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은 이러한 금융산업 환경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한 기업 중 하나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단행해 ‘금융플랫폼 기업’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디지털, IT, 데이터 등 기능별로 분리돼 있던 조직을 고객 관점에 기반을 둔 플랫폼 조직으로 전면 개편했으며, IT 기술 인프라와 AI, 클라우드 등 혁신기술을 총괄하는 테크그룹도 신설했다.
국민은행은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다양한 디지털 부문에서 노하우를 가진 외부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019년 데이터전략본부장에 윤진수 전 현대카드 상무를 영입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테크그룹 소속 테크기술본부장에 박기은 전 네이버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했다. 전통 금융권인 은행에 외부 출신 CTO가 영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기은 국민은행 테크그룹 소속 테크기술본부장은 최근 아주경제신문과 만나 “은행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모두 변화와 혁신을 필요로 하고 또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약간의 망설임과 두려움 사이에 있지 않나 싶다”며 “많은 경우가 그렇듯이 신생 기업이 아닌 이상 변화와 혁신은 자생적으로 시작되기보다는 외부 환경의 변화, 특히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에 따른 위기감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금융산업 경계의 벽…“은행도 기술 감수성 키워야”
국민은행의 변화는 금융산업 경계의 벽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업 진입 행보에 박차를 가하면서 금융산업의 경쟁 구도는 ‘개별 금융사 간’에서 ‘생태계 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기술이 향후 금융산업 성패를 좌우할 핵심기술로 부상하면서 은행은 디지털 기술 역량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도 요구받고 있다.테크 그룹 역시 ‘기술 및 비즈니스의 플랫폼화’라는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다.
박기은 전무는 “테크그룹은 3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예전처럼 은행 IT를 운영하는 조직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기술 중심으로 다양한 전개를 해나가는 조직이라는 의미, 둘째는 은행 전체가 비즈와 테크가 함께하는 플랫폼 조직이 되면서 비즈의 카운터파트로서 테크조직의 의미”라며 “마지막은 이제 금융회사들도 더 이상은 금융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테크회사들, 핀테크나 빅테크 회사들과 기술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의 DT는 현재 진행형”
국민은행은 올해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선포한 지 4년차를 맞았다. 앞서 허인 국민은행장은 지난 2018년 ‘KB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선포식’을 열고 오는 2025년까지 2조원의 디지털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4000여명의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현재 국민은행의 DT는 어디까지 왔을까.박기은 본부장은 “국민은행의 DT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제는 DT가 테크 중심의 혁신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까지 도달했다”고 답했다.
박 본부장이 생각하는 ‘은행의 DT’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비즈니스 자체를 디지털, 온라인 서비스화하는 것으로 은행의 모바일 앱, 보험사의 AI 보상산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기업 업무 프로세스의 디지털화다. 내부 의사결정이나 신규 상품 개발과 상품 추천 시스템을 위한 데이터 분석, 사내 업무 협업 시스템 도입, 애자일(Agile)한 개발환경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은 IT시스템을 최신 기술과 방식으로 변화시켜 비즈니스의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것으로, 통신사의 클라우드 기반 5G 코어 네트워크(Core Network), 핀테크 업체들의 IT시스템 등이다.
박 본부장은 “국민은행뿐 아니라 많은 은행들이 이미 비즈니스 영역은 디지털화, 비대면 온라인화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다. 아직 빅테크 회사보다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내부 프로세스들도 디지털화해 가는 중”이라며 “하지만 세 번째 영역인 IT시스템은 사실 국내 금융사들이 좀 오래된, 유산(Legacy)이라고 할 만한 시스템 구조를 유지하고 그 앞에 비대면, 온라인, 모바일 채널들을 연결하면서 복잡성은 올라가고 민첩함은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테크 중심의 DT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박기은 본부장은 “테크 혁신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나 접목이 아니라 사용된 기술의 지속 가능성과 자체 기술 역량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테크도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남이 차려준 밥상이 아닌 스스로 재료를 선택하고 직접 조리도 해야만 경쟁력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박 본부장은 “그간 많은 IT 기술 도입이 진행됐고 이를 바탕으로 은행의 디지털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있지만 어쩌면 누군가 제시한 모습과 방식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한다”며 “핀테크가 빅테크 기업들의 비즈니스 경쟁력이 상당 부분 기술 경쟁력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이는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방식으로 내부에서 테크가 실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과 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는 외부에서 기술 솔루션을 찾아 도입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속도를 테크가 못 따라가는, 결국 상대방보다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은행도 변화에 대한 외부 요구에 응답하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본질적으로 가보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이 혁신이기 때문에 테크 혁신이 생소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며 “다만 최소한 방향이 테크 혁신이라는 점은 공감하는 분위기로, 테크기술본부장으로서 역할은 어쩌면 국민은행도 테크 혁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혁신은 플랫폼화에서 시작…올해 ‘KB 원 클라우드 구축’
테크그룹은 올해 금융 혁신을 위해 ‘뱅킹 시스템의 플랫폼화’에 힘쓸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올해 안으로 ‘KB 원(One) 클라우드’라는 독자적 클라우드를 구축할 계획도 세웠다.클라우드는 인터넷과 연결된 중앙컴퓨터에 데이터를 저장해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KB국민은행이 준비 중인 KB 원 클라우드는 ‘하이브리드·멀티 클라우드’다. 그룹 내에서만 사용하는 프라이빗 클라우드에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퍼블릭 클라우드를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박 본부장은 “독자적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으로 전통 금융그룹에서 테크핀 기업으로의 전환을 지향하고 있다”며 “자체 구축한 KB 원 클라우드가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임직원들이 기술을 민감하게 보고 기술에 호기심을 가지는 등 ‘기술 감수성’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은 본부장은 은행의 게임 체인저로는 ‘AI·클라우드’와 ‘플랫폼 기술’을 꼽았다.
그는 “그간 은행에서 테크는 최소한의 기능 즉, 금융 비즈니스가 수행되기 위한 IT시스템을 운영 관리하는 것이었다고 하면 이제 은행의 테크는 빅테크 회사들의 테크 영역과 다르지 않은 일을 하게 됐다”며 “은행이 먼저 자신의 시스템을 플랫폼화해 플랫폼 사업자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시장의 생리에 따라 은행 플랫폼을 둘러싼 생태계가 생길 것이고 이 생태계 내에서 은행은 또 다른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기은 테그기술본부장 프로필
△1970년 출생△중앙대학교 전자계산학과 학사
△중앙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석사
△2000.6~2011.12 네이버 서비스플랫폼개발센터 팀장
△2012.01~2014.07 네이버비즈니스 플랫폼 IT서비스사업본부 수석아키텍트
△2014.08~2021.03 네이버클라우드 최고책임자(CTO)
△2021.04 KB국민은행 테크그룹 소속 테크기술본부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