그의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종이기둥이었다. 어떻게 종이로 만든 기둥이 천장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우선 그는 이 방식이 재활용한 종이를 쓰는 친환경적인 건축술이라고 했다. "한 장 한 장 식물성 아교를 발라서 고속회전을 시켜 기둥을 만들죠. 그렇게 만든 기둥은 물과 불에 강하고 수명도 수백 년은 갈 수 있을 만큼 내성이 강해집니다. 종이가 원래는 나무 아닙니까. 거기에 콘크리트 자재에 비해 무게도 가볍고 제작비용도 저렴합니다." 아교에 달라붙은 종잇장들이 서로를 물고 돌아가는 힘으로 서있는 종이기둥은, 나무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무게를 견딘다.
"건축가가 공간을 임의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독단일 수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필요와 용도와 상황에 맞게 결정해서 쓸 수 있도록 모든 여지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담헌은 '용(用)'의 구조물이었다. 거실은 텅 빈 것처럼 널찍했고 조붓한 한쪽을 가둬 서재와 디자인실로 쓰고 있었다.
종교건물의 혁신을 제안하는 건축가
그곳에서 윤 회장은 스스로의 건축 철학과 실천에 관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는 최근에 연속 수상의 기염을 토한 종교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첫 장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덜 종교적인, 더 부처닮은'
'덜 종교적인, 더 예수닮은'
이 카피에 입이 딱 벌어졌다. 종교건축물은, 인간 주거와 삶의 가치를 담은 다른 일상건축물과는 달리 인간의 믿음과 죽음이나 그 이후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일상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공간 형식을 지닐 수밖에 없다. 건축이 표상하고 공간이 드러내는 의미와 기표(記標)가 신앙의 원관념과 닿아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전통이나 교리의 관행들이 건축을 규정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건축가는, 종교건축물을 만드는 제1의 가치로, 현재의 종교가 지니고 있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면모를 완화하고자 한다. 대중을 오히려 소외해온 종교의 장벽을 걷어내는 대신, 그 믿음의 원천을 이룬 부처와 예수라는 본질의 의미에 충실한 건축물로 종교의 매력을 돋우고자 한다. 신앙의 공간인 교회와 성당, 혹은 사찰의 건축가치를 혁신함으로써 최근 종교가 상실한 흡인력을 새롭게 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건축가가 이런 역발상으로 종교에게 혁신을 제안하고 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절과 교회가 달라졌다
이번에 iF상을 다시 받은 '소울포레스트'는, 덜 종교적이면서도 더 부처닮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가 이름붙인 영림(靈林, soul forest)은 위패(죽은 이의 혼을 상징하는 패) 9층탑 구조물이다. 유리로 된 이 탑에는 9개의 부처보살상이 모셔졌고, 위패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그간 불교의 사찰이 고집하던 동양식 지붕인 기와도 없고, 건축의 익숙한 형상도 없다. 대신 투명한 유리가 낯설게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부처의 시절에 지금과 같은 지붕이나 탑이 있었을 리 없다. 후세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그보다는, 망자의 죽음과 남은 자의 삶이, 색즉시공의 경계를 초월하는 기원을 담는 것이 훨씬 부처의 뜻에 다가가는 게 아니겠는가. 유리와 빛이 그걸 표현해낸다.
백양사의 '영혼의 힐링하우스'는 명부전과 영각당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납골함은 원뿔형의 기원(祈願)적인 형상으로 설계했다. 그 안에는 사리로 만든 유골을 모셨다. 유골을 지상에 놓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띄웠다. 육신의 '부(浮, 떠오름)'는 극락으로 나아가는 상징을 뚜렷하게 표현해낸다. 거기에 쓴 통유리는 납골당으로는 초유의 시도였다. 죽음을 굳이 캄캄한 곳에 가둬둘 게 아니라, 자연이나 하늘과 통하게 하는 '트임'으로 자유롭게 해주려는 건축공간적 배려이다.
정각사 미래탑은 사각의 유리탑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 455개의 부처를 매달아 공중 부양(浮揚)하는 듯한 형태로 구성했다. 탑 밑바닥에는 2028개의 광섬유 조명이 심어져 화엄세계를 구현했다. 이 탑 앞에는 고려 석탑이 서 있는데, 이 고탑과 빛의 신탑이 어우러져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대비하기도 하고 서로 얼비추기도 하면서 신비를 자아낸다.
경기도 군포의 '사랑빚는 교회'는 '덜 종교적인, 더 예수닮은' 건축철학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다.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권위를 뺀 부드러운 얼굴의, '교회같지 않은 교회'. 아파트 7층 높이인데도 마치 살짝 몸을 낮춘 작은 집처럼 여겨지는 묘한 착시감이 교회의 대중친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중간이 비어있는 블록 벽돌 속을 칠한 것은 교회의 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칠해 알록달록한 무늬벽을 만들었다. 유리벽과 디자인벽은 조명을 받아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축복으로 빛난다. 6m 높이의 종이기둥은 평화롭고 따뜻한 빛을 감돌게 하고, 수직적 상승감은 하늘을 향한 곧은 신심(信心)을 돋운다. 교회가 달라지자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숨어있던 벽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 있는 북카페는 주민들의 커뮤니티 시설로 활짝 열렸다.
통(通)과 덕(悳)
건축철학을, 간명하게 한 글자씩의 말로 정리하는 그는, 특출한 카피라이터다.
먼저, '통(通)'.
