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무궁화 홍보에 진력(동아일보 247회, 조선일보 221회)
국내 모든 온·오프라인 무궁화 관련 텍스트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무궁화 나무를 뽑아버리는 등 각종 탄압을 가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사실 무궁화를 일제강점기에 탄압하긴커녕 조선의 국화(國花)(1)*로 홍보하고 보급에 힘썼다.
『동아일보』에는 1920년 4월 20일~1940년 4월 5일까지 총 247회에 걸친 무궁화 홍보가 게재되어 있다.
“동방 아세아 무궁화 동산속에 2천만 조선민중은 일대광명이”
- 『동아일보』 창간호 1920년 4월 20일 1면
“우리 조선의 대표적인 꽃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무궁화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을 무궁화 꽃동산이라고하야 근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동아일보의 표제에서도 무궁화를 그렸습니다.”
- 『동아일보』 1935년 4월 21일 5면
또 『조선일보』에는 1920년 5월 20일~1940년 4월 10일까지 총 221회 걸쳐 무궁화 홍보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해방 이후 무궁화 국화 부적격론 무성
해방 이후 무궁화의 국화 자격 시비는 1956년 2월 시작했다. 화훼연구가 조동화(趙東華) 선생이 한국일보(1956년 2월3일자)에 무궁화 부적격론을 제시했다.
① 무궁화는 38선 이남에 주로 재배하는 꽃으로 황해도 이북에서는 심을 수 없는 지역적 한정성이 있으며,
② 원산지가 인도임으로 외래식물이며,
③ 진딧물이 많이 붙고 단명허세(短命虛勢)하며,
④ 모든 꽃들이 움트는 봄에도 피지 않고 품격도 빈궁하며 가을꽃 중에서도 제일 먼저 시드는 실속없는 식물이다.
그러자 닷새 후 저명한 식물학자 이민재(李敏載)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가 조동화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조선일보 1956년 2월8일자) 이민재 교수는 무궁화는 국화로서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일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이 없는 꽃이라고 못을 박았다. 진달래를 새 국화로 추천하면서 국화가 될 만한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① 우리나라 원산종으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을 것
② 국토 전역에 분포하고 있을 것
③ 민족과 더불어 역사적 애환을 함께했을 것
④ 되도록 다른 식물보다 이른 계절에 필 것
⑤ 꽃 모양과 이름이 아름다울 것
1960년 8월 16일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무궁화 부적격론을 제기했다.
원산지가 아열대 지방이라는 무궁화는 우선 국산이라야 될 첫 조건에서 실격이다. 꽃이 질 때 추할뿐더러 그 빛깔도 흐리멍덩하고 그나마도 황해도 이북 지방에서는 자연생을 구경할 수 없다고 하니 이래저래 국화로서는 낙제다. 다만 한가지 취할 수 있는 것은 무궁이라는 그 이름인데 이것도 어느 식물학자말을 들으면 꽃이 흉해서 궁내에는 심지 않는 꽃이 되어 무궁화(無宮花)로 된 모양이다. 근화(槿花) 목근(木槿)으로도 불리우는 이 꽃은 계속해서 자꾸 피기는 하나 그대로 지고 그대로 지고 하므로 덧없는 꿈을 나타내는 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피어서 평민적이요 봄의 선구자인 아름다운 꽃 진달래가 개나리보다도 우리나라 국화로서 합당하다고 본다. (2)*
◆여론조사 결과···"국화를 바꾸자" 응답률 54%
무궁화가 우리의 국화(國花)로 좋게 생각합니까?
좋지 않다면 달리 어떤 꽃으로 선택했으면 좋겠습니까?
『경향신문』 1964년 2월 12일 5면에 무궁화 국화 자격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77년 헌정사상 유일무이하다. 무궁화를 국화로 유지하자는 응답률은 42%인데 반면, 국화를 새것으로 바꾸자는 응답률은 54%나 되었다. 고유의 아름다움을 어디서나 누구나 좋아하는 꽃으로 국화를 바꾸기를 원했다. 무궁화를 국화로 삼게 된 유래는 쉽게 알 수 없다.
