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대표작(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대표영화(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필자는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녹여낸 '최씨네 리뷰(논평)'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여름이 온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있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을 때나, 뜨거운 음료를 주문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극장에 '공포 영화'가 줄지어 찾아올 때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 공포 영화와 성수기용 대작 영화(텐트폴 무비)가 밀려들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곤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 코로나19 속에서도 극장의 여름은 찾아왔고 공포 영화가 대거 개봉했다.
올해 공포 영화 개봉 명단 중 개인적으로 크게 기대하던 작품이 있었다. 바로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다. 동년배들은 다 알겠지만 '여고괴담'은 우리에게 공포 영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작품으로 공포 영화 열풍이 불었다. 여고괴담에 출연한, 신선하고 낯선 얼굴의 배우는 스타가 됐다. 감독들은 '여고괴담'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문제와 시대상을 반영하며 큰 반응을 끌어냈다. 업계에서도 '여고괴담'의 의미는 컸다. 당시 젊은 감독들은 '여고괴담' 연속물을 통해 실험적인 연출과 독창적인 화면구성을 선보였고 현재 충무로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영화 '만추' 김태용 감독과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등이 '여고괴담' 연속물 출신이다)
'여고괴담5' 이후 12년 만에 6편이 제작됐다. 영화 개봉 소식에 기대가 컸다. 이른 오전 공포 영화 시사회 일정에도 들뜬 마음이었다. '여고괴담' 연속물의 부활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공식은 '국룰'(국민 룰의 줄임말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라는 신조어)이었다. 감독도 배우들도 '여고괴담'이라는 유명 연속물에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모든 단락에서 부담과 망설임이 느껴졌다. 차진 긴장감은커녕 군데군데 성긴 구성으로 맥이 탁 풀리곤 했다.
고교 시절의 기억을 잃은 은희(김서형 분)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모교의 교감 자리를 지원한다. 지워진 기억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기는커녕 알 수 없는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고 은희의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어느 날 은희는 문제아 하영(김현수 분)이 학교의 폐쇄된 공간을 드나드는 것을 목격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폐쇄된 곳으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까지 도는 곳이다. 학생들은 물론 임직원들까지 쉬쉬하는 장소지만 하영은 홀린 듯 폐공간을 드나든다.
은희는 하영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두 사람 모두 그 공간에서 친구를 잃었기 때문. 은희와 하영은 홀린 듯 폐쇄된 공간을 드나들고 학교에서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영화는 선생님과 학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여러 퍼즐을 통해 하나의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외부의 인물이 사건에 휘말리고 실체가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 기이한 일을 겪고 있는 인물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등이 인상 깊다. 그간 '여고괴담' 연속물이 그려왔던 시대상을 반영한 부분이다. 입시 비리와 성범죄 등으로 고통을 겪는 학생들과 그를 구함으로써 자신도 구원받는 은희의 모습은 여성학적으로도 인상 깊은 대목.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이들이 가진 매력적인 요소를 조금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매 단락을 잘게 쪼개놓는 탓에 인물들의 감정선은 여기저기 날뛰고 있고 서사를 복합적으로 구성해놓고도 흐름을 따라갈 여지도 남겨놓지 않았다. 관객들은 여기저기 쪼개진 조각을 줍느라 급급하기만 한데 고개를 들면 딴소리를 늘어놓으니 황당하기까지 하다. 심지어는 영화 말미 급히 퍼즐을 맞추느라 모양새마저 기괴해졌다.
