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지청이 상급자의 괴롭힘에 고통받다 지난 5월 퇴사한 계약직근로자의 신고로 이뤄진 자체 조사에서 피해자의 출석과 진술 없이 가해자의 입장만 듣고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결론낸 것. 관악지청이 이 사건의 정황을 알고 있는 직원에게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5월 초까지 무급 자원봉사자와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상급자인 공무원, 전임상담원 2인 등 3인으로부터 지속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며 고통받았다.
A씨는 이들이 자신에게 잦은 폭언과 무시·강요·험담 등을 일삼았고, 일부 직원은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 심부름을 강요했다고 호소했다. 특히 상급자인 전임상담원 B씨는 A씨가 입던 옷을 예쁘다며 빼앗고, 세 차례에 걸쳐 10만원 상당의 의류(코트, 기능성 속옷, 양말) 등을 대리구매시킨 후 물건 값을 현 시점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막 입사한 단기 계약직인 A씨에게 정규직도 꺼리는 과도한 업무를 하도록 지시했고, A씨는 과도한 업무량으로 법정 최대 근무시간인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호소했다. 매달 지급돼야 하는 급여 또한 한 달이 지나 지연 입금되는 일도 벌어졌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직속 팀장에게 수차례 알렸지만 아무 도움과 조치를 받지 못했다며 최후의 방법으로 보직 변경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이 사건에 대한 관악지청의 자체 조사는 A씨가 퇴사 후 외부기관에 신고를 한 후에서야 이뤄졌다. 하지만 관악지청은 자체 조사에서 이미 퇴사한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이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문제는 관악지청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출석과 진술 없이 가해자 의견만을 토대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이에 관악지청은 “피해자에게 조사 출석을 통보했음에도 본인이 거부했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A씨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 A씨는 이 사건이 불거진 후 고용관리과 팀장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싶다. 통화를 원한다”는 문자를 받았을 뿐 피해 진술 요청, 피해 사실 조사 희망 여부 등 조사 출석 요청을 받은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A씨가 외부기관에 진정을 넣자 관악지청장이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동료 직원에게 관련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관악지청의 한 직원은 “어느날 관리과장이 찾아와 지청장의 지시라며 이 사건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달라고 회유했다”고 말했다.
이에 관악지청장은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것은) 피해자가 이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A씨는 “그런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노무 전문가들은 관악지청이 피해자에 대한 정식 출석 요구와 피해자 진술 없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서둘러 결론낸 것에 대해 부실 조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2019년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명시됐듯이, 당사자 조사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대면 조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
한 노무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직장인 괴롭힘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있어선 안 될 사건”이라며 “피해자 진술 없이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 재조사해야 할 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노무사는 “폭언과 왕따는 입증할 수 없으면 인정받기 쉽지 않다”면서도 “옷을 빼앗고 대리 구매한 옷값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부분은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 사실을 봤을 때 가해자가 평소 피해자에게 폭언과 따돌림을 했다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최근 상급 기관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이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다시 제출했고 현재 피해자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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