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한국신문, 속은 일본신문 '독립신문'
주한일본공사관의 은밀한 기획으로 일본 외무성의 기밀보조금(6만5000원; 현재가 환산 약 1200억원)으로 창립된 '독립신문'은 초창기부터 친일사관 주입으로 시작됐다.
1896년 독립신문 제6호 논설 : 일본이 두 해 전에 청국과 싸워 이긴 후에 조선이 분명한 독립국이 되었으니 그것 또한 조선 인민이 일본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있을 터이나, 조선 인민 중에 일본을 감사히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없는 것은 다름 아니라…
1896년 독립신문 제44호 논설 : 일본 정부와 일본 인민들이 조선이 진보하는 것만 즐거워하지, 어떤 나라이든지 도와주는 것은 상관 아니 하노라… 조선 사람들이, 일본이 조선을 위한다는 것을 자세히 모르는 것이다.
1898년 5월 12일 만 31세의 윤치호(1866년 12월 21일- 1945년 12월 6일) 애국가 작사자겸 무궁화 국화 지정자)가 독립신문의 사장겸 주필로 취임한다.
윤치호의 영문일기 두 편만 살펴본다
1898년 5월 12일 목요일 화창한 날씨.
독립신문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어둡고 예민한 상태였다.(1)*
이 일기는 주한일본공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독립신문의 매수> 기밀문건 20호의 내용과 완전 일치한다.
1898년 5월 30일 월요일 화창한 날씨.
오늘 아침 이학균 대령이 찾아와서 독립협회가 조선에 있는 일본 주둔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를 바란다는 전하의 뜻을 전달했다. 이 대령에게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바보 왕이여! 당신의 실정 때문에 조선에 주둔하게 된 일본군에 신경쓰지 말라, 그대신 인민들의 돈을 갈취하는 일을 먼저 중지시켜야만 한다. 이 나라에 영속적인 평화를 정착시킨다면 일본군은 자신들 발로 걸어 나갈 것이다.(2)*
뼈속까지 종일매국노 윤치호는 '독립신문'을 통해 일본군대의 한국주둔 및 일본 화폐사용 주장 및 명성황후에 대해 좋지 않은 내용을 본격적으로 개제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서구의 사상과 제도 문명을 수용하는 주요 매개자가 되어 조선에 제공하여 문명담론을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이러한 서양문명의 연결지로서의 역할은 더욱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의 중심에 놓게 하였다. <독립신문 논설 1898. 9. 19.>
하나님이 조선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일본과 청국 사이에 싸움이 생겨 못된 일하던 청인 놈들이 조선서 쫓겨 본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것은 조선에 천만 번이나 다행한 일이다. <독립신문 논설 1898. 10. 8.>
조선은 계속해서 일본 돈을 써야 한다. 일본 은전을 여전히 일용한 일로 고시를 하였다 하니, 우리는 전국 재정을 위하여 크게 치하 하노라. <1898년 독립신문 별호 논설>
일본은 해마다 해육군에 심력을 다 하며 대한이 개명치 못하여 청의 속국이되면 필경 다른 강한 나라에게 삼킴을 입어 동양 형세가 위태할 뜻한 고로 갑오년에 청국을 패하고 대한을 독립시켰으며 오늘날까지 정신을 가다듬어 서양각국을 방어하며 동양을 보전하려 하니 일본 정부의 큰 도량이다. <독립신문 논설 1899. 2. 27.>
이런 독립신문에 1896년 4월부터 1899년 6월까지 애국가류 32건이 게재됐고 그 중 하나가 지금의 애국가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을까?
겉과 속 모두 일본신문 '한성신보'
독립신문은 일본측 친일신문인 한성신보에 대항하기 위한 국민계몽이 목적이었다.
- 국내 대다수 텍스트 공통 기록,
일본측 친일신문이라는 '한성신보'는 무엇일까?
'한성신보'는 1895년 2월 23일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주한일본공사가 주도하여 일본 외무성의 기밀보조금으로 창간된 사실상 한국 최초의 한글 신문이다.
*한성신보 발간 건
문서번호 기밀제6호 발신일:1895년 2월 23일
발신자: 특명전권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井上馨), 수신자:외무대신 쓰오 무네미츠 陸奧宗光
전부터 배려해 주실 것을 청한 바 있는 조선 언문 신문을 발행하는 일은 그 후 기계·활자 등이 점차 정비되어 지난 17일 한성신보라는 제목으로 제1호를 발행하고, 4월 1일부터 격일로 발행, 오늘까지 4회를 발간했습니다
청일 전쟁 승전과 함께 부임한 신임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는 한국에서 종일(從日)파의 세력결집과 확대 그리고 이들을 통한 일제식 개혁 추진의 도구로서 한국인까지 대상으로 하는 신문을 발행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결과물인 한성신보의 명의상 사장은 아다치 겐조〔安達謙藏〕였으며 신문은 격일간 4면 가운데 3면은 국한문 혼용, 1면은 일어의 격일간으로 발행되었다. 이 신문은 일본의 한국 침략을 위한 노골적 선전 기관지였다. 주필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 편집장 고바야카와 히데오〔小早川秀雄〕, 기자 사사키 타다시〔佐佐木正〕, 국문기자 윤돈구(尹敦求) 등으로 구성된 '한성신보' 기자들은 언론인이라기보다 한국침략을 위해 활동하는 전위적 간첩집단이었다.
