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및 주식 관련 매체에서는 걸핏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타령을 한다. 그게 내가 투자하는 주식의 가격이나 매달 갚아 나가는 대출 이자와 무슨 상관이며, 수출입 업체 입장에서는 수시로 사거나 팔아야 하는 달러 시세와 무슨 연관이 있기에 그러는 것일까?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겠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연준의 의사결정이 앞서 언급한 동풍이다. 그들이 돈을
찍어내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라면 다 비싸지고, 그들이 돈줄을 조이면 그 가격들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즉, 바람의 방향에 따라 그날그날의 통합대기 지수가 좋음에서 매우 나쁨을 오가듯이 주가, 금리, 환율, 원자재 시세 등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동인(動因)은 연준의 정책 스탠스 변화이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격언이 오래 전부터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는 '연준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격언도 있다. 그들이라고 해서 현재와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시장과 소통한답시고 내뱉는 말들을 항상 지켜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2015년 중반부터 금리 인상에 돌입하여 여덟 차례에 걸쳐 25bp씩 금리를 올린 상황인 2018년 10월에 제롬 파월 의장이 “중립금리까지는 한참 멀었다”면서 연준의 긴축적 행보가 상당 기간 이어질 듯 호기를 부렸지만, 추가 금리 인상은 한 차례에 그치고(12월에 연 2.5%까지 인상) 이듬해 7월부터 인하로 돌아서 다시 제로(0) 금리 시대로 회귀한 경우다. 작년 3월에는 코로나 충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예정에도 없던 FOMC를 두 차례나 열어 50bp, 100bp에 달하는 금리인하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그놈의 중립금리 운운은 결국 '우리도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에 불과했던 셈이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과 관련하여 뭔가를 암시하면 언론에서는 흔히 “(금리인상 또는 금리인하의) 깜빡이를 켰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깜빡이를 켠 채로 시내 주행에서 몇 차례나 사거리를 지나치고 고속도로에선 몇 개의 분기점을 그냥 직진하여 달려간다면, 뒤따르는 운전자는 짜증이 나거나 앞차를 모는 사람을 초보라고 무시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달리던 차량이 느닷없이 좌회전을 해버리는 경우라면, 이건 짜증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아니, 분노 유발 정도에 그치면 다행이고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장은 이제 연준의 ‘테이퍼링(Tapering: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 나가는 것)’을 타이밍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금리인상도 시기의 문제일 뿐, 불가피한 상황임을 세상은 다 알고 있다. 도대체 경제성장률이 4%네, 6%가 될 수도 있네 하는 상황에서, 월가의 은행들이 돈 굴릴 데가 없어 0%의 이자에도 익일물로 연준에 5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예치하는 판국에, 언제까지 매월 1200억 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QE)와 제로 금리를 고집하겠다는 것인가?
깜빡이는 이미 켰으니 이제는 시장의 짜증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유발하지 않길 바란다. 금리 인상을 과연 연준이 단행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기는 하다. 이론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그들이 갈 길은 이제 금리인상임에도, 일각에서는 미국에서도 마이너스 금리를 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연준을 향한 필자의 개인적인 바람은 이왕 버린 몸이라고 너무 막 나가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뒤돌아서 가기에는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미지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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