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근거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 중국의 내정을 함부로 간섭하고 있으며,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일으키고 ‘반중(反中)동맹’을 결성하고 있다. 그 목적은 중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중화민족 부흥의 꿈을 훼손하는 데 있다.”
5월 7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한미저널>(통권 7호)에 실은 기고문 일부다. 지난해 1월 말 부임한 이후 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아주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여온 싱 대사는 바이든 행정부를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로 지칭하면서 “냉전적 사고와 제로섬 게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 정부 고위관료들은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이라면서 중국 정부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보는 대만 문제가 언급되고 경제와 기술 면에서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체제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바이든 정권에 동조하는 듯한 한국의 태도에 대해 중국은 불쾌감을 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6일 여야 정당 대표들을 초청하여 방미 결과를 설명하면서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 이외에 “경제와 기술, 보건과 백신, 기후변화 대응 등 전 분야에 걸쳐 협력의 폭과 깊이가 크게 확대되어 한·미동맹이 그야말로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했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한·미 간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데에는 많은 곡절이 예상되어 우리 정부가 기대한 대로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바이든 정권의 대북정책이 실용적이고 단계적이며 외교와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유연한 방식이라고 해도 북한을 교섭의 장으로 나오게 할 만한 유인책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 잔여 임기 중에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미 대화의 선순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악당(thug)’이라 불렀던 바이든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으나 국무위원장이나 당 총비서 같은 공식 직책은커녕 김정은이란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고,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정상회담 후의 기자회견에서 두 명의 미국 기자 질문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민의 관심은 높지 않으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차지하는 우선순위도 높지 않다.
23일 ABC 방송에 출연한 블링컨 국무장관은 공은 이제 북한 측에 있다고 말했으나 북한은 지금까지 열흘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의 교섭 재개 허들을 높이고 있는 데다 북한이 코로나 방역을 중시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과 불만이 누적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20년 7월 10일 발표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명의 담화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능력 제고를 시사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중대조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북한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 제재 해제는 이제 북·미 대화 재개의 조건이 아니다. 북·미협상 재개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북·미협상의 기본주제라는 게 북한 측 입장이다. 담화가 미국에서 북한 인권을 문제 삼아 북한을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와 ‘테러 지원국가’로 재지정한 것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결코 철회될 수 없다는 인식을 표명한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정권이 인권문제를 중시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공동성명에 사거리와 탄두 중량에 제한이 있었던 한·미 미사일 지침의 종료를 명기, 미국은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미사일 능력 강화는 대북 억지력 강화를 의미하지만 북한은 자국에 대한 위협 증가로, 중국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대한 한국의 동참 의사로 인식할 수 있어 양국이 반발할 우려가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지역적·글로벌 차원에서 중대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동맹이 될지는 지금부터가 관건이다. 한·미동맹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동맹지상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자국의 뜻을 따르지 않는 국가들에 과도한 제재를 일삼는 중국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4개 초청국도 참가한다. 우리는 공동성명의 초안 작성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나 공동성명과는 인식을 같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빠졌던 신장위구르와 홍콩의 인권문제, 타이완과 남중국해 문제 등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문제가 공동성명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정상회담 후 중국 정부의 반발을 의식해 외교부와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했던 궁색한 해명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생존과 국익을 시야에 넣으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책임과 역할을 할 것인지, 우리 외교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줄 외교무대가 되길 기대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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