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영웅 고(故) 백선엽 장군을 추도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평안남도에 적을 둔 사람들이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였다.
대전현충원에서는 9일 '고 백선엽 장군 제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1시간가량 진행된 추도식에는 평안남도·평남중앙도민회·평남 성우회 등에서 관계자 30여명이 참석했다.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과 길형보 전 육군참모총장 등도 자리했다.
이날 추도식에 모인 고향 후세들은 추도사에서 고인 업적을 기렸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초기 국군 1사단장으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끈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할 당시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백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북한군 최정예 3개 사단이 남하하는 것을 막아 인천상륙작전이 가능케 했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정신으로 부하들 전의를 북돋아 준 것은 물론이고, 북진 반격의 발판도 마련했다.
후세들은 "장군님은 용장(勇將)이자 덕장(德將), 또한 지장(智將)이셨다"며 "6·25전쟁이라는 민족 최대 위기 시기에 대한민국을 구하셨다"고 칭송했다.
고인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불과 33살 때였다. 이후 육군참모총장·휴전회담 한국 대표·합참의장 등을 역임하고, 1960년 예편했다.
하지만 '친일파'라는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해방 전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한 이력 때문이다.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백 장군은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해 간도특설대에 있었다.
당시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독립군 토벌대로 악명이 높았다. 이로 인해 백 장군은 2009년 정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후세들은 "장군님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기초를 닦으셨다"며 "일부 편협하고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장군님을 폄하하고 공적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를 자행해 개탄스럽다"고 전했다.
백 장군은 지난해 7월 10일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생전에 일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1950년 10월 1사단이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해 고향 땅 평양을 탈환했던 때'라고 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후세들은 "조국 통일을 앞두고 고향 땅을 다시 밟았으니 그 감격이 누구보다 컸으리라 생각한다"며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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