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불어민주당이 부산하다. 국민의힘에서 30대 0선(選)의 당 대표가 ‘선출’된 탓이다. ‘지명직’ 청년 최고위원의 발언 순서를 앞으로 조정하는가 하면, 대선기획단장에 청년을 ‘배치하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진들은 젊은 의원들에게 “너네도 뭐 좀 해봐라”라고 얘기한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한술 더 뜬다. 피씨방에서 게임을 배우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가 하면, 유명 걸그룹의 춤을 따라 춘다거나, 가죽점퍼에 선글라스를 쓰고 젊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기 바쁘다.
2.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016년 총선에 처음 출마했다. 보수정당의 ‘험지’인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서다. 상대는 지역구 현역 의원이자 대선 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였다. 쉽지 않은 선거였다. 이후 2018년 보궐선거, 2020년 총선까지 세 차례 낙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던 이준석이다. 밭이 좋은 지역구를 갈 수도 있을 터, 험지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이른바 ‘좋은 밭’에 가면 공천을 신경써야 한다. 당 대표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정치를 못 하게 된다.”
3.
4·7 보궐선거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던 민주당. 2030 초선 의원 5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고 검찰의 부당한 압박에 밀리면 안 된다고 판단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했다. 오히려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고 반성한다.”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초선 5적(敵)’이란 별칭도 붙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조국 장관이 고초를 겪으실 때 그 짐을 저희가 떠안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란 사죄가 나왔다. 민주당 ‘청년위원장’의 얘기다.
4.
6·11 전당대회, 이준석의 연설은 곳곳에서 화제가 됐다. 광주에서 1985년생의 5·18을 얘기했고, 대구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했다. 제주를 찾아선 4·3사건 폄훼에 대해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기자의 눈엔 과거에 빚진 게 없는 젊은 정치인이, 과거 보수정당의 과오를 해원(解冤)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준석이 선출되자 ‘탄핵의 강을 건넜다’는 말이 나왔고, 호남의 민심이 움직였다. 지난 14일 첫 공식 행보로 광주를 찾은 그에게 한 지역 기자가 ‘전두환씨의 재판 불출석’에 대해 물었다. 이준석은 “재판에 불성실한 협조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앞으로 저희가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호남 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답변을 듣는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5.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 ‘86용퇴론’이 세게 불었다. 86세대의 대표적인 정치인과 식사 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86용퇴론’에 대해 물었다. 그 정치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왜 그냥 물러나냐, 권력은 싸워서 쟁취하는 거다. 당위에만 기댄 힘없는 목소리에 물러날 정도로 우리가 나약하지 않다. 아직 우리가 꿈꿨던 세상은 멀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던 그들 세대는 ‘정치 효능감’을 공유한다. 그들은 집단이 나서 세상을 바꿨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그리는 세상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그 효능감은 그들의 힘이다.
6.
‘배치’, ‘지명’이란 단어 뒤에 주체가 가려져 있다. 청년을 전진 ‘배치’하고, 청년 최고위원을 ‘임명’하고, 발언 순서를 ‘조정’하는 주체는 결국 기성 세대다. 기존 정치권이 청년을 이용해 왔던 방식이다. 새로운 세대는 언제나 투쟁과 함께 등장했다. 연금 개혁이나 노동 개혁과 같은 첨예한 아젠다 대신, 여의도에 청년들 자리나 몇 개 만들어 달라는 식의 ‘청년 정치’로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살 수가 없다. 민주당의 부산스러움 속엔 청년이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