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6일 미국으로 출국한 데 이어 다음달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미국을 방문한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해 속도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와 같이 전략적 인내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외교가에 따르면, 박 원장은 이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종료된 지 5일 만에 정보기관 수장이 미국을 다시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임기를 막 시작한 바이든 정부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임기를 11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속도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7 재·보궐선거의 여권 참패 이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 등 외교무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9월부터는 평화프로세스 동력이 떨어질 수 있는 '대선 레이스'가 시작돼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발판 마련까지 3개월 남짓 남은 셈이다.
박 원장은 출국 직전 '이번 미국 방문에서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새로 발탁된 성 김 주(駐)인도네시아 대사를 만나는가' 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박 원장은 이번 방미 일정을 통해 뉴욕과 워싱턴 DC를 차례로 방문하고, 미국 측과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나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핵 협상과 관련한 설명을 위해 북한 측 인사를 접촉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미국이 두 차례 북한 측에 접촉을 시도한 채널도 '뉴욕 채널'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측은 성급히 움직이지 않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성 김 대북특별대표 깜짝 임명을 공개했지만, 당분간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대사직을 겸직하도록 하면서 협상 장기화를 예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23일 현지 방송 인터뷰를 통해 "공은 북한 코트에 넘어갔다"며 "북한 측에서 명확한 조치가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톱다운 방식 협상에 선을 그었고, 북한 역시 미국이 유인책을 내놓지 않으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치국회의나 외교위원회 형식을 통해 대화 호응에 대한 결단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다만 코로나19 비상방역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대미 공동행동 전략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와의 사전 조율도 필요하므로 결단 시간이 다소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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