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 셀프규제…빈틈 노린 투기꾼 먹잇감 된 국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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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기자
입력 2021-05-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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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제방식 모두 달라 거래소 갈아타면 그만

  • 정부는 가이드라인 제시도 없이 뒷짐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거래소 및 은행을 중심으로 가상화폐 셀프 규제가 잇따랐지만 ‘김치 프리미엄’(김프)을 악용한 외화유출과 같은 불법행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장 전반에 걸친 통일된 가이드라인 없이 거래소 또는 업권별로 다른 규제를 적용하다 보니 투기꾼들은 규제 사각지대를 찾아 불법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의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시장의 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셀프 규제로는 한계…사각지대 찾아 풍선효과도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A은행의 이달(1~25일) 중 해외송금 실적은 1억5822만 달러를 기록했다. 은행 해외송금을 통한 환치기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달 1~16일까지 이뤄진 해외송금액과 지난 3월 실적이 각각 1억8078만 달러, 2억624만 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줄어든 수준이다.

B은행의 경우도 지난 4월 한 달간 7억900만 달러에 달했던 해외송금액이 이달 25일 기준 3억3800만 달러로 절반 이상 쪼그라들었다. 외국인·비거주자의 해외송금을 까다롭게 관리한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의 해외송금 규제로 김프를 악용한 환치기는 잦아드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외 투기꾼들은 은행을 통한 해외송금이 막히자, 체크카드를 통한 현금인출 방법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카드 한 장당 해외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인출 한도는 월간 1만 달러로, 여러 장의 카드를 보유할 경우 거액의 인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렸다.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로 은행권이 규제를 강화하자 카드업계로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국내 카드사가 발급한 체크카드를 통한 해외인출액이 늘자, 카드사들은 뒤늦게 해외 ATM 인출 한도를 조정하고 나섰다. 은행권과 비슷하게 카드 한 장당 월간 인출 한도를 1만 달러로 낮추는 식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는 이상 규제 사각지대를 찾아 투기꾼들이 불법행위를 일삼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간 기업들의 셀프 규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셀프 규제들은 문제가 되는 상황의 원인을 파악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래소, 은행 등 민간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규제안은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최대 200여개로 추산되는 가상화폐 거래소 중 시장 정화를 위해 자체 규제안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곳은 대형 거래소 몇 곳뿐이다. 자체 규제안을 운영 중인 대형 거래소들의 규제 방식도 모두 다르다. 업비트의 경우 원화를 최초로 입금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동안 출금을 제한하는 제도와 원화 1회 입금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운영 중인 반면, 코빗은 첫 원화 입금 후 72시간 동안 출금이 제한된다. 출금 제한이 없는 거래소는 더 많은 만큼, 입맛에 맞춰 거래소를 갈아타면 규제를 적용받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가상화폐 시장 방향성도 안 잡아주는 정부
결국 가상화폐 시장을 둘러싼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 전반에 걸친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하지만, 정부는 관련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가상화폐 이슈가 나올 때마다 부처별로 한마디씩 던질 뿐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 없이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도 가상화폐 관련 법안이 연이어 발의되고 있지만, 불법행위를 근절할 근본적인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계류 중인 법안이 제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시각도 있다.

가상화폐 업계는 가상화폐 시장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정부가 ‘가상자산업권법’만이라도 제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부가 규제법인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을 제정해 가상자산 규제를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상화폐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내려주지 않아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업권에 대한 정의를 내린 다음에 규제안을 내놓는 게 통상적인 방법인데, 가상화폐의 경우 자산의 성격으로서 정의조차 내려주지 않고 규제만 확정지었다”며 “불법행위로부터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권에 준하는 자체 약관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규제 및 내부 정책의 방향성이 맞는지 여부를 논의할 정부기관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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