식물학자 박만규 교수(가톨릭 의대)는 역사적으로도 아무런 기록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저 옛날에 누가(높은 직책에 있던) 그의 취미에 따라 무궁화가 좋다고 한 것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렇게 생각되어 오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무궁화는 국화의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무궁화의 흠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 벌레가 잘 끼고 지저분하다.
둘째, 우리나라 고유의 꽃이 아니다.
이병도 국사편찬위원장, 유준열 교수 등 사학자와 김원룡 교수(서울 문리대, 고고학), 최호진 교수(연세 상경대), 송병옥, 이진구, 김기두, 김태길 교수, 장학룡 조인현 문학가 등도 모두 국화를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무궁화의 지저분한 모양, 볼품없는 생김새 등을 못마땅해했다.
문학평론가 백철은 좀 더 아름답고 또 고유한 꽃을 새로 지정하자고 말한다. 또 화가 천경자는 무궁화의 단점을 “그 불투명한 빛깔, 지저분하고 오래 피는 모습이 좋지 못하는 면을 말해주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국화를 바꾸자는 파의 48%는 진달래를 새 국화로 선택하고 있다. 소설가 김리석은 “진달래는 어디서나 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소박한 데가 있다.”라고 그 꽃을 찬양했다.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는 ‘우리나라에 제일 많고 화려하기 때문에’ 진달래가 제일 좋다고 했다. 소설가 강신재는 “싱싱하고 정결하고 향기로운 꽃, 우리나라 어디서나 많은 꽃, 여러사람이 사랑하는 꽃, 이런 조건들 중에서 어느 하나쯤에는 해당하는 것이어야 한다.”라며 국화의 조건을 들었다.
그 밖의 꽃으로는 배꽃, 들국화, 도라지꽃, 동백꽃, 연꽃, 철쭉, 국화, 목화 등의 순으로 들고 있다. 음악평론가 최영환은 유달리 인삼꽃을 국화로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무궁화를 그대로 두자고 하는 42%도 구태여 새 국화를 지정한다면 진달래가 좋겠다고들 말했다. 무궁화가 그대로 두자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궁화의 품종개량을 당부했다. 작곡가 나운영은 무궁화의 도안이 사쿠라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3)*
◆무궁화가 한국꽃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는 5대 스모킹건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방법 다섯 가지만 들면 이렇다.
첫째, 진달래꽃 개나리꽃 등 우리나라 자생하는 모든 꽃 이름은 순수 우리말이 있다. 그런데 유독 무궁화 이름만 우리말이 없다.
둘째, 구한말 이전 우리나라의 동식물 중 사물이 한자로 표기된 거라면 반드시 중국의 고문헌에 그 한자가 있다. 그런데 ‘無窮花’ 글자 자체를 20세기 이전 중국의 고문헌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셋째, 진달래꽃, 개나리꽃, 목련꽃, 매화, 배꽃, 복숭아꽃, 살구꽃, 자두꽃, 앵두꽃, 밤꽃, 찔레꽃, 아카시아꽃 등 나무에서 피는 모든 꽃 이름은 그 나무의 꽃 이름이다. 그런데 ‘무궁화’는 ‘무궁’이라는 나무에서 피는 꽃 이름인가?
넷째, 구글에 ‘hibiscus origin’을, 영문 위키피디어에 'floral emblem'을 입력하고 검색해보라. 구글에서 한국의 무궁화는 원산지 명단은커녕 재배지 명단에서도 없다. 영문 위키미디어에서 한국 국화로서의 무궁화는 세계 비공식 나라꽃 명단에도 없다.
다섯째, ‘무쿠게(むくげ, ムクゲ)’를 구글 번역기에 넣고 영·불·중·러·스페인어·아랍어 등 6대 유엔 공용어 포함 베트남어 터키어 힌디어 심지어 에스페란토어까지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해보니 ‘팽창’ 또는 ‘부종’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한국어만 뜬금없이 ‘무궁화’로 번역된다.
◆◇◆◇◆◇◆◇주석
(1)* 단 여기에서 國은 일본 봉건시대 지방정부 현급 단위로서의 번국을 의미함.
(2)*윤석중, 「이런 것도 새롭게」, 『경향신문』 1960년 8월 18일자 4면
(3)*「어떻게 고쳐져야 하나 국화(國花)」, 『경향신문』 1964년 2월 12일 5면.
