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아주경제 미술실 ]
◆은행·증권사 퇴직연금 운용 제도 도입 놓고도 충돌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가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제도는 ‘디폴트 옵션’ 도입이다.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금융회사가 가입자 성향에 맞춰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지나치게 낮아 안정적인 노후보장이 힘들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으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9일 오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디폴트옵션 도입이 포함된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는 디폴트 옵션 운용 대상에서 원금보장형 상품을 제외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는 비중이 90%에 달하는데, 운용 대상에 원금보장형 상품이 포함될 경우 이들의 퇴직연금이 자동으로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강민호 금융투자협회 연금지원부장은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한 일본의 경우 제도 도입에도 원리금보장 상품의 비중이 76.0%에 달하고 있다”며 “퇴직연금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개정안을 도입했음에도 수익률이 여전히 1~2%에 그치고 있다. 개정안 도입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의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퇴직연금 목표를 위해서는 수익률뿐 아니라 원리금 보장 측면도 중요하다”며 “실적배당형의 경우 시장 상황에 따라 마이너스 수익률이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보장형도 포함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과 증권사는 ‘퇴직연금 상장지수펀드(ETF) 직접매매’를 두고도 충돌하는 모습이다. 현재 은행권은 금융당국에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 실시간 매매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증시 활황이 이어지면서 개인형 퇴직연금(IRP) 운용상품으로 ETF를 선택하기 위해 은행에서 증권사로 고객이 이탈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증권사들은 은행에 ETF 직접매매를 허용해 줄 경우, 금융투자업자의 업무영역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높아진 수익성에 경쟁의식도 커져
이처럼 퇴직연금을 둘러싼 금융업권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이유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관련 수수료 수익도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현재 금융회사들은 퇴직연금 가입 기업과 가입자로부터 운용관리 수수료, 자산관리 수수료, 펀드 수수료 등을 받고 있다. 업권별 전체 수수료율은 은행 0.5~0.7%, 증권사 0.3~0.5%, 보험사 0.3~0.6%가량으로, 지난해 43곳의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거둬들인 수수료는 총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금융업권 간 신경전을 두고 일각에서는 같은 금융지주 소속 계열사끼리 맞붙는 ‘제로섬 게임(한쪽이 많은 고객을 얻으면 다른 한쪽이 그만큼 잃는 게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경쟁 강도와 수익성에 대한 압박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라며 “은행 및 증권 계열사를 모두 보유한 금융지주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점유율 경쟁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