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연봉, 인센티브를 앞세워 개발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는 IT 대기업들도 개발자가 부족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개발자 수가 한정되다 보니 그들끼리 서로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때로는 한국 대기업보다 많은 보수를 주고 유능한 개발자들을 많이 보유한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 인재를 내주기도 한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마저 개발자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가장 걱정이고 도전적인 일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개발자를 확보하는 일’이라고 답변한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내수 업종인 포털 사업만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GIO는 지난 3월 사내 간담회에서 “한정된 기술과 기획 인력을 국내와 해외 중 어디에 집중시킬지 판단했을 때 해외에 나가는 게 더 좋은 결정”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네이버는 개발자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 매월 경력 개발자를 뽑는 ‘월간 영입’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지난해 3년 만에 신입 개발자 공채를 부활시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 초대규모 인공지능(AI) 언어모델인 ‘하이퍼클로바’의 연구 성과를 빠르게 공개한 것도 경쟁사보다 AI 개발자 영입 전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전략이다.
네이버는 최근 서울대와 ‘초대규모 AI 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AI대학원과 ‘초창의적 AI 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베트남 우정통신대학, 하노이과학기술대학과 함께 AI 연구 센터도 구축했다. 국내외 유수 대학의 인재들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행보다. 네이버는 컴퓨터공학 비전공자를 직접 교육하고 채용하는 프로그램까지 신설했다. 그럼에도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토로한다.
성낙호 네이버 클로바 CIC 비즈 AI 책임리더는 “글로벌 기업은 페이를 두 배, 세 배씩 더 주고, 유명한 개발자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며 “그런 회사들은 글로벌 단위에서 개발자들을 흡수하지만 우리는 한국 개발자 밖에 못 데리고 온다. 인력 풀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메신저뿐만 아니라 금융, 모빌리티, 콘텐츠, 블록체인, 쇼핑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카카오도 개발자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지난해 11월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국내 데이터, AI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토로하며, 인력 보강이 되지 않으면 AI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내 개발자 수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대기업들은 경쟁사 개발자들에게 높은 연봉을 제시해 인력을 뺏고 빼앗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전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지난 1년간 IT 개발 인력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면서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주요 IT 기업에서 100명 이상이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지난해 하반기에 경력 개발자를 공개 채용하면서 합격 시 최소 5000만원의 입사 축하금을 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연봉 상위 기업인 SK텔레콤도 억대 연봉을 제시하는 네이버, 카카오에 개발자들을 상당수 빼앗기고 있다. 연초부터 전 직원의 연봉을 최소 800만원에서 2000만원씩 일괄 인상한 게임업계에서도 이전보다 개발자 영입전이 더 치열해졌다.
기업 간 개발자 쟁탈전이 개발자들의 몸값 상승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직 한두 번으로 연봉이 수천만원씩 인상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와 카카오, 엔씨소프트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원을 넘어섰다. 개발자가 역으로 회사에서 제시하는 보상, 복지 수준을 보고 평가하는 실정이다.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에서 나간 개발자를 네이버가 다시 웃돈을 주고 데려온 사례도 있다. 해당 직원은 회사를 나갔다 다시 들어왔을 뿐인데 몸값이 크게 뛰었다”며 “최근 대기업들이 당장 시킬 일이 없어도 개발자들을 대거 채용한다. 사업을 확장할 때를 대비해 미리 개발자들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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