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정부 역할이 기득권자 보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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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명예회장
입력 2021-07-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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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가상자산 투자자는 투자자라 할 수 없다. 국민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얘기해줘야 한다. 9월까지 신고하지 않으면 거래소는 모두 폐쇄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 8일 은행연합회는 시중은행에 제공했던 '가상자산 사업자 자금세탁위험 평가 방안'을 공개했는데, 거래고객 국가와 업종, 상장 코인의 신용도, 거래소의 평판, 재무 정보, 내부 통제 등이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여부의 주요 잣대라고 발표했다.

이는 가상자산 거래 과정에서 자금세탁, 테러 자금 조달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를 준수하고자 은행권이 마련한 장치다. 이를 바탕으로 거래소에 대한 위험등급을 산정한 종합평가를 거쳐 거래 거절, 조건부 거래승인, 거래승인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자료공개 후 4대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의 기준은 4대 거래소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기준으로, 여타 거래소 입장에서는 엄청난 벽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애초 은행연합회는 정부의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에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고, 해당 기준은 중소 거래소의 생존 가능성을 대폭 낮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실명계좌 허가 여부 검증작업에 착수했는데, 바뀐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인증받지 못한 거래소는 사실상 퇴출당할 것이며, 빗썸·업비트 등 이미 실명계좌를 받은 4대 거래소 외 나머지 거래소는 실명계좌 실사를 요청할 은행조차 찾지 못하고 있어 퇴출 규모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위와 은행, 거래소 간 입장차가 너무 커서 끝내 실명 계좌 발급에 실패하는 거래소의 대거 폐업 가능성이 커졌다.

필자는 이렇게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가상자산 거래소 선별과정을 살펴보며 그리스 신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생각났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티카의 강도로 아테네 교외 언덕에서 강도질을 했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 죽였다고 한다. 그 침대에는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의미한다. 금융위의 입장은 단호하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은행 실명계좌 발급 여부에 '평판'이라는 자의적인 평가가 개입될 수 있는 기준으로 거래소를 허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다수 가상자산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4대 거래소를 포함한 국내 모든 거래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어느 거래소가 상장 뒷돈을 받았는지, 어느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마켓메이킹과 불법 다단계에 연루되어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 결국 4대 거래소나 여타 거래소나 엄격한 금융산업 자격 여부 선별에 동일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업비트·빗썸은 최우선으로 탈락해야 마땅하며, 이를 포함한 모든 거래소의 자격 미달은 누가 봐도 자명하기에 차라리 모든 거래소를 허가하지 않겠다면 수긍할 수 있겠다.

그리고 상장된 가상자산 회사의 재무구조 기준도 이해할 수 없다. 기술특례 상장 기준은 무엇이며, 수천억원 적자를 내는 바이오 회사는 왜 상장이 허가되고 있는가. 아직 여물지도 않은 초기 산업의 생태계 싹을 잘라버리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기준은 이제 거의 1000만명에 육박하는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국내 암호화폐 산업, 스타트업 전체를 없애려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금융위의 현 정책 기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실명 계좌를 받은 기득권자만 허가해 주겠다면, 새로운 기술로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한 거래소 사업을 꿈꿀 스타트업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미국에는 100개 가까운 거래소가 있고 공산국가인 중국에도 4대 거래소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한국거래소(KRX) 홀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 한국은 한때 금융 경쟁력 세계 86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조만간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가 한국에 진출하려고 할 때 무슨 기준으로 허용할 것인가. 해외 거래소에 이미 상장된 코인을 재무구조를 이유로 거절할 수 있을까. 또 업비트의 시장 점유율이 80%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친 독과점 정책을 선호하는가. 만약 정부가 짜인 각본대로 이미 실명계좌를 받은 4대 거래소만 허용하고 나머지 거래소에 불공정한 평가 기준을 적용, 퇴출한다면 필자는 물론 수많은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갈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의 공정한 심판 역할이지, 기득권 세력의 전위부대 역할이 아니다. 불공정한 판정은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불공정에 대한 민심의 힘을 확인하고 싶은가. 정부가 잘못된 길로 가면 국민이 이야기해 줘야 한다.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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