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은 다원주의자 아닌 一元多敎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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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
입력 2021-07-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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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㉖ 김성언 총무<上>

다석 문하에서 배운 제자들, 다석을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다석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의 마지막은 다석사상연구회 김성언 총무다. 다석의 직제자(直弟子)로는 박영호 다석사상연구회장, 임락경 목사 두 분만 남아 있고 김성언 총무는 박 회장으로부터 다석을 배운 손자 제자인 셈이다.
이 인터뷰는 일단 12명으로 마감을 한다. 하다 보니 예수의 열두제자와 숫자가 같아졌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 의도된 것은 아니다. 다석에 관한 논문과 책을 쓴 학자들 몇 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시지 못했음을 아쉬움으로 남겨둔다.
다석은 종로 YMCA 연경반에서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35년 강의를 이어갔다. 어느 날 강의 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함석헌 선생과 김흥호 교수가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반드시 참석하자고 약속해 그 뒤로 다석이 강의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석이 세상을 뜬지 40년이 지났지만 서울 여의도 성천문화재단에서는 박영호 회장과 제자들이 다석 강의의 불씨를 살려가고 있다. 박 회장이 강사로 나오지 않는 날은 호주에서 돌아와 암 투병 중인 최성무 목사와 김성언 총무 둘만 나올 때도 있다.
-다석 사상의 수강생이 적어서 아쉽습니다.
“수강생들을 모으자면 널리 알려야 하는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만 받고 있으니 청중이 적지요. 박 회장은 ‘사람 많이 모으려 하지 말라. 사람 많아서 무엇 하려고 하는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임을 알리는 행사를 하거나 전도하는 일은 안 합니다. 어떤 때는 저희 모임 회원들조차도 거의 안 나오고 대표인 최 목사와 저만 단둘이 나올 때도 있었지요. 다석의 ‘참’을 공부하는 것은 외로움 속에서 하는 것이지 여럿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마복음서 말씀 74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며 위안으로 삼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선생님, 술자배기 둘레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샘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
술자배기는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진 형태의 옹기를 말한다. 술 주전자 몇 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그릇이다. 술자배기 자리는 걸판지게 술잔이 오가는 주석을 뜻한다. 흥겨운 술자리에는 사람이 모여들지만 참 진리의 맑은 샘물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다.

 김성언 총무는 술자배기 자리엔 사람이 모이지만 진리의 샘물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도마복음의 구절을 인용했다. [사진=윤영은 기자]