인천 검단공단의 어느 사옥을 건축할 때였다. 의뢰한 이는 건물 꼭대기층에 사내행사를 할 만한 큰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 건물은 서해바다에 인접해 있었는데, 수시로 불어오는 해풍을 막아내는 일이 고민이었다. 그때 윤경식은, 건물 지하층의 벽들을 모두 걷어내 뻥 뚫는 파격적인 건축을 디자인했다. 그 뚫린 지하공간으로 바닷바람이 지나가게 한 것이다. 사납게 몰아치던 북서풍은 마치 제 길을 만난 것처럼 그 안으로 몰려들어 순한 용처럼 빠져나갔다. 그는 이것을 통즉불통(通則不痛)이라고 표현했다. 기혈(氣血)의 흐름이 통하면 아픔은 사라진다는 동의보감의 핵심메시지다.
그의 발상법을 이루는 덕(悳).
悳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보면 직관적으로(直) 생겨나는 마음(心), 직심이다. 인간 속에 신(神)이 있다면, 그 신은 도(道)에 닿아있고 덕(悳)에 스며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신의 오묘한 경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늘 그 신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신을 만나는 길은, 교묘하고 복잡하고 어렵고 대단한 훈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툭 닿듯 불쑥 스치듯 얼핏 지나듯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속에 있는 그 툭, 불쑥, 얼핏의 신(神)이 바로 덕(悳)이다. 그는 귀띔해준다. "정각사 미래탑과 백양사 '영혼의 힐링하우스'는 모두 직심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일부 건물들 가운데는 외관을 기이하게 하고 멋지게 휘고 접고 삐딱하게 올리고 파격적으로 비틀어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외국 건축가들이 설계한 것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멋진 건축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예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이라면 이런 시도도 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사옥이나 공공건물이 이런 형태를 지니는 것은 참 딱한 일입니다. 한국에 이런 건물을 짓는 유럽의 건축가들도 본국에서는 거의 이렇게 짓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심히 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건물들이 눈을 붙잡는 곳은 대개 후진국이나 문화적 후발국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외관이 복잡한 형태를 지니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재건축할 때도 문제가 많습니다. 공사기간도 길어지고 자재도 당연히 많이 듭니다. 베를린 시립미술관이나 100대 건물에 들어가는 미국의 코네티컷 주택 같은 경우, 외관은 아주 단순하죠.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건물들은 뜻밖에 직육면체의 단조로운 건물이 많습니다. 반면 후진국의 건물은 에너지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돈자랑을 하는 듯한 분위기로 요란하게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한 것, 소박하지만 필요한 것들을 잘 갖춘 것, 사용자들에게 오롯이 집이 해야할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의 진짜 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Simple is the best. 혹은 Less is more."
클럽하우스 지붕이 된 죽부인
창조의 기행담(奇行談)은 계속됐다. 2010년 프랑스 파리공항과 이탈리아 밀라노공항. 괴물체를 안고 통관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세관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쥐고 있는 길쭉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뱀부(bamboo)"라고 외쳤다. 여전히 그것을 만져보며 의심스러워하는 담당자를 향해 "My Wife!"라고 말하자 웃으면서 보내줬다. 그는 여주의 CJ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 클럽하우스 건축설계로 이탈리아 '국제 지속가능건축상' 금상을 받아 시상식에 참석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가 아내처럼 껴안고 있는 존재는 대나무 공예품인 '죽부인'이었다.
CJ해슬리 나인브릿지는, 독일 가문비나무를 깎아 고도의 기술로 죽부인의 대나무망처럼 육각형 격자의 목구조물을 만들어냈다. 이 구조물은 스위스의 전문가가 계산해냈다고 한다. 21조각의 나무를 못을 사용하지 않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짜맞춘 예술품이다. 시게루 반과 공동설계를 한 이 작품은 하나의 '전설'이 됐다. 고도의 조형성과 채광의 창을 갖춘 실용적 미학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유럽 건축대상, 미국 세계건축상도 휩쓸었다. 영국 BBC는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천장 10'에 이 건물을 골랐다. 뉴욕타임스는 2012년 '올해 꼭 가봐야할 명소'로 꼽았다.
한 사람이 '장르'가 되는 날
하루를 머문 청담헌(淸談軒)엔 때마침 살짝 실비가 뿌려, 우강(雨江)의 아름다움을 더욱 새초롬하게 바림질했다. 널찍한 공간을 거닐면서, 한 사람이 하나의 영역에서 '장르'가 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 34년간, 세계의 눈에서는 여전히 불모나 다름없는 한국 건축계의 빈한(貧寒)을 뚫고 국제 건축관련 상을 19차례 수상한 그는 정말 '수상한 사람'이다.
늘 남을 모델삼고 남을 흉내내고 죽기살기의 경쟁심으로 2등까지 따라붙는 데는 선수가 된 이 나라가, 이젠 우리가 하나의 장르를 창출하고 선도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이 창조적 건축가에게서 엿보는 것이다. 앞으로의 10년, 우리는 윤경식이 백지에서 창조해내는 처음 보는 건축들을 꾸준히 보게 되지 않을까. 호접몽가 지붕의 날개 한짝은, 은유적이다. 저 아름다운 나비는 누군가가 다른 날개 한짝이 되어 함께 저어주어야 온전히 비상할 수 있다. 날개 한짝이 선도하는 창조력이라면, 다른 날개 한짝은 그것에 공명하고 함께 몸짓을 보탤 수 있는 이 땅의 창조적 인프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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