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北 불러낼 방법, 종전선언 카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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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입력 2021-06-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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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열흘, 별다른 공식적 대응이 없던 북한이 국제문제평론가의 논평을 빌려 반응했다. 한·미 양국이 미사일 지침을 종료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고의적인 적대행위”라고 반발했다. 당국자가 아닌 일개 전문가의 논평이라는 점에서 수위를 조절한 것이긴 하나, 미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문 대통령에 대해 “역겹다”라는 말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면전환을 원하는 우리 정부를 무색하게 만드는 측면도 강하다. 북한의 이 같은 처사는 미국이 새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며 만나자는 제안을 했을 때 “잘 접수했다”는 반응(5월 10일)을 보였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톤이다. 한·미 정상회담에 걸었던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비록 개인적 차원의 의견 표출이기는 해도 내심 북한의 태도 변화를 바랐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북·미 대화가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 기초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나름대로 공을 들인 정부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이 북한의 정식 국호를 사용하고,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도 북한을 대화로 유인하기 위한 환경조성의 일환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국면 전환은 아직 여건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 우리 정부의 생각대로 북한을 대화와 협상으로 유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미국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양국이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reconfirm)했지만 이것이 북·미 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은 성급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패착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합의를 존중하고 재확인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남북한 또는 북·미 간 합의가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 그런 인정과 실제 미국의 북·미 대화 개최와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생각하는 대로 미국을 추동하려고 했으면 보다 더 확실한 표현을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나서려면 스스로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확실한 명분이나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공동성명은 이를 담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연합방위태세 강화, 확장억지력 보장, 합동군사훈련과 합동군사준비태세 유지의 중요성 등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했다. 인권법칙이 지배하는 지역 및 세계질서의 핵심축이 한·미동맹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나, ‘규범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저해, 불안정하게 하거나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양 정상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동성명에 제시하고 있는 ‘세계질서’는 미국이 정하는 질서의 다른 표현이다. 한·미동맹이라는 것 또한 한반도의 안보동맹을 넘어 오로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일 뿐이다.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단계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결단과 연결된다. 그러려면 무엇인가 진정성 있는 여건이 제시되어야 한다. 다음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먼저,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중단선언이다. 북한이 가장 강력하게 원하는 것이지만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축소·연기되었던 훈련을 장병들의 백신 접종을 완료해서라도 실시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선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이 비록 김여정 제1부부장을 통해 "미국이 지금에 와서 하노이회담에 올랐던 일부 제재 해제와 우리 핵 개발의 중추신경인 영변 지구와 같은 대규모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다시 흥정해 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품지 않기 바란다"고 했지만 미국이 실행에 옮긴다면 움직일 공산이 크다.

셋째, 위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실행하기 어렵다면 종전선언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전상태를 마감하는 작업이다. 우리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북·미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도 열 수 있다. 남북 사이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북 지원을 위해 북으로 가려고 해도 정전협정이 가로막고 있다. 유엔사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휴전선을 넘어 북에 가려면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종전협정을 원하고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북은 북·미관계 정상화로 가는 과정에서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정전협정에는 협정체결 후 3개월 내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조치를 도모하기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여태껏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종전선언을 해야 할 주체는 미국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종전선언을 범국민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물며 남북은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키로 했다. 이를 한사코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북핵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종전선언과 맞물려야만 한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전략적 연결고리다. 남·북·미 모두가 상생하는 카드다. 한국 정부는 이제 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우리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 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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