-다석이 강의하던 종로 YMCA 연경반의 맥을 다석사상연구회가 이어오고 있군요?
“성천 재단은 류달영 선생이 설립해서 그 아들인 류인걸 이사장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 모임으로 저녁 7시에 시작했는데 5년 전부터는 일요일 오전 11시로 바꿨습니다. 회원들이 모여 박영호 회장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돌아가면서 주제 발표를 하고 토론하고 점심을 합니다. 다석의 참 진리를 같이 공부하고 알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어요. 진리는 혼자 스스로 공부하는 거지, 많이 모여서 같이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보통 열 명 안팎으로 모이다 박 회장이 한 달에 한번 나오는 날에는 20명 안팎으로 늘어납니다. 나머지 주일에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강의를 하죠.”
-김성언 총무는 박영호 회장을 20년 동안 사사(師事)했다면서요. 박 회장은 어떤 분인가요?
“다석의 정신을 이어가는 데 온 정성을 다 바친 분입니다. 한때 지성인들의 우상이었던 함석헌 선생 농장에서 생활하면서 인간의 겉과 속을 분명히 알게 되고, 다석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단사(斷辭)’의 정신을 이었지요. 다석의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주 순수하고 겸손하고 총명하십니다. 박 회장은 이따금 ‘내가 호랑이인 다석을 고양이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하고 자성적(自省的)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내가 다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석을 우상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을 알리는 데 다석만한 재료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박 회장은 ‘자기(제나)’가 없으신 분이지요. 오직 하느님인 ‘참을 알리는데 평생을 다 바친 분입니다. 내가 박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3월 서강대에서였습니다. 불교에서는 1만 겁(劫)의 인연이 있어야 스승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정말 맹귀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승은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입니다.”
김 총무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했다.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아프리카 수단의 카르툼에서 아랍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터뷰어는 1987년 사하라 사막의 수단에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그 나라 대통령을 인터뷰했는데 육군 소장 시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었다. 서명해달라고 하니까 직책을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고 ‘육군 소장’이라고 적었다. 육군 소장이 더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모래바람만 날리는 가난한 나라였다. 밤을 모르는 더위로 새벽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실 물이 부족해 늘 물통을 갖고 다녀야 했다.
-나도 수단에 취재를 가서 거의 보름가량 있었는데요.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수단 카르툼에 22개국 아랍연맹 산하의 국제 아랍어교육 연구소가 있습니다. 내가 유학을 하러 갔을 당시엔 모든 사회적 환경이 열악했지요. 전기가 수시로 끊겨 40~50도 오르내리는 더위와 싸우며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3년 공부하면서 두 번 쓰러졌는데 공부 다 마치고는 더는 체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귀국했어요. 3년이 마치 10년은 된 듯했지요. 수단에서의 공부가 나를 많이 단련시켜주었어요.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랍어 강사를 하다 어떻게 다석에 접하게 됐습니까?
“처음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세계여행을 하면서 살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대학 시절에 인생을 이야기해 주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지요. 하루하루 소일하다가 한 서점에서 류달영 선생의 <소중한 만남>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다석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던 차에 문화일보에 연재된 다석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찾고자 한 사상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고 다석 사상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다석이 ‘알라(하느님)’라는 한글 시를 일지에 적어 놓아 그 부분을 해석하는 데 아랍어 지식을 유용하게 사용한 적이 있어요. ‘알라’라는 말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단적인 단어라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인데 다석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자유롭게 쓰셨어요. 다석은 코란(이슬람교 성서)을 읽고 마지막 114장인 나스(인간)장을 일지에 기록해 놓으셨지요.” 다석이 기독교와 불교 도교(노장)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종교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다.
-다석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던데요?
“다석 사상에 입문하려는 초심자를 위한 책입니다. 조선대학교 학생회장을 했던 조카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에게 다석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잘 모르더라고요. 그런데 함석헌 선생에 대해서는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석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시다. 내가 한번 광주에 내려가서 다석 사상을 강의할 테니 모임을 주선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무슨 강의를 할까 고심하다가 다석의 시 ‘우리는 어찌 되는 길인가? 인생은 신이 되는 길이다’를 가지고 한 시간 반 이상을 강의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다석 사상은 모든 종교 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죠. 광주 강연 이후로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하는 다석 사상을 어떻게 쉽게 풀이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다석의 시(詩) ‘우리는 어찌 되는 길인가?’ ‘참’ ‘마음과 허공’ ‘이승’ 네 편과 ‘믿음에 들어간 이의 노래’ ‘꼭 한 가지 빌 것이다’의 두 편의 오도송(悟道頌)을 풀이하면서 제 나름대로 다석 사상을 정리해 보았지요.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부드럽고 함축적인 시(詩)를 통해 초심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령 ‘이승’이란 시는 여섯 줄에 불과합니다만 그 시속에 인생이 다 들어가 있지요.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살라는 다석의 메시지가 들어 있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이승의 삶이란 튕겨논 줄 쟁쟁이 울리우나 멀잖아 끊길 것
이승의 삶이란 피어난 꽃 연연히 곱다가 갑자기 시들 것
이승의 삶이란 방울진 물 분명히 여무지나 덧없이 꺼질 것’”

-지금 쓰는 책에 다석은 다원주의자가 아니고 일원다교(一元多敎)주의자라고 했던 데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학자들이 편하게 다원주의(多元主義)라고 쓰는데 다석 사상은 일원다교입니다. 어떻게 으뜸 원(元)자가 여럿이 될 수 있겠어요. 다석 사상은 ‘하나’에서 시작해서 ‘하나’로 끝난다고 할 수 있지요.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같아요. 다석 선생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어요. 많은 종교가 있지만 다 같이 ‘하나’만을 가르치고 있지요. 그래서 일원(一元)이 되어야 하고 교(敎)가 많으니까 다교(多敎)가 됩니다. 다석은 종교는 다 다르지만 ‘하나’로 같다고 했습니다."
-박영호 회장은 "다석 사상으로 조직종교를 한다면 이미 다석 사상이 아니다"며 다석 사상을 종교화하거나 교회화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던데요. 실제 어떤 종교화 움직임이 있었습니까?
"박 회장은 다석 사상에는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과 제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석 사상을 공부하면서 다석의 진리 정신을 이을 생각을 해야지, 사람들을 많이 모아 교회처럼 조직을 키운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박 회장은 어떤 조직도 만들지 않았던 다석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직이 있는 단체들은 더욱더 세(勢)를 확장하려고 하지요. 그것이 다 탐욕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사실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진리와는 멀어지고, 세속적인 이야기가 난무하지요. 다석은 석가 예수처럼 진리 보존을 우선하라는 뜻에서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김 총무는 종교가 있습니까?
“내가 다석 사상을 접하기 전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렇게 두루두루 공부를 해봤습니다. 아랍어를 공부한 것도 다석 사상 연구에 도움이 되더군요.”

