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떠오른 메타버스라는 화두에 정부도 기업들도 최근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디지털 뉴딜을 발판으로 XR(가상융합기술) 활용 확산을 지원해 가상융합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디지털 정보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기술로, 기술발전과 디지털 전환을 가속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드러낸다.
메타버스는 어떻게 시장을 혁신한다는 것일까. 정부는 가상융합경제발전전략 보고서를 통해 활용 사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핵심 기술인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도입해 시제품을 설계하고 검증하거나, 수술 전 시뮬레이션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전문가끼리 유지보수를 위한 원격협업이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옷을 주문할 때 AR 가상피팅으로 미리 착용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사실 이 서비스 중에 이미 일반에 상용화된 것들이 많다. 또한 이 서비스들은 메타버스 이전엔 실감미디어, 혼합현실의 사례로도 많이 언급됐다. 메타버스라는 단어조차도 이미 1992년에 미국 작가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우 크래시'에 등장한 것이다. 메타버스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도래한 비대면 시대 산업을 혁신할 미래 기술이라고 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왠지 익숙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국내에 뚜렷한 선도기술이나 기업이 있는 것도, 시장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 2019년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상융합기술 활용률은 기업의 경우 0.3%, 전 국민 4%에 불과하다. 국가과학기술심의위원회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상융합기술 수준 선도국인 미국에 비해 83.8%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 가상융합기술의 주 활용분야는 문화영역이 36.5%로, 제조(17.1%), 교육(17%)의 두 배 수준이다. 현재 메타버스는 산업 혁신보단 콘텐츠용 기술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메타버스는 우리 곁에 계속 머물러왔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오래된 미래'다. 그럴싸한 단어와 시장 비전을 내놓고 막연한 기대감을 키우기보다, 그동안 왜 시장 확산이 더뎠는지부터 정확히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이전에 내놓은 서비스를 한데 모아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용어로 '재고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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