국내 모든 온·오프라인 무궁화 관련 텍스트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무궁화 나무를 뽑아버리는 등 각종 탄압을 가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사실 무궁화를 일제강점기에 탄압하긴커녕 조선의 국화(國花)(1)*로 홍보하고 보급에 힘썼다.
『동아일보』에는 1920년 4월 20일~1940년 4월 5일까지 총 247회에 걸친 무궁화 홍보가 게재되어 있다.
- 『동아일보』 창간호 1920년 4월 20일 1면
“우리 조선의 대표적인 꽃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무궁화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을 무궁화 꽃동산이라고하야 근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동아일보의 표제에서도 무궁화를 그렸습니다.”
- 『동아일보』 1935년 4월 21일 5면
또 『조선일보』에는 1920년 5월 20일~1940년 4월 10일까지 총 221회 걸쳐 무궁화 홍보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해방 이후 무궁화 국화 부적격론 무성
해방 이후 무궁화의 국화 자격 시비는 1956년 2월 시작했다. 화훼연구가 조동화(趙東華) 선생이 한국일보(1956년 2월3일자)에 무궁화 부적격론을 제시했다.
① 무궁화는 38선 이남에 주로 재배하는 꽃으로 황해도 이북에서는 심을 수 없는 지역적 한정성이 있으며,
② 원산지가 인도임으로 외래식물이며,
③ 진딧물이 많이 붙고 단명허세(短命虛勢)하며,
④ 모든 꽃들이 움트는 봄에도 피지 않고 품격도 빈궁하며 가을꽃 중에서도 제일 먼저 시드는 실속없는 식물이다.
그러자 닷새 후 저명한 식물학자 이민재(李敏載)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가 조동화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조선일보 1956년 2월8일자) 이민재 교수는 무궁화는 국화로서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일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이 없는 꽃이라고 못을 박았다. 진달래를 새 국화로 추천하면서 국화가 될 만한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① 우리나라 원산종으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을 것
② 국토 전역에 분포하고 있을 것
③ 민족과 더불어 역사적 애환을 함께했을 것
④ 되도록 다른 식물보다 이른 계절에 필 것
⑤ 꽃 모양과 이름이 아름다울 것
1960년 8월 16일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무궁화 부적격론을 제기했다.
원산지가 아열대 지방이라는 무궁화는 우선 국산이라야 될 첫 조건에서 실격이다. 꽃이 질 때 추할뿐더러 그 빛깔도 흐리멍덩하고 그나마도 황해도 이북 지방에서는 자연생을 구경할 수 없다고 하니 이래저래 국화로서는 낙제다. 다만 한가지 취할 수 있는 것은 무궁이라는 그 이름인데 이것도 어느 식물학자말을 들으면 꽃이 흉해서 궁내에는 심지 않는 꽃이 되어 무궁화(無宮花)로 된 모양이다. 근화(槿花) 목근(木槿)으로도 불리우는 이 꽃은 계속해서 자꾸 피기는 하나 그대로 지고 그대로 지고 하므로 덧없는 꿈을 나타내는 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피어서 평민적이요 봄의 선구자인 아름다운 꽃 진달래가 개나리보다도 우리나라 국화로서 합당하다고 본다. (2)*
◆여론조사 결과···"국화를 바꾸자" 응답률 54%
무궁화가 우리의 국화(國花)로 좋게 생각합니까?
좋지 않다면 달리 어떤 꽃으로 선택했으면 좋겠습니까?
『경향신문』 1964년 2월 12일 5면에 무궁화 국화 자격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77년 헌정사상 유일무이하다. 무궁화를 국화로 유지하자는 응답률은 42%인데 반면, 국화를 새것으로 바꾸자는 응답률은 54%나 되었다. 고유의 아름다움을 어디서나 누구나 좋아하는 꽃으로 국화를 바꾸기를 원했다. 무궁화를 국화로 삼게 된 유래는 쉽게 알 수 없다.
식물학자 박만규 교수(가톨릭 의대)는 역사적으로도 아무런 기록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저 옛날에 누가(높은 직책에 있던) 그의 취미에 따라 무궁화가 좋다고 한 것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렇게 생각되어 오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무궁화는 국화의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박 교수는 무궁화의 흠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 벌레가 잘 끼고 지저분하다.