   임락경 목사(가운데)가 사목하는 화천 시골교회에서. 오른쪽이 박영호 회장, 왼쪽이 김성언 총무. 

-다석은 제자 중에서도 특별히 아꼈던 박영호 회장과 단사(斷辭)를 하고 나중에는 ‘마침보람’이라는 졸업장을 주었는데요.
“마침보람은 박 회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으신 것으로 그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는 마침보람이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석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을 끊고, 즉 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느님께 말씀을 받는다는 의미로 단사(斷辭)라는 말을 썼지요. 박영호 회장이 스스로 영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었지요. 단사 기간에 박 회장은 ‘새 시대 신앙’이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단사는 성직자들이나 교육자들이라면 꼭 생각해 봐야 할 말씀이지요. 단사에 대하여 다석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조직이란 자꾸 끌어 붙이자는 것인데 실은 풀어 헤치는(分散) 것만큼 시원한 것은 없어요. 우리는 시원한 자리에 가자는 것입니다. 거래란 귀찮은 것이지요. 다 흩어져 제 노릇을 하자는 것입니다. 단사(斷辭)를 해야 해요. 만나고 싶은 생각도 편지할 생각도 안 나야 합니다.’
단사(斷辭)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단사(斷辭)하여 자오(自悟: 스스로 깨달음)하시오. 정(情)을 빨리 떼어버려야 하느님 사랑이 됩니다. 다르마(참, 진리)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불경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석은 “선악과에 죄가 없다. 탐진치(貪瞋痴)가 원죄”라는 말을 했는데….
“기독교 교리가 선악과의 원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석은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를 원용(援用)했습니다. ‘탐’은 말 그대로 탐욕, ‘진’은 진성에서 화냄 분노, 불교의 ‘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데요. 다석은 치가 ‘치정(癡情)’의 성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죠. 크리스천들이 이것을 가지고 다석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기독교의 선악과를 말하지 않고 불교의 탐진치를 얘기하는가. 다석은 사람이 탐진치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셨죠. 그래서 바로 그 탐진치에 죄가 있는 것이지, 선악과를 먹어서 원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없애야 죄 사함을 받는 것이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왜 기독교에서는 죄를 사람 각자에게 있다고 하지 않고 죄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지요? 그리고 죄 사함을 예수의 보혈로 받는다는 것이 21세기 첨단산업인 인공지능, 의과학 시대에 보편적 인식으로 통용될 수 있을까요? 다석이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죄’는 사람 각자에게 있는 것, 즉 우리가 타고난 탐진치에 있는 것이지요. 탐진치를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속물로서 죄인 그대로 사는 것이고, 탐진치를 다스리면 ‘얼나로 솟나’ 성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석이 2500년 전 붓다의 삶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볼 수 있어요. 더는 탐진치를 불교의 전유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깨어 있는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탐진치를 잘 다스려서 스스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인터뷰어=황호택 논설고문·정리=이주영 인턴기자>

<김성언 총무 약력>
1956년 출생
1976~1983년 명지대학 아랍어과
1983~1986년 수단 카르툼 국제 아랍어 교육대학원 석사
1987~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아랍어과 주임교수
1987~1995년 명지대학 아랍어 강사
1999년 다석사상 연구회원
2005년 다석학회 회원
2010~2014년 인천 국제교류센터 아랍어 강사
2013년~현재 인천 다석사상 연구회 대표
2017~현재 다석사상 연구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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