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13일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사실상 D10(민주주의 10개국) 정상회의와 마찬가지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식 국가주도 시장경제에 대한 견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기 위한 공동대응 방안을 핵심 의제로 올릴 계획이다. '경제(D10)'와 '군사(쿼드)'의 투트랙 전략으로 대중 견제 정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지난달 21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G7 정상회의도 우리 정부에는 '외교적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번 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여한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기존 주요 G7에 3개국(한국·호주·인도)을 추가한 주요 10개국 자격이다.
◆G7 中 '일대일로' 집중 견제··· D10도 압박 가능성
D10은 당장은 한국 정부에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회라는 시각이 많다. D10의 주요 의제로 논의되는 5G(5세대) 장비 공급 협력 문제의 경우, 중국이 빠진 자리에 한국의 기술력이 투입되면 5G 장비 및 첨단 IT(정보·통신) 제조업 생산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할 수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해 5월 5G 통신망 분야에서의 대(對)중국 협력을 명분으로 G7에 한국과 인도, 호주가 참여하는 D10 구상을 제시했다. 영국이 제안한 아이디어지만, 최근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인도태평양조정관은 D10을 대중 압박을 위한 동맹 구축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하겠다는 신호를 드러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번 G7회의에서 한국, 인도, 호주를 D10화하려는 노력이 있을 것"이라며 "관련국가들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협력 의제를 몰아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D10 회의체 출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D10 참여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D10이 하나의 협의체나 공식화된 협의체로 갈 것 같지는 않다. 쿼드처럼 비공식 협의체로 가면서 구체 내용은 한·미 정상회담처럼 양자나 소다자주의로 불리는 협의체에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교한 바이든··· 韓, 국익 따라가야"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구축 중인 반중 연합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외교적 부담이 예상되지만, 장기적 전략으로서 D10 체제 참여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D10 참여를 통해 동아시아의 제조업 선진국으로서 자유무역과 다자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코로나19로 국제사회의 반중 정서가 강해지면서 유럽연합의 입장이 변하고 ‘중국 견제시대’ 구도가 되면서 한국의 외교적 딜레마가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한국은 최근 벌어지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외교통' 바이든 대통령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우는 모습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첫 대면 회담을 하고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지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에 입장을 같이했다.
양국은 "우리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미는 또한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알려진 미국 주도의 '쿼드(Quad)'와 관련해서도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전했다.
이에 양국이 공동성명에 중국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특히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한국 정부가 끝내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 교수는 "미국이 굉장히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어 한국으로서는 미국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며 "대외적으로 중국을 얘기하지 않고 당장 한국에 필요한 것을 얘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라며 "한국이 여전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이 끌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한국이 끌려가듯 편입되는 것은 결국 한국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 교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재편에) 이해가 많이 걸려 있다"며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 또한 국익을 생각해서 외교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한국이 미국에 밀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취한다고 해도 한국이 대북정책 등에 있어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부분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한·미 간 군사협력이라는 '레드라인(금지선)'만 지키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크게 반발한 사례가 있듯, 한·미가 중거리미사일 배치 등 군사협력만 하지 않으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중국이 '사드 갈등' 때처럼 노골적으로 한국을 때릴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미·중 간 반도체·배터리 분야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중요한 카드라는 점에서다.
박 교수는 "중국이 사드 때처럼 한국에 대한 보복을 본격화한다면 한국은 훨씬 더 미국으로 기울 것"이라며 "한국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에서 구체적인 액션(행동)을 취하지만 않는다면 중국이 한국에 대한 보복에 나서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최근 중국 정부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G7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브릭스 정상회의를 통해 국경 분쟁을 벌였던 인도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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