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7년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깬 판결이다. 지난해 7월에는 배우자에게 '파리크라상' 상표권을 넘기면서 회사에 재산상 손실을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고의성이 없다"며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횡령·배임죄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판단이 더 엄격해지고 있다. 배임죄는 사실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를 남발하는 것은 기업 경영활동에 제약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배임죄는 모호한 법 조항으로 검찰이 자의적으로 기소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기업 총수들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배임죄는 존치 여부에 대한 논란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구조 특성상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폐지·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무엇보다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배임죄를 처벌하는 나라는 드물다.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형사법전에 규정한 독일에서조차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과거 '배임죄는 항상 통한다'고 여겨졌으나 점차 회사 경영 특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배임죄가 없는 미국, 프랑스는 경영자 재량권이 폭넓게 인정된다. 불문법 국가인 미국은 1982년 루이지애나 대법원에서 판례를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확립했다. 이 원칙은 이해관계 없이 상당한 주의 의무를 가지고 구체적·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경영상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또 선의로 재량을 남용하지 않고 판단하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 대법원도 1985년 그룹 필요에 따라 계열사 간 지원을 할 경우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업무상 배임죄를 비롯해 일본 형법 개정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선 이 법안이 폐기됐다. 횡령과 배임죄를 같은 조문(형법 제355조 횡령·배임, 제356조 업무상 횡령·배임)에 규정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별도 조문으로 분리했다.
국내에서도 점차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때 경영 판단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회사 수익이 얼마 감소했는지'와 같은 수치로만 따지기 어려운 것이 경영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이기에, 배임죄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대신 검찰 등 수사기관이 편한 칼자루로 남용하지 않게 법원이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업무상 배임죄 폐지는 국가별 법제 수준과 기업 환경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며 "개별 행위에 대한 법 조항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면, 배임죄 판단이 불명확하다고 해서 없애기에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통제 장치를 촘촘하게 두면 업무상 배임죄는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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