둘째, 우리나라 고유의 꽃이 아니다.
이병도 국사편찬위원장, 유준열 교수 등 사학자와 김원룡 교수(서울 문리대, 고고학), 최호진 교수(연세 상경대), 송병옥, 이진구, 김기두, 김태길 교수, 장학룡 조인현 문학가 등도 모두 국화를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무궁화의 지저분한 모양, 볼품없는 생김새 등을 못마땅해했다.
문학평론가 백철은 좀 더 아름답고 또 고유한 꽃을 새로 지정하자고 말한다. 또 화가 천경자는 무궁화의 단점을 “그 불투명한 빛깔, 지저분하고 오래 피는 모습이 좋지 못하는 면을 말해주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국화를 바꾸자는 파의 48%는 진달래를 새 국화로 선택하고 있다. 소설가 김리석은 “진달래는 어디서나 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소박한 데가 있다.”라고 그 꽃을 찬양했다.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는 ‘우리나라에 제일 많고 화려하기 때문에’ 진달래가 제일 좋다고 했다. 소설가 강신재는 “싱싱하고 정결하고 향기로운 꽃, 우리나라 어디서나 많은 꽃, 여러사람이 사랑하는 꽃, 이런 조건들 중에서 어느 하나쯤에는 해당하는 것이어야 한다.”라며 국화의 조건을 들었다.
그 밖의 꽃으로는 배꽃, 들국화, 도라지꽃, 동백꽃, 연꽃, 철쭉, 국화, 목화 등의 순으로 들고 있다. 음악평론가 최영환은 유달리 인삼꽃을 국화로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무궁화를 그대로 두자고 하는 42%도 구태여 새 국화를 지정한다면 진달래가 좋겠다고들 말했다. 무궁화가 그대로 두자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궁화의 품종개량을 당부했다. 작곡가 나운영은 무궁화의 도안이 사쿠라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3)*
◆무궁화가 한국꽃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는 5대 스모킹건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방법 다섯 가지만 들면 이렇다.
첫째, 진달래꽃 개나리꽃 등 우리나라 자생하는 모든 꽃 이름은 순수 우리말이 있다. 그런데 유독 무궁화 이름만 우리말이 없다.
둘째, 구한말 이전 우리나라의 동식물 중 사물이 한자로 표기된 거라면 반드시 중국의 고문헌에 그 한자가 있다. 그런데 ‘無窮花’ 글자 자체를 20세기 이전 중국의 고문헌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셋째, 진달래꽃, 개나리꽃, 목련꽃, 매화, 배꽃, 복숭아꽃, 살구꽃, 자두꽃, 앵두꽃, 밤꽃, 찔레꽃, 아카시아꽃 등 나무에서 피는 모든 꽃 이름은 그 나무의 꽃 이름이다. 그런데 ‘무궁화’는 ‘무궁’이라는 나무에서 피는 꽃 이름인가?
넷째, 구글에 ‘hibiscus origin’을, 영문 위키피디어에 'floral emblem'을 입력하고 검색해보라. 구글에서 한국의 무궁화는 원산지 명단은커녕 재배지 명단에서도 없다. 영문 위키미디어에서 한국 국화로서의 무궁화는 세계 비공식 나라꽃 명단에도 없다.
다섯째, ‘무쿠게(むくげ, ムクゲ)’를 구글 번역기에 넣고 영·불·중·러·스페인어·아랍어 등 6대 유엔 공용어 포함 베트남어 터키어 힌디어 심지어 에스페란토어까지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해보니 ‘팽창’ 또는 ‘부종’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한국어만 뜬금없이 ‘무궁화’로 번역된다.
◆◇◆◇◆◇◆◇주석
(1)* 단 여기에서 國은 일본 봉건시대 지방정부 현급 단위로서의 번국을 의미함.
(2)*윤석중, 「이런 것도 새롭게」, 『경향신문』 1960년 8월 18일자 4면
(3)*「어떻게 고쳐져야 하나 국화(國花)」, 『경향신문』 1964년 2월 12일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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