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취팡 투기를 막아라."
지난달 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쉐취팡(學區房)을 언급했다.
쉐취팡, 명문학교 인근에 위치한 주택, 이른바 '학세권 주택'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초·중·고 입학시 학생들을 주거지 인근의 학교로 배정하는 학군제를 채택하고 있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중국 학부모의 과도한 교육열과 이를 악용한 투기꾼들이 활개를 치며 쉐취팡 가격은 그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중국 지도부가 직접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쉐취팡을 지목한 것이다. 중국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의 최후의 전선이 쉐취팡이란 말까지 나온다.
◆ "단칸방도 1년새 50%씩 뛴다" 쉐취팡 현주소
칭화대, 베이징대 같은 명문대가 몰려 있는 베이징시 하이뎬구. 이곳엔 명문대 부속 초·중·고가 몰려 있어 시청구, 둥청구와 함께 베이징 3대 명품학군 지역으로 꼽힌다. 중국 재경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5개월 사이 이곳의 완류·중관춘 학세권 집값은 약 20% 뛰었다. 상하이시도 마찬가지다. 상하이 민항구 춘선 학세권의 방 2개짜리 낡은 주택 가격이 지난해 500만 위안(약 8억7000만원)에서 올초 800만 위안까지 60% 가까이 뛰었다. 푸둥지역 주자탄 학세권의 30㎡짜리 주택도 지난해 10월 390만 위안에서 올초 500만 위안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올초 선전시 푸톈구 바이화 학세권에서는 달랑 44㎡ 소형주택 한채가 무려 1420만 위안의 고가에 팔렸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린 쉐취팡
2016년부터 '집은 거주용이지 투기대상이 아니다'라고 제창한 중국 정부는 수년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며 각종 부동산 시장 규제책을 쏟아냈다.하지만 집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경기부양책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대거 흘러들어가 집값을 끌어올렸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3월 70개 주요도시 중 약 90% 집값이 전달보다 올랐다.
쉐취팡이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다웨이 중위안부동산 수석애널리스트는 "올 들어 전국적으로 집값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1, 2선 도시 쉐취팡이 전체 집값 상승에 불을 붙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래 쉐취팡은 명문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주로 매입했지만, 최근엔 매입자 대부분이 투기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리위자 광둥성 주택정책연구중심 수석연구원은 "최근 들어 쉐취팡 가격을 투기 수요가 끌어올리고 있다"며 "자녀교육 수요 위주였던 과거와 다른 점"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직접 쉐취팡을 집값 상승 주범으로 거론한 만큼, 조만간 학군과 주택을 완전히 분리하는 정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 집값 잡으러 학군제 '손질'
올 들어 각 지방정부는 이미 학세권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학군제에 손을 대는 등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상하이시가 앞장 섰다. 지난 3월 16일 상하이 시내 명문고등학교 입학정원의 50~65%를 시내 각 중학교에 골고루 할당하기로 하는 입시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주변 학군에 거주하는 학생 위주로 입학정원을 배정한 것과 달라진 점이다. 명문고 학세권 집값 상승세를 막겠다는 의도다.
지난달 안후이성 허페이는 시내에 이미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주민들은 쉐취팡을 구매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베이징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에만 쉐취팡 투기를 조장한 18개 중개업소를 적발해 벌금을 물렸다.
그동안 느슨하게 시행됐던 다교학군(多校劃片)제도 엄격히 시행하기로 했다. 다교학군제는 구역 내 여러 학교를 묶어 하나의 학군을 만들고, 구역내 학생들을 각 학교마다 무작위로 배정하는 방식이다. 과거에 각 학교마다 학군을 개별적으로 배정하는 방식의 1교학군(單校劃片)제와 비교된다.
특히 차오양구는 2017년 6월 30일 이후 매입한 명문초 학세권 주택의 경우 다교학군제를 적용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2~3년간 학세권 주택을 매입한 학부모들의 자녀 명문초 입학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하이뎬구도 지난달 2019년 1월 이후 매입한 주택에 다교학군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또 내년부터 '9년1학위(九年一學位)'제를 시행해 9년 단위로 학세권 주택 1채당 1명(두 자녀 가구 제외)만 의무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 쉐취팡 가격 떨어질까
잇단 조치가 나오면서 일부 지역의 쉐취팡 거래가 얼어붙는 등 단기적으로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명문 초중고 인근 학세권의 낡고 허름한 주택부터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신경보에 따르면, 상하이 메이위안(梅園) 학세권의 50㎡ 면적의 방 2개짜리 집값은 지난해 말 ㎡당 12만 위안에서 올초 14만 위안까지 뛰었다. 하지만 3월 16일 쉐취팡 정책이 발표된 지 한달 만에 가격은 4% 하락했다.
루원시 상하이 중위안부동산 애널리스트는 "규제책이 쉐취팡 시장의 투기 거품을 걷어내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모든 상하이시 학세권 주택 가격이 떨어진 건 아니다. 푸둥 학세권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쉐취팡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기 힘들다"며 "단기간 내 대규모 집값 하락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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