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권 소송'을 각하했던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정반대 취지의 판결을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비슷한 사건이라도 재판부가 다르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일에는 '일본은 한국 내 재산목록을 명시하라'는 판결을 내놨다. 같은 법원에서 이틀 사이로 정반대 취지의 판결이 나온 셈이다.
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재판장 남성우)는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경우 채권자(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인정된다'며 이 같이 판결했다. 이틀 전인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이유로 강제징용 피해자 85명이 제기한 소송을 각하하는 정반대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징용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정한 남성우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앞서(지난 7일) 선고된 '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의 주요 논리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그는 △사법부는 외교에 관여하면 안된다는 점 △대법원 판례는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는 점 △반인도범죄는 국가면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국제법은 반인권적 행위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 등을 명시했다.
재판장 바뀌자 '뒤바뀐 판결'?
같은 재판부이지만 재판장이 바뀌면서 정반대 결과가 나온 사례도 있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당시 재판장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1인당 1억원과 지연이자, 소송비용을 지급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일본 측은 대응하지 않았고, 판결은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위안부 문제와 같은 중대한 인권 침해는 국제법상 최고규범인 강행규범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예외적으로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로 김양호 부장판사가 민사34부로 부임하면서, 본안 확정판결의 논리는 새로 뒤집혔다. 통상적으로 민사 재판에서 원고가 승리할 경우 소송비용은 피고가 담당한다. 하지만 지난 3월 29일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소송비용을 일본에 추심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등과 각 당국이 한 언동에 금반언 원칙(기존의 언행을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을 더해보면 추심 결정은 국제법 위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원고 패소의 이유를 밝혔다.
이에 더해 재판부는 주권 국가인 일본의 '주권적 행위'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재판부는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그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주권적 행위는 국가면제(주권국가의 행위와 재산은 타국의 재판관할권에서 면제되는 것)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의 논리는 6월 7일 '강제징용 소송'에서 반복됐다. 김 재판장은 △비엔나 협약은 국제 조약에 해당하는 한일협정을 따르도록 한다는 점 △식민지배를 금지하는 국제법적 관행은 찾기 어렵다는 점을 들며, 강제징용 피해자 85명이 16개 일본 기업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남성우 재판장의 '반격'? 판결문에 다른 재판부의 '對日 판결' 반박 담아
이에 맞서 9일 남성우 재판장은 '일본 정부가 국내 재산목록을 공개하도록 명령'한 것은, 법원이 일본의 국내 재산을 강제집행하기 위한 절차를 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지난 3월 김양호 재판장이 소송비용의 '강제집행'을 기각했던 것을 다시 뒤집는 판결이다.
남성우 재판장이 판결문을 통해 '국내 일본 재산 공개 확정판결'의 이유로 제시한 논거들은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위안부 '2차 소송'(김복동·이용수 할머니 등 20명이 제기한 소송) 각하 △6월 '강제징용 소송' 각하를 결정한 다른 재판부의 판단을 포괄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판결문은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정부에,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면서 "확정판결에 따라 채무자에 대한 강제집행의 실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의 악화, 경제 보복 등의 국가간 긴장 발생 문제"는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판시했다.
또한 판결문은 '식민지배에서 이뤄진 강제징용은 한일협정에 적용되지 않았다'는, 2018년 10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또한 행사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더해, '위안부 제도는 주권적 행위'라는 위안부 2차 소송에 대해서도 "국가에 의하여 자행된 살인, 강간, 고문 등과 같이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에 대하여 국가면제를 인정하게 되면 국제사회의 공동의 이익이 위협받게 되고 오히려 국가 간 우호관게를 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더불어 국제법은 식민지배 등 국제 범죄 또한 국가면제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2001년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서 고문을 국가면제에 포함하는 판단에 반대의견을 개진한 재판관이 전체 17명 8명이었던 점 △국제사법소(ICJ)의 독일과 이탈리아 간 국제면제 사건에서 지금의 국가면제를 '현 단계의 국제관습법'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들어, 국제법이 절대적으로 국제면제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편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은 추심을 기각한 민사34부 판단에 불복해 14일 항고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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