영화의 만듦새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주인공 은희의 심리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음에도 조명은커녕 흘려보내기만 했다. 은희를 통해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폭력, 피해자들과 남은 자들의 고통 등을 이해할 수 있건만.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했고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여고괴담' 연속물의 미덕인 '새로운 얼굴', '배우들의 열연'은 간신히 지켜냈다. 마구 조각냈음에도 불구하고 김서형이 가진 깊이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가 그린 예민하고 예리한 감정, 호흡들을 진득하게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또 김현수, 최리, 김형서(비비) 등 신선한 얼굴의 등장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만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고괴담6'가 또 한 번 증명한다. 17일 개봉. 상영 시간은 108분,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대표작(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대표영화(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필자는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녹여낸 '최씨네 리뷰(논평)'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올해 공포 영화 개봉 명단 중 개인적으로 크게 기대하던 작품이 있었다. 바로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다. 동년배들은 다 알겠지만 '여고괴담'은 우리에게 공포 영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작품으로 공포 영화 열풍이 불었다. 여고괴담에 출연한, 신선하고 낯선 얼굴의 배우는 스타가 됐다. 감독들은 '여고괴담'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문제와 시대상을 반영하며 큰 반응을 끌어냈다. 업계에서도 '여고괴담'의 의미는 컸다. 당시 젊은 감독들은 '여고괴담' 연속물을 통해 실험적인 연출과 독창적인 화면구성을 선보였고 현재 충무로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영화 '만추' 김태용 감독과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등이 '여고괴담' 연속물 출신이다)
'여고괴담5' 이후 12년 만에 6편이 제작됐다. 영화 개봉 소식에 기대가 컸다. 이른 오전 공포 영화 시사회 일정에도 들뜬 마음이었다. '여고괴담' 연속물의 부활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공식은 '국룰'(국민 룰의 줄임말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라는 신조어)이었다. 감독도 배우들도 '여고괴담'이라는 유명 연속물에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모든 단락에서 부담과 망설임이 느껴졌다. 차진 긴장감은커녕 군데군데 성긴 구성으로 맥이 탁 풀리곤 했다.
어느 날 은희는 문제아 하영(김현수 분)이 학교의 폐쇄된 공간을 드나드는 것을 목격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폐쇄된 곳으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까지 도는 곳이다. 학생들은 물론 임직원들까지 쉬쉬하는 장소지만 하영은 홀린 듯 폐공간을 드나든다.
은희는 하영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두 사람 모두 그 공간에서 친구를 잃었기 때문. 은희와 하영은 홀린 듯 폐쇄된 공간을 드나들고 학교에서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영화는 선생님과 학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여러 퍼즐을 통해 하나의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외부의 인물이 사건에 휘말리고 실체가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 기이한 일을 겪고 있는 인물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등이 인상 깊다. 그간 '여고괴담' 연속물이 그려왔던 시대상을 반영한 부분이다. 입시 비리와 성범죄 등으로 고통을 겪는 학생들과 그를 구함으로써 자신도 구원받는 은희의 모습은 여성학적으로도 인상 깊은 대목.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이들이 가진 매력적인 요소를 조금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매 단락을 잘게 쪼개놓는 탓에 인물들의 감정선은 여기저기 날뛰고 있고 서사를 복합적으로 구성해놓고도 흐름을 따라갈 여지도 남겨놓지 않았다. 관객들은 여기저기 쪼개진 조각을 줍느라 급급하기만 한데 고개를 들면 딴소리를 늘어놓으니 황당하기까지 하다. 심지어는 영화 말미 급히 퍼즐을 맞추느라 모양새마저 기괴해졌다.
영화의 만듦새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주인공 은희의 심리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음에도 조명은커녕 흘려보내기만 했다. 은희를 통해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폭력, 피해자들과 남은 자들의 고통 등을 이해할 수 있건만.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했고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여고괴담' 연속물의 미덕인 '새로운 얼굴', '배우들의 열연'은 간신히 지켜냈다. 마구 조각냈음에도 불구하고 김서형이 가진 깊이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가 그린 예민하고 예리한 감정, 호흡들을 진득하게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또 김현수, 최리, 김형서(비비) 등 신선한 얼굴의 등장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만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고괴담6'가 또 한 번 증명한다. 17일 개봉. 상영 시간은 108분,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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