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K-방역’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면서다.
그동안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던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8월 초로 예정됐던 여름휴가까지 연기하며 코로나19 방역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부터 3년 연속 여름휴가를 반납하게 됐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위해 주말에 경남 양산 사저에 내려갔다가 전국적인 호우 피해로 인해 휴가를 취소하고 상경했다. 2019년에도 일본의 수출 규제 시행으로 휴가를 반납했다.
◆4차 대유행 현실화…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도 ‘속수무책’
4차 대유행의 시작은 지난 7일부터였다. 일주일 평균 400~600명대를 유지하던 확진자 수가 갑자기 1212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5일(1240명) 이후 처음이었다.
2주가량 지난 22일 현재 신규 확진자 수는 1800명 선을 넘으며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그 기간 동안 확진자 수는 계속 네 자릿수를 기록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 0시 기준으로 신규 확진자가 1842명 늘어 누적 18만410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1781명)보다 61명 늘며 처음 1800명대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해 1월 20일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오는 9월) 추석에 가족끼리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겠다”며 방역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정부 역시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이르면 7월부터 단체여행을 허용하겠다”면서 ‘백신 인센티브’ 방안을 내놨다. 또한 백신 1차 접종만 해도 공원·등산로 등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접종을 완료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인원 제한에서 예외가 되는 등의 혜택도 발표했다.
결국 중대본은 지난 12일부터 2주간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최종 단계인 4단계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게 골자였다.
예견됐던 코로나19 델타 변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셈이 됐다. 정부가 제시한 백신 인센티브 제도도 ‘없던 일’이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델타 변이의 확산이 무섭다”면서 “‘짧고 굵은’ 4단계를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과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방역 강화조치에 협조하는 국민들께 감사하면서도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정부의 강력한 방역 지침에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짧고 굵게’라고 했던 4단계도 연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우선 이번 주 상황을 지켜보고 단계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4단계 연장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분위기다.
4차 대유행 국면에서 처음에 쟁점이 된 것은 이런 판단을 내린 ‘주체’였다. 국민의힘 등 야권은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의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기 기획관은 지난 4월 임명 당시부터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의 업무 중복과 남편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출마 이력 등으로 논란이 됐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청와대 시스템이 컨트롤타워이지, 한 개인의 책임일 수는 없다”면서 책임론을 일축했다. 기 기획관은 컨트롤타워 역할이 아니라 컨트롤타워를 하는 각 정부의 기구들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지난 4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직을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책임론을 부정하자, 여론의 비난은 문 대통령으로 향했다.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 확진자 사태가 비판 여론에 불을 붙였다. 아덴만 해역에 파병됐다가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지난 20일 조기 귀국한 청해부대 34진 장병 301명 중 확진자가 271명이나 발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물품의 신속한 투입”과 “환자의 신속한 국내 후송” 등을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유감 표명이나 사과의 메시지는 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우리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치료 등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다른 해외파병 군부대까지 다시 한번 살펴주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들은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별도 사과 관련 발언은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 논란이 일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중대본 회의에서 문 대통령을 대신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의 건강을 세심히 챙기지 못해 대단히 송구하다”면서 대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지난 2월 출항한 청해부대 장병들에 대한 백신 접종 노력에 부족함이 있었다”면서 “파병부대 장병과 가족, 국민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야권은 이에 대해 공세를 퍼부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 본인이 책임져야 할 중대 사안에 대해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으니, 지도자 자격조차 없다”면서 “군 당국을 질책하기 전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자신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야권의 비판에 대해 “문 대통령도 이런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국방부가 안이했다’고 말씀하셨다”면서 “군 통수권자로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그런 말씀”이라고 해명했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이 청해부대 확진 관련 보고를 받고 바로 공중급유 수송기를 급파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을 언급,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조치를 하고 있고, 다른 해외파병 장병들에게 (코로나19 확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면밀히 점검 중”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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