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상한 소고기와 삶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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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이라도 마련해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 결혼하려고 했는데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한 1~2년 악착같이 모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이제 서울 전셋값은 10년을 모아도 내 손에 닿기 불가능할 만큼 멀어졌다."

최근 결혼을 포기하고 '비혼'을 선언한 친구 A를 만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A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소개팅을 할 때마다 돌아오는 '집' 얘기에 번번이 위축되는 자신, 더불어 부모님까지 초라해지는 모습이 싫었다"면서 "더 이상 스스로를 비참하게 하는 소개팅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즐기면서 살겠다"고 했다.

학창시절과 대학교 입학, 취업 등 인생의 성적표가 결정되는 순간마다 줄곧 A등급의 길을 걸었던 그의 고백에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A는 학생 땐 우등생이었고 직장에서는 우수사원으로 통했다. 오합지졸인 친구들 모임에서도 단연 자랑거리였다.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전세금 정도는 모아서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30대 내에는 불가능할 것 같고, 이제 결혼을 해서도 안정된 행복를 누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씁쓸해했다. 그의 말은 2030대가 왜 3포족을 넘어 5포족, 7포족이 되는 지를 대변한다. 연애, 결혼, 취업, 출산, 내집 마련 등 더 이상 포기할게 없다는 청년들은 이제 스스로를 '삶포족(삶을 포기했다)'으로 부른다. 

최근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갭투기 열풍을 설명하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부동산을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모아서 집을 사겠다는 건 열심히 일해서 산 귀한 소고기를 전원이 꺼진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라며 "고기가 썩는지도 모르고 계속 코드가 뽑힌 냉장고에 고기를 넣어둘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고기를 무작정 저장하는 건 어리석으니 요리를 하는 게 여의치 않으면 차라리 먹기라도 하라는 의미일 터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다. 애초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과 이제 종잣돈을 모으고 있는 젊은층들 사이에 간극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건 행위자들의 '절박함'이다. 절박할수록 투자자들은 편법과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삶포족이 늘어날수록 갭투자와 비트코인, 테마주 등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다.

부동산, 주식 등 각종 재테크 커뮤니티에서는 근로와 저축의 의미가 사라지고 젊은이들의 조급함을 자극하는 투기방법만 공유된지 오래다. 이런 K자 양극화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만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허구헌 날 외치는 '공정' 타령만 봐도 그렇다. 공정하지 못한 이들의 공허한 '공정' 가치에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오늘도 삶포족들은 각종 투기 정보를 공유하며 지방 부동산 시장으로, 가상화폐 공간으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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