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차(茶) 사랑은 유명하다. 차 거름망이 든 유리병이나 보온병에 찻잎을 잔뜩 넣고 수시로 뜨거운 물을 부어 가며 마신다.
차를 우리기 위한 온수기가 관공서와 학교, 공항, 유원지는 물론 달리는 기차 내에도 설치돼 있을 정도다.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 등 중국인들이 대이동을 할 때면 곳곳의 온수기 앞에 장사진이 펼쳐지곤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번거로움을 꺼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들이 유리병이나 보온병 대신 들고 있는 건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잔이다.
잔에 담긴 건 녹차나 홍차에 우유를 섞은 밀크티를 포함해 과일, 치즈, 견과류 등을 넣은 신차인(新茶飮)인데, 새로운 차나 음료라는 뜻이다.
찻물에 자몽을 섞으면 주황색, 오렌지를 넣으면 노란색이 되는 식이다 보니 색깔이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커피는 그다지 즐기지 않고, 기존 차의 씁쓸함도 마뜩잖은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지다.
때문에 수년 새 신차인 브랜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베이징의 왕푸징이나 싼리툰 같은 번화가의 경우 한 집 건너 한 집 꼴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익이 하락하는 법. 지속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 중 하나인 증시 상장 여부에 이목이 쏠렸던 이유다.
밀크티 혹은 신차인 브랜드 중 프리미엄급을 지향하는 나이쉐더차(奈雪的茶·이하 나이쉐)가 최초로 홍콩 증시에 입성했다.
중국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상징하는 신차인 업계 대표 주자 나이쉐의 성공 스토리를 들여다보자.
◆25세 여성의 도전, 밀크티 시장을 흔들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매체인 남방도시보 산하 남도리서치센터가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을 묻는 질문에 밀크티 전문점을 꼽은 응답자가 40.9%였다.
10~20대인 링링허우(零零後·1990년대 출생자) 세대에서는 65.5%로 치솟았다. 밀크티 등 신차인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2012년 광둥성 선전의 유명 정보기술(IT) 기업 진뎨(金蝶)에 근무하던 25세 여성 펑신(彭心)은 업무에 염증을 느끼며 창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갓 우린 차와 직접 구운 빵을 함께 판매하는 작은 찻집을 여는 게 목표였던 그는 그해 12월 사표를 내고 꿈을 현실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듬해 3월 펑신은 지인의 소개로 요식업 경력 13년차 베테랑 자오린(趙林)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2시간을 훌쩍 넘긴 프레젠테이션 뒤 그는 "제 창업 계획이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자오린의 대답. "아주 좋네요. 근데 당신이 보기에 전 어떤가요." 2개월 뒤인 5월 결혼에 골인한 그들은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나서 2015년 11월 첫 매장을 열었다. '눈을 견딘다'는 뜻의 나이쉐는 펑신의 온라인 아이디였다.
찻잎은 4시간마다 교체하고 빵과 디저트는 당일 판매가 원칙이었다. 각종 과일과 크림치즈를 얹은 밀크티는 젊은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매년 10곳 이상씩 매장을 확대해 2017년 44개로 불어났고, 2018년에는 155개로 3배 넘게 급증했다. 이후 2019년 327개, 2020년 491개 등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매장 수는 556개이며 연내 300개가 추가될 예정이다.
나이쉐 매장은 스타벅스 못지 않은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공부하고, 사색하고, 업무도 볼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매장 면적이 200㎡ 이상으로 널찍한 이유다.
최근에는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인 '나이쉐 프로(PRO)'도 론칭했다. 백화점과 쇼핑몰 등 유동 인구는 많지만 임대료가 비싼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중국 밀크티 시장에서 나이쉐의 점유율은 3.9% 수준이다. 굉장히 낮은 것 같지만 수십 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는 걸 감안해야 한다.
대부분의 밀크티는 10~20위안대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박리다매의 전형인 미쉐빙청(蜜雪冰城) 같은 업체는 6위안(약 1000원)짜리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밀크티 업계에서 나이쉐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통한다. 25위안 이상 고급 밀크티 시장의 경우 나이쉐 점유율(18.9%)은 시차(喜茶)에 이은 2위다.
27.7%의 점유율로 1위인 시차는 평균 가격이 29위안이지만, 나이쉐는 34위안에 달한다. 그래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나이쉐 매장에 들르는 건 차뿐 아니라 브랜드를 소비하는 행위라는 게 중국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업계 최초 상장, 몸값 7조원 전망
펑신 부부는 시차 창업자인 녜윈천(聶雲宸)과 더불어 중국 밀크티 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당연히 두 업체의 상장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는데 나이쉐가 시차에 앞서 증시 입성에 성공했다.
홍콩거래소는 지난 6일 나이쉐가 상장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2월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지 4개월 만이다.
홍콩거래소의 경우 심사를 통과하면 대략 20~25일 뒤 주식 거래가 시작된다. 이르면 이달 중 상장이 이뤄지는 셈이다.
펑신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금이 부족해 상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속 가능하고 더 투명하며 스스로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이쉐가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할 자금은 5억 달러(약 5575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증권가에서는 나이쉐의 기업 가치를 130억 위안(약 2조2669억원) 정도로 본다. 중장기적으로는 400억 위안으로 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0만 위안을 들여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조단위 몸값의 기업을 일군 것이다.
나이쉐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펑신 부부가 67.04%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전문 투자사인 톈투(天圖)와 SCGC가 각각 13.05%와 3.32%의 지분율을 기록 중이다.
시난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신차인 시장은 지난해 356억 위안에서 오는 2030년 1151억 위안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향후 10년간 매장 수가 1만4000개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난증권은 "나이쉐와 같은 선두권 브랜드는 다른 업체보다 3배 이상의 매장 증가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나이쉐가 상장에 성공하니 단박에 '중국판 스타벅스'라는 수식이 붙는다.
이전에는 커피 전문 업체인 루이싱(瑞行)이 나스닥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같은 별칭을 누렸지만 분식회계 비리로 증시에서 퇴출당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하워드 슐츠(스타벅스 창업자)로 불리는 녜윈천이 이끄는 시차는 당분간 IPO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올 들어 다수의 중국 매체가 시차 상장 가능성을 언급해 왔지만, 정작 녜윈천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깔끔히 정리해 줄게. 올해 우리는 어떠한 상장 계획도 없다"고 적었다.
현 시점에서 중국판 스타벅스에 가장 근접한 건 나이쉐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둥우증권의 탕쥔(湯軍) 애널리스트는 "경주 코스가 다르고 체격 차이도 크지만 나이쉐는 경영 전략 측면에서 스타벅스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화이트칼라를 겨냥한 마케팅과 대도시 공략, 매장의 고급화와 사교 공간화, 디지털 플랫폼 구축 등을 꼽았다.
탕 애널리스트는 "제품 표준화와 영업 성숙도 등에서 스타벅스가 여전히 앞서 있지만 나이쉐도 여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며 "매장 확대 공간과 진화 능력을 감안하면 나이쉐는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펑신도 "시차는 우리 라이벌이 아니다. 또 다른 스타벅스가 되는 게 유일한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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