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값싼 일본' 쇼크와, '값싼 한국'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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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1-06-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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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요즘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제지인 일본경제신문에 매우 재미있는 칼럼이 연재되고 있다. 그 제목부터가 충격적이다. 그것은 바로 '값싼 일본'이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라고 여기며 높은 자존심을 뽐냈던 일본인이 이제는 스스로를 '값싼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를 모르는 것은 일본인들일 뿐이라며 일본인 스스로가 일본이 얼마나 값싼 나라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이 칼럼은 역설하고 있다. 일본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 했던 1980년대의 버블 시대의 농담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아무나 와서 싸게 살 수 있는 싸구려 나라가 되었다는 말인가? 일본의 권위 있는 경제지는 왜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값싼 일본'이라는 자극적인 칼럼을 연일 연재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일은 단지 일본에 국한된 현상이라 여기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비아냥거릴 일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값이 싸다는 것은 일본의 물가와 임금이 국제적으로 비교해 볼 때 싸다는 뜻이다. 필자가 일본에서 생활했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통계가 아니라 몸으로 체감했다. 그리고 그 이후 출장 등을 통해 느낀 일본의 물가는 여전히 오르지 않았다. 왜 물가가 오르지 않나? 물가를 올리면 매출이 급감하는 일본 국내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1엔이라도 올리면 일본 소비자들은 다른 대체재로 갈아탄다. 왜 일본 소비자들은 이런 행태를 보이는가? 생활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1엔이라도 절약하고 한 푼이라도 쿠폰에 적립해야 하는 소비행태가 정착되면서 기업들은 물가를 올리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비용을 절감하고자 한다. 절감할 수 있는 비용으로는 임금이 있다. 임금이 정체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묘한 담합을 한다. 면접일정을 조정하고 인재쟁탈 경쟁을 억제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소비가 정체된다. 소비자와 기업은 이렇게 서로의 목을 조여 왔다. 무려 지난 30여년 동안이나!
이러는 사이 다른 나라는 어떠했는가? 물가와 임금의 순환적 상승이 계속되었다.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 평가로 볼 때 일본의 평균임금은 미국의 58.7%. 2019년에는 한국과 이탈리아에도 뒤처졌다고 통렬히 꼬집는다. 더구나 최근에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상승했다. 가계가 보유한 자산비율을 고려한 수정소비자물가를 이용하여 실질임금을 계산하면 지난 10여년 동안 실질임금은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년간은 2% 이상이나 하락하고 있다. 명목임금만이 아니라 실질임금도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제 더 이상 월급을 절약하여 저축한 돈만으론 자기 집을 구입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20년 전 30~40대의 자가보유비율은 55%. 그러나 지금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자산 양극화이다.
코로나 이전 일본은 관광 붐이 일었다. 정부의 관광부흥정책이 있었지만 일본의 관광비용이 싸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극단적으로 싼 서비스가 등장한다. 미용실과 패스트푸드점, 편의점의 주먹밥 등이 그 예이다. 이중가격도 형성된다고 한다. 제조업 제품의 경우 똑같은 제품이 수출용과 내수용에서 다른 가격이라 한다. 수출시장에서는 가격을 올려도 경쟁이 되지만 내수시장에서는 어림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에서도 일부 규격의 아파트는 외국인 투자로 인하여 가격이 급등하는 등 이중가격이 형성된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싸구려 물건이 아니다. 값도 싸지만 품질도 좋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일본의 내수시장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낀다. 품질은 싸구려지만 가격만 높은 그런 시장과는 다르다는 자부심! 그리고 기업은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을 싸게 제공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인식하는 일본인 특유의 기업관!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내수시장에 만족하는 대다수의 일본 소비자! 그 자체로는 매우 건전하며, 오히려 고매하게 보이는 이러한 생각들은 현재의 상황을 더욱 고착시켜 왔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나라와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일본국민이 다른 나라로 관광을 떠날 때 어느덧 비싸진 해외 물가를 체험한다. 그리고 일본기업이 다른 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채용할 때 높아진 인건비에 직면한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기 어렵다. 일본의 주요 대학에서 더 높은 인건비를 지불하지 못하여 우수한 교수를 채용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은 국제적으로 볼 때 점차 가난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가? 반론도 있다. 값싸고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지금도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임금이 오르지 않더라도 여전히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사업에 잘 활용하면 된다는 인식이다. 값싸고 좋은 제품을 사도록 외국인을 많이 불러오면 되지 않는가? 이른바 인바운드 관광의 활성화이다. 코로나로 이러한 붐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새로운 부활의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일본의 경쟁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절약과 비용절감을 추구하는 사이 투자와 혁신은 움츠러들었다. 밖으로 솟구치려는 욕망 대신 인내와 현실안주의 자기만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사이 국제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이렇게 보는 일본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값싼 일본'이라는 칼럼은 오히려 이러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상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벌어질 수도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퇴직 고령자들!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한 우리의 이웃 청년들! 그리고 우리를 추격해 오는 신흥국의 새로운 경쟁자들! 자유무역을 표방했던 세계화 물결의 퇴조와 편가르기식 국제질서의 재편! 모두가 만만치 않은 도전들이다. 우리는 '값싼 한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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