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이슈페이퍼] ③ ESG, 파도 아닌 바람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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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입력 2021-06-2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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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ESG가 붐(boom)이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이사회 내에 ESG 위원회를 만들고 전략과 실행과제를 도출하기에 바쁘다. 2007년부터 한국 사회에서 ‘ESG’를 전면적으로 표방해 온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최근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붐이 매우 반갑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ESG를 일시적 유행으로 받아들이거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현 정권의 어젠다로 여기거나, 다수의 기업에서 ESG 활동을 평가대응 활동으로 환원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근본적인 질문과 논쟁 과정이 소거된 채 ESG를 수용하거나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즉 ESG가 어떤 사회적·경제적 맥락에서 나왔는지, ESG를 통하여 어떤 미래상이 그려지는지, 그 미래로 가는 여정에서 기업과 금융기관은 어떤 비즈니스를 해야 하고,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치열한 논쟁이 부재한 상태에서 그냥 ESG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은 이러한 상황에 매우 익숙하다. 필자의 주관적인 구분을 전제로 2005년~2007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2008년~2016년 녹색성장과 CSV(공유가치창출), 2017년~현재는 사회적 가치, 그린뉴딜, ESG라는 용어가 부상했고, 시기마다 대응은 요란했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조용해졌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에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얼굴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이 대사에 비추어 보면 CSR, CSV, 녹색성장, 그린뉴딜, 사회적 가치는 사람의 얼굴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대의 얼굴은 무엇이고 바람은 무엇인가. 빈곤, 불평등, 부의 양극화, 실업, 기후변화, 생태위기, 그리고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를, AI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 등이다. 이 바람이 바로 CSR, CSV, 녹색성장, 그린뉴딜, 사회적 가치라는 파도를 일으킨 원인이다. 사실 이 바람은 오래전부터 불고 있었다. 경쟁적 자본주의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하자 이제 그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로 패러다임 전환이다. 때문에 ESG라는 파도가 아닌 바람의 방향에 주목해야 한다. 그 방향에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이 나아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 패러다임 전환 : 바람의 방향 전환

먼저 배제적 성장(exclusive growth)에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으로의 전환이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신자유주의를 이념적 토대로 한 경쟁적 자본주의는 ‘배제’를 ‘성장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규정한다. 이를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정책논리가 바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다. 낙수효과는 상층(대기업‧고소득층)의 부(富)가 충분히 차면 그 부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면서 하층(중소기업‧저소득층)이 혜택을 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IMF조차 낙수효과는 허상이라는 보고서를 2015년에 내며 ‘양극화 심화’ 등 그동안의 성장 중심 경제정책에 대하여 반성한 바 있다. 경쟁적 자본주의는 각종 불평등과 부의 집중으로 인한 빈부 격차 등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고,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OWS)라는 시위는 배제적 성장의 모순이 전 세계적으로 표출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의 전환이 역시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전환은 배제적 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의 전환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를 정착시킨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는 바로 시카고 경제학파를 이끈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그는 1970년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증대’(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기고를 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을 전개해 나가는 그의 이론적 바탕은 바로 ‘기업은 오로지 주주만을 위하여 존재하며, 주주에게만 책임을 진다’이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는 바야흐로 황혼의 시간대로 진입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 2019년 8월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에서 경영자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usiness Roundtable, BRT)이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건 대표적인 시그널이다. BRT는 성명서를 통해 고객에게 가치 제공(고객의 기대 충족), 종업원에 대한 투자(공정한 보상, 훈련과 교육,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존엄과 존중), 공급업체와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좋은 파트너로서 봉사), 지역사회 지원(지역사회 사람 존중, 사업 전반에 걸쳐 지속가능한 관행을 채택해 환경 보호), 주주를 위한 장기적인 가치 창출(투명성과 주주의 효과적인 참여에 전념)을 약속했다. 성명서는 "이해관계자자들 각각이 필수적이다"고 천명한다. 현재 이 선언에는 236명의 미국의 주요 기업 CEO가 서명했다. 2020년 1월 다보스 포럼이 던진 화두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였다는 점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고탄소 사회에서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주주자본주의와 배제적 성장이 초래한, 인류의 가장 심각한 위기다. 2015년 합의한 파리기후협약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동의 노력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지구 파국을 막기 위해 제시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은 1.5℃ 이하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순 제로(net-zero) 배출, 즉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및 회원국 등 주요국이 이미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전 세계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도 탄소중립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탄소중립 기본방향과 부문별 추진 전략을 담은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과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도 발표했다. 올해에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도 상향 조정하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발표될 예정이다.

전 세계는 탈탄소 사회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석탄발전소의 조속한 폐지와 RE100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기후 관련 재무정보 태스크 포스인 TCFD와 G7 재무장관의 최근 TCFD 의무화 합의, 금융시스템을 녹색화 하는 금융규제 당국자들의 녹색금융네트워크인 NGFS 등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이니셔티브들이다. 2023년 도입을 추진하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IMF의 탄소가격제 톤당 75달러 제시 등은 탈탄소 사회를 가속화 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1.5℃ 기후행동’도 거세지고 있다. 전 세계 투자자를 대변하는 7개 기관들(PRI, CDP, UNEP FI, IGCC, IIGCC, AIGCC, Ceres)의 협력 이니셔티브인 ‘투자자 어젠다’(Investor Agenda)는 대표적이다.

◆ 자본의 대이동 : ESG는 게임의 룰 키워드

세 가지 전환은 바로 ‘게임의 룰’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ESG는 이 룰을 재세팅하는 핵심 키워드다. 자본의 논리로 설명하면, 현재의 자본의 재조정 과정이기도 하다. 자본투자의 스펙트럼을 보면 양 극단에 두 가지 자본이 존재한다. 오직 재무적 수익만 추종하는 자본과 오직 사회적 영향(social impact)만 추구하는 자본이다. 각각 전통적인 자본과 박애자본이 대표적이다. 이 두 종류의 자본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자본이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전 세계의 자본은 이제 재무적 수익을 추구하면서도 최소한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지 않거나, 사회적 영향을 창출하면서도 최소한 재무적으로도 수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책임투자, 사회책임투자, 지속가능투자, 임팩트 투자로 전 세계의 자본이 수렴되고 있다. 전 세계 ESG 투자규모는 2020년 말 현재 45조 달러에 이르고 도이치 뱅크의 전망에 따르면, ESG 관련 규제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2035년에는 160조 달러로 증가한다. 전 세계 지속가능채권 규모도 2020년 말 7320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ESG 투자규모는 2020년말 기준 약 105조원, ESG 채권은 약 122조4000억원 대(2021.6.18. 기준)로 증가했다.

자본의 대이동은 사회와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전 세계는 포용적 사회와 포용경제, 탈탄소 그린경제로 전환되고 있다. 때문에 기업과 금융기관도 포용적 경영과 포용금융, 탈탄소 녹색경영과 녹색금융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경영과 투자에 ESG를 통합시키고 더 나아가 ESG를 조직의 DNA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모든 사회 문제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 문제는 파도가 아닌 바람과 그 방향을 볼 때 그 실체가 드러난다. 바람의 실체와 방향을 보는 기업은 위험에 미리 대비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이때의 렌즈는 ESG다. 스마트한 기업은 이미 이를 간파하고 ESG를 DNA로 만들어 가고 있다.

※ 칼럼 제공 : 오픈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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