* 한성신보의 보조금금액에 관한 건
문서번호 기밀 제 38호 발신일 1896년 5월 30일
발신자 특명전권공사 고무라 수신자 외무대신 쓰오
우리나라(일본)의 이익을 장려 보호하고 조선 문화를 유도 계발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 신문의 필요성을 느껴, 이에 지난 1895년에 한성신보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호수를 따라 증면을 거듭하기에 이르러 조금씩 내외의 신망이 있었기에 지면을 넓히는 등 여러 가지 개선을 더해서 보급을 배로 늘려 당초의 목적을 관철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략>
독립협회 해산과 '독립신문' 폐간의 진짜 이유
주한일본공사관은 독립협회와 무관하다는 것을 가장하라
우리가 교과서에 배워온 독립협회 해산과 독립협회의 기관지 '독립신문' 폐간의 원인을 알고 보니 대부분 전지적 일본인 시각에서 쓰여진 왜곡 날조였다. 이와 관련한 근거자료로 필자는 수십건의 물증을 확보했다. 이중, 주한일본공사관이 본국 외무성에 보낸 비밀전문 1898년 11월 16일(기밀 제50호) 하나만 공개한다.
일제가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을 통하여 반일내각 조병식 타도 시위운동을 배후조정하다 대한제국 고종황제 및 조정대신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되고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그 기관지 '독립신문'이 폐간될 위기에 빠지자 주한일본공사대리가 본국 외무대신에게 긴급 비밀 전문이다.
<독립협회 시위운동에 관한 건> 기밀 제50호 1898년 11월 16일 발신
발신자: 히오키日置 임시공사대리, 수신자: 아오키슈죠靑木周藏외무대신
본관(주한일본공사)은 한편으로는 표면상 독립협회에 대하여 특히 무관하다는 태도를 가장하여 황제 및 기타 사람들로부터 혐의를 피하고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趙·閔 무리를 배척하고 또 독립협회의 액운을 구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계책이라고 생각합니다.(3)*
◆◇◆◇◆◇◆◇각주
(1)*2th. (22nd). Thursday. Pretty. Began my duties in the Independent Office. Unhappy and nervous all the day long.
(2)*30th. (11th). Monday. Pretty.
This morning Col. Yi Hak Kiun called on me and said that His Majesty desires the Club to agitate the question of the Japanese garrison in Corea with the view of demanding its withdrawal. Told Col. Yi that I would think over the subject. Poor King! Instead of concerning himself about the Japanese garrison which was brought to Corea by his own misgovernment, he ought to cease extorting money from the people. Establish a permanent peace in the country, the Japanese soldiers will go of their own sweet will. ● 윤치호는 19세기말까지 한국의 영문명칭을 Corea를 썼다. 1900년대부터 국운이 일본으로 완전히 기울자 Korea로 바꿨다. 동작 빠르게
(3)*如クナルヲ以テ本官ハ一方ニ於テハ表面上獨立協會ニ對シ特ニ無關係ノ態度ヲ裝ヒ帝及ヒ其他ノ嫌疑ヲ避ケツゝ一方ニ於テハ竊ニ趙閔ノ輩ヲ排擠シ且ツ協會ノ厄運ヲ救フヲ得策ト考ヘ前陳露館ヨリ.
◆◇◆◇◆◇◆◇각주
(1)*2th. (22nd). Thursday. Pretty. Began my duties in the Independent Office. Unhappy and nervous all the day long.
(2)*30th. (11th). Monday. Pretty.
This morning Col. Yi Hak Kiun called on me and said that His Majesty desires the Club to agitate the question of the Japanese garrison in Corea with the view of demanding its withdrawal. Told Col. Yi that I would think over the subject. Poor King! Instead of concerning himself about the Japanese garrison which was brought to Corea by his own misgovernment, he ought to cease extorting money from the people. Establish a permanent peace in the country, the Japanese soldiers will go of their own sweet will. ● 윤치호는 19세기말까지 한국의 영문명칭을 Corea를 썼다. 1900년대부터 국운이 일본으로 완전히 기울자 Korea로 바꿨다. 동작 빠르게
(3)*如クナルヲ以テ本官ハ一方ニ於テハ表面上獨立協會ニ對シ特ニ無關係ノ態度ヲ裝ヒ帝及ヒ其他ノ嫌疑ヲ避ケツゝ一方ニ於テハ竊ニ趙閔ノ輩ヲ排擠シ且ツ協會ノ厄運ヲ救フヲ得策ト考ヘ前陳露館